[남양 김명혁 목사의 생애와 사상 5] 선교통일 신학(2) 및 결론
2월 18일 오전 별세하신 본지 편집고문 김명혁 목사님의 삶과 신학을 기리기 위해, 안명준 박사님의 논문 ‘남양 김명혁 목사의 생애와 사상’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북한 동포 바라보며 눈물 흘려야
교회가 먼저 화해와 평화 통일을
예수님 십자가는 화해 평화 통일
순교자 아들로 공산당 핍박 불구
북한 동포들 품고 기도와 사랑을
신실한 종으로 섬긴 말씀의 사람
북한에 대한 이런 자세와 더불어 그는 회개의 신학을 강조한다. 우리는 북한 동포를 바라보면서 첫째 눈물을 강처럼 흘려야 하고, 둘째 마음을 물 쏟듯이 쏟아야 하며, 셋째 주를 향하여 손을 들고 항복하면서 “교회가 먼저 낮은 자세를 지니고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이룰 때 양극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도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이루고자 하는 자극과 감동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적대적으로 치닫고 있는 남북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도 이루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명혁 목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회개이고 새로워지는 것”이라며 “그 다음엔 서로 끌어안고 화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한국교회만큼 분열이 심한 곳은 없다. 죄악 중의 죄악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화해, 평화, 통일 때문”이라며 한국교회의 회개와 화해, 일치를 강조했다.
김 목사가 최근에 발표한 글을 하나 소개한다. ‘인도적 지원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주리고 목마르고 벗고 유리하고 병든 불우한 사람들에게 저들이 처한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상황과 상관없이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과 거할 곳과 치료할 약품을 보내는 인도적 지원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불우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도 불우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인도적 지원을 베풀라고 거듭해서 말씀하셨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시 10:17-19). “너희는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사 1:15-17).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6-9).
성자 예수님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35-40).
나는 본래 반일 반북 반공 반중 반무슬림 반타종교주의자였다. 그러나 조금씩 생각과 마음이 바뀌었다. 일본 사람들을 사랑하며 일본 교회와 교류하는 데 앞장을 서게 되었고, 북한 사람들을 사랑하며 북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앞장을 서게 되었고, 중국 조선족들을 사랑하며 중국 연변에 있는 조선족 어린이들 150여명을 지난 20년 동안 계속해서 돕게 되었다.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 가서 가뭄으로 죽어가는 무슬림들에게 우물 열 몇 개를 파 주었고, 가난과 고난과 질병 중에 있는 방글라데시 사람들을 찾아가 안과 진료소를 지어주기도 했고, 극심한 가난으로 고통을 당하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찾아가 학교 하나를 지어주고 아프간 어린이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기도 했다.
기장과도 순복음과도 친밀하게 소통하며 교제하게 되었고, 5개 종단의 종교 지도자들과도 친밀하게 교제하면서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1997년 4월 3일에는 5개 종단 지도자들이 강원도에서 썩어가는 감자 1,690톤을 사서 99대의 트럭에 실어 북한에 보내기도 했고, 2010년 8월 27일에는 5개 종단 지도자들 9명과 함께 밀가루 300톤을 트럭 13대에 싣고 북한 개성에 가서 그곳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오기도 했다.
악독이 하늘에까지 상달한 니느웨 사람들을 버리시지 않고 안 가겠다고 떼를 쓰는 요나를 몽둥이로 쳐 니느웨로 보내셔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그래서 니느웨의 왕과 모든 백성들이 조복을 입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아 금식하며 회개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니느웨에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베푸셨는데, 그것을 바라보면서 요나가 화를 냈을 때 성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오늘 한국교회와 백성들이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욘 4:10.11)”.
정치적·종교적·경제적으로 극심한 어려움에 처한 북한 동포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인도적 지원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IV. 결론
순교자의 아들로 태어나 북한의 공산당의 핍박을 받았지만, 역설적으로 북한 동포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고 그들을 위해 기도와 사랑으로 실천적 사역을 감당하는 그의 모습은 많은 신앙인들의 존경을 받기에 너무나도 당연하다.
또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 부모님이 계신 고향을 떠나 남으로 온 남양은 신학자와 목회자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신실한 종으로서 그의 삶을 살아가는 말씀의 사람이었다.
김명혁 목사의 신학적 특징은 역사신학에 기초하며 어거스틴의 신학과 후에 선교신학과 통일신학으로 나타난다. 비록 그는 역사신학자였지만 역사신학만 연구한 학자의 삶이 아니라, 사랑과 선교를 품고 오히려 지역과 사회, 그리고 북한과 세계를 바라보는 종말론적 눈물의 예언자의 삶을 살아갔다.
이런 그의 실천적 복음적 사랑은 기독교의 지평을 넓혀주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데 충성하는 종의 모습이었다. 이런 동기 속에서 그의 통일신학은 지속적으로 실천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주도홍 박사는 남양 김명혁 박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수님으로부터 나온 사랑과 온유, 겸손과 지혜 거기다 리더십을 가진 목회자, 학자, 기독 시민운동가로 사는 것이다. 아버지를 죽인 북한 공산당을 한 때는 원수로 여겼으나, 그는 예수님의 심장을 지닌 자로 북한을 안타깝게 여기며, 북한을 위해 기도하고 주님의 순전한 사랑으로 물심양면으로 사랑하신다. … 그의 모습에서 종종 사랑의 사도 요한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김명혁 목사가 한국교회에 준 영향은 많은 후학들에게 모범이 되고,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의 모습을 보게 한다. 우리 사회와 북한을 향한 그의 눈물과 회개와 겸손의 기도의 소원은 언젠가 응답될 것이다.
안명준 박사
평택대 명예교수
성서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