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8년 부활절, 피렌체 대성당서 살인이 벌어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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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우 칼럼] 르네상스(6)-로렌초 디 메디치

이태리 역사를 살펴 보면 가문들의 경쟁은 대단했다. 선의의 경쟁이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상대방을 제압하고 패권을 손에 쥐려는 전투적 투쟁이었다. 로마에서는 콜론나와 오르시니 가문, 작은 도시 아시시에서도 네피스와 휘유미 가문이 늘 대결하였기에, 성 프랜시스는 줄기차게 평화를 외쳐야 했다.

피렌체에서 은행업에 종사하던 피치(Pizzi) 가문은 후발주자인 메디치 가문이 실권을 쥐고 독단적으로 통치하자 불만이 컸다. 그런 상황에서 교황 식스투스 4세(Papa Sisto, 1471-1484)는 이몰라를 매입하기 위해 메디치 가문에게 돈을 빌리려고 했다. 그러나 거절당했는데, 그 이유는 이몰라가 피렌체와 베니스의 교역로에 있었고 메디치 가문도 매입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피렌체 대주교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메디치의 실권자 로렌초는 처남을 그 자리에 임명하도록 교황에게 간청했다. 그러나 거절당했는데, 이유는 피사와 피렌체를 병합하려는 교황의 속셈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황은 대주교 살비아티를 그 자리에 임명했다. 그러나 절차상의 문제를 이유로 메디치의 실권자 로렌초가 거부하자, 살비아티는 로마에서 3년 동안 세월만 허송하며 기다려야 했다. 이런 일로 앙심을 품게 된 교황은 메디치 가문을 몰아내고 자기 조카를 그곳의 군주로 세우려는 음모를 꾸몄다.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이스라엘을 침공한 하마스의 작전처럼.

1478년 4월 26일 부활절, 피렌체의 대성당에 1만여 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미사가 진행되었다. 반대파들은 경건하게 미사가 진행되는 중에 암살을 도모하려고 했다. 음모자들은 사제복으로 갈아입고 미사를 진행하러 들어가는 성직자를 따라 들어가다가 메디치 형제를 죽이려는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무예에 능했던 로렌초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약간의 상처를 입었으나 용케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생 줄리아노 메디치는 로마제국의 실력자 카이사르처럼 전신을 칼에 찔려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경건하게 부활절 미사를 드리는 중에 일어난 살인에 시민들은 크게 흥분했다. 그들은 즉시 공모자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에워쌌고, 거사 가담자 80여 명을 그 자리에서 체포하여 사살해 버렸다. 또한 음모의 주동자 살비아티 대주교를 붙잡아 높은 창문에 목을 매달았다. 역사적으로 대주교의 신분으로 음모의 주동자가 되는 것도 드문 일이고, 현직 추기경을 창문에 목을 매달아 죽이는 것도 드문 일이다 싶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교수형을 당해 죽은 살비아티 대주교.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교수형을 당해 죽은 살비아티 대주교.

이처럼 피렌체 시민들이 분노한 것은 로렌초 메디치가 시민들을 위해 희생적으로 헌신하는 것을 체험하였기 때문이다. 추기경을 목매 단 것을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스케치로 남겼다. 그리고 시민들은 콘스탄티노플로 용케 도망친 주동자를 3년 동안 집요하게 쫓아가 체포했고, 피렌체로 소환하여 공개처형을 시켰다.

거사가 실패하고 신임하는 추기경까지 잔인하게 처형당하자, 교황은 크게 분노했다. 그래서 복수하기 위해 나폴리와 동맹을 맺었고, 주변 도시들을 동원하여 피렌체를 침공하게 했다. 더 나아가서 피렌체에 성무 금지를 선포했고, 고로 피렌체 공화국의 생존은 크게 위태로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메디치가의 지도자 로렌초는 우방국인 밀라노나 볼로냐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들은 자국의 사정 때문에 도움을 주기가 어려웠다.

피렌체는 이미 많은 전투에서 패했고, 국토는 황폐해졌고, 도적들이 횡행하고 역병까지 찾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로렌초는 죽기를 각오하고, 혈혈단신 배를 타고 적진 나폴리를 찾아갔다. 그리고 음흉한 나폴리의 왕 페르디난드와 협상을 했다. 무려 석 달간을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과 탁월한 외교적 수완을 동원하여 교황의 잘못된 통치에 대하여 설득하였고, 결국 강화조약을 맺을 수 있었다. 결국 교황은 나폴리의 배신으로 목표를 이루지 못하게 되어 기분이 상했지만, 성무 금지를 철회하고 피렌체와 평화조약을 체결해야 했다. 이 일로 로렌초는 일약 피렌체의 영웅이 되었고, 강력한 통치를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정치적 상황을 통해 은행업의 한계를 느낀 로렌초는 아들을 추기경으로 세우고자 결심했다. 한편 교황 식스투스 4세가 1484년 선종하자, 로렌초는 유순한 키보 추기경을 교황 후보로 후원하였다. 로렌초는 메디치 가문의 15살 된 막달레나를 38살인 교황의 사생아 키보와 정략결혼을 주선했고, 두둑한 지참금(현재가로 8백억)도 잊지 않았다. 이런 노력으로 로렌초의 차남 요한이 약관 16세에 고대하던 빨간 모자를 머리에 착용하는 추기경으로 서임될 수 있었다.

당시 교황은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고로 자신과 대척점에 있는 가문을 멸망시키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더 나아가서 사업을 확장하는 일에도 교황의 힘을 빌리면 손쉽게 목적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런 모든 상황을 꿰뚫고 있었던 로렌초 메디치는 자신의 넉넉한 재물과 관계를 통해 교황의 자리를 넘보려고 하였고, 구체적으로 차남 요한을 그 자리로 한걸음 성큼 다가서게 했다. 에덴동산에서 첫 사람이 쫓겨난 이후, 돈은 신의 대리자 역할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로마한인교회 한평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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