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영 칼럼] 3대에 걸친 한국 사랑
한국 군목 제도 창설 쇼 선교사
그의 아들로 하버드대 재학 중
6·25 참전한 윌리엄 해밀턴 쇼
그의 아들 기독교 세계관 운동
작은 밀알 쇼 윌리엄 교수까지
이 분들 보내주신 섭리 늘 감사
그렇습니다! 국가보훈처는 지난 2023년 삼성과 LG 협찬으로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 대형 전광판에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을 알리는 홍보 영상을 선보인 바 있습니다.
10대 영웅에는 유엔 사령관이었던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과 전쟁 당시 미8군 사령관을 지낸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 및 그의 아들, 랠프 퍼켓 주니어 미 육군 대령, 재미교포 출신으로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전역 후 한국전쟁에 자원입대한 독립운동가 김순권 선생 아들 김영옥 미 육군 대령, 다부동 전투 영웅 백선엽 장군과 100회 출격의 김두만 공군 대장, 가수 진미령(본명 김미령) 씨 부친이요 광복군 김구 선생 보좌관 출신으로 참전한 김동석 특수부대장(필자가 시무하던 교회의 임수 장로, 임원학 집사가 해당 부대 전우회 회장과 사무총장 역임, 곽선희·한명수 목사도 이 부대 출신), 서울수복작전 당시 정부청사 옥상에 태극기를 게양한 박정모 해병대 대령, 그리고 서울수복 작전 중 전사한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와 목사였던 아버지 쇼 선교사가 꼽혔습니다.
10대 영웅은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보훈처와 한미연합군사령부가 공동으로 선정했다 합니다.
영상에는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 평화는 먼 곳에서 온 참전 용사들의 희생 덕분”이라며 “한국전 영웅들의 희생과 헌신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메시지가 담겼습니다.
홍보 영상에는 양국 참전용사들의 위대한 헌신을 기억하고 감사를 표하며, 앞으로도 굳건한 한미동맹을 이어가자는 의미가 담겼다고 보훈처는 설명합니다.
삼성과 LG 계열사들은 일찍부터 참전용사와 가족들을 꾸준히 지원해 왔습니다. 미국 외에도 영국, 에티오피아 등에서 참전기념비 건립과 참전용사재단 운영비를 지원해 오고 있습니다.
“한국인은 내 형제입니다!”
서울 은평구는 6·25 전쟁 60주년을 맞아,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동상을 녹번동 은평평화공원에 조성한 바 있습니다.
아버지 쇼 박사는 1890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나 1921년 평양 광성보통학교 교사로 한국에 왔으며, 목사 안수를 받은 뒤 영변 만주 등에서 선교 사역을 했습니다. 6·25 전쟁 때 주한미군에 자원 입대, 군목으로 활동했고 한국 육군에 군목제를 도입했습니다(해병대 창설, 해군 제독 손원일 장로와 함께).
1954년 목원대 전신인 감리교 대전신학원이 설립될 때 창립 이사로 참가했고, 목원대 교수로도 재직했습니다.
1922년 선교사 윌리엄 얼 쇼(William Earl Shaw)의 아들로 태어나 평양 외국인학교에 다녔던 쇼 대위는 1950년 하버드대 철학과 박사 과정 재학 중, 6.25 전쟁 소식을 들었습니다.
“내 조국에서 전쟁이 났는데, 어떻게 공부만 하겠습니까.”
그는 한국 파병을 자원합니다. 그리고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에서 큰 공을 세운 뒤, 9월 22일 서울 녹번동에서 인민군과의 교전 중 28세 나이로 전사했습니다.
쇼 대위는 40여 년 동안 평양, 서울, 대전 등지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던 부모와 함께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역에 묻혀 있습니다. 그의 부인 후아니타(Juanita)는 1956년 두 아들과 서울로 와서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하며 사회봉사활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큰아들은 한국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밀알이 된 쇼 윌리엄 교수였습니다. 그는 풀 브라이트 한미교육위원회의 도움으로 서울대 법대 초빙 교수 등을 지내며 한국 법제사와 동양 법제사를 강의하였으며, 1982년 겨울 한국기독학생회(IVF) 산하 GCF 학사들을 중심으로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기독교 세계관을 가르쳤지요.
이때가 바로 한국의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막 ‘기독교 세계관’에 대해 눈을 뜨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교재는 ‘The Universe Next Door’의 요약본이었습니다(나중에 김헌수 목사가 번역,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
필자는 겨우 32쪽짜리 마스터인쇄본의 이 교재를 지금도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있습니다(혹시 유일하게 남은 교재가 아닐까요?). 확인해 보니 교재 가격이 1982년 당시 400원(당시 제 대졸 초봉이 약 30만여 원이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들 씨앗을 통해 손봉호, 김정한, 양인평, 장갑덕, 양승훈, 원동연, 유정칠, 이승구, 신국원, 조무성, 김헌수, 윤완철, 황영철, 권진혁, 이건창, 조성표, 김승욱, 오창희, 양성만, 김경천, 이종범, 제양규, 조신영, 김혜정, 현창기, 고재형, 유경상 등 무수히 많은 일꾼들이 배출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대부분 제가 잘 아는 동역자들이네요.
이들의 헌신은 기독학술교육동역회와 기독교학문연구회 등으로 열매를 맺었고, 두 단체는 2009년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로 통합되었습니다.
여러 학교에서 오랫동안 기독교 세계관을 강의해온 필자는 이 분들을 이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섭리에 늘 감사합니다.
조덕영 목사
신학자, 칼럼니스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