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첫째 주일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내 입장보다 상대방 입장이 더 먼저죠.”
저는 지난주에 필리핀 선교 50주년 희년성회 강사로 다녀왔습니다. 필리핀 선교 50년째를 맞아 열린 주빌리 성회였습니다. 몇 달 전부터 필리핀 선교사 회장 되신 이영석 선교사님이 저를 찾아와서 주강사로 섬겨달라는 것입니다.
말이 주강사지 거기에 걸맞은 후원금을 담당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자리입니다. 처음엔 주저주저했는데, 제 신학교 입학 동기인 임종웅 선교사님이 또 찾아와서 통사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타의반 자의반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바빴던지, 사실 그 집회를 위해서 설교 준비할 시간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기본 틀만 정해 놓고 비행기나 차로 이동 중 세세하게 원고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침 비행기여서 새벽에 일어나야 했습니다. 수면제를 먹고 일찍 잔다고 했지만 시간에 맞게 깨어나야 되는데, 새벽 2시 이전에 깨버리는 것입니다.
다행히 그 시간에 설교 준비를 하고 또 특강 준비를 했습니다. 저는 집회 장소가 마닐라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클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클락은 마닐라에서 2시간 반 동안 차를 타고 가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선교사님들에게 “저는 차로 이동하는 중간에 좀 누워야 됩니다. 그러니까 옆자리로 누워 갈 수 있는 차를 좀 준비해 주세요”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가는 중에 좀 쉬겠다 싶었는데, 차에 타고 가는 사람 숫자가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누울 공간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마닐라에 들려서 또 점심식사를 하고 간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미 기내식을 했거든요. 그래서 “제발 밥 먹지 말고 저 좀 쉬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선교사님들이 “그래도 우리 입장에서는 대접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아니 선교사님들 입장보다 제 입장이 더 중요한 거지, 그게 겉치레이고 불필요한 예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이미 예약을 해서 돈을 물어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돈 내가 물어줄 테니까 그냥 가자”고 이야기까지 했습니다.
참 기가 막혔습니다. 지금 주강사 입장이 중요하지 밥이 중요합니까? 그런데 또 일행 중에서 “기왕 준비했으니까 밥 먹고 가시죠”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정에 약한 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밥을 먹으러 가야 했습니다.
순간 진짜 짜증이 났습니다. “몸은 피곤한데 밥 먹는 게 중요하단 말인가….” 결국 강제로 식당에 가서 1시간 반이나 허비하고, 다시 2시간 반 동안 차를 타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아찔한 것입니다. 저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였습니다.
물론 차로 이동하는 시간은 유익했습니다. 여러 가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총회와 교계 돌아가는 이야기도 듣고 유익했습니다. 그러나 가면서 눕지도 못하고, 펴지지도 않는 의자에 앉아 두 시간 반을 간다는 게 보통 피곤한 게 아니었습니다. 두 시간 반이 4시간 이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곧바로 가서 저녁 식사하고 양치하고 바로 집회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설교를 하기 전 개회예배와 특강 시간이 하나 있었습니다. 친구이자 이 시대 한 동역자인 고광석 목사님이 개회 설교를 하시고, 그 유명하신 손현보 목사님께서 전도 특강을 하시는데, 피곤하다고 저 혼자 누워 있다가 갈 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또 두 시간 이상을 앉아 있다가 그 다음에 이어서 제가 저녁 메인 집회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정말 까무러칠 것 같았습니다. 머리는 띵하고 눈은 쓰리고 어깨는 무겁고요. 그래서 저에게 주어진 시간보다 짧게 끝내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지방에서 온 선교사님들도 다 새벽에 비행기를 타고 올라왔을 거 아닙니까? 선교사님들도 다들 피곤한 기색이 보이고 저도 피곤했구요.
집회가 끝나고도 제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정말 설교를 잘할 수 있었는데, 오늘 점심 때문에 버려 버렸습니다. 그리고 차에서 이동하는 도중에 누워서 가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왜 그랬습니까? 제가 어떻게 온 줄 아세요? 주일 날 예배를 여섯 번이나 인도하고 쪽잠 자고 비행기를 타고 왔어요. 이런 사람에게 맞춰서 해줘야지 주최측 입장에서만 생각하면 되나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물론 그분들은 그분들 입장에서 강사로 오시는 분을 잘 대접해야 되겠죠. 그러나 정말 저에게 필요한 것은 ‘쉼’이었거든요. 저 같은 경우 기내식을 이미 해서 밥도 먹을 필요가 없는데, 끝까지 자기들의 입장과 예의를 지키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지요.
그래서 제가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정말 내 입장보다 중요한 게 상대방 입장이라고 말입니다. 또한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목사의 입장보다 교인의 입장을 먼저 배려해 줘야 되겠다. 그리고 우리 교회에 찾아오는 손님들도 내 입장보다는 그분들의 입장을 존중해 줘야 되겠구나.”
참 돈으로 살 수 없는 귀한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그날 그런대로 잘 자서, 다음날 특강과 저녁집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마는. 어쨌든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진 교훈을 얻었습니다. 내 입장보다 상대방 입장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