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감정, 건강하게 이해하고 극복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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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울감의 원인과 해석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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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우울한 감정을 많이 느끼지 않았다. 젊었을 때는 생리 증후군이 있어, 생리 전만 되면 기분이 우울하고 작은 일에 짜증이 쉽게 난 적이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성숙해져 가고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나를 이해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우울한 감정이 거의 없어졌다.

하루를 감사하며 살았는데, 어느 날 일어나는데 왠지 많이 우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만 해야 할 일이 많은 월요일이었기에, 마음을 다잡고 아이들 도시락을 싸고 사무실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모임에 참석하고 공원을 산책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우울감의 원인이 무엇인지 찾기가 쉽지 않았다.

다음 날에도 전날의 연속인 듯 침대에서 나오는데 눈이 잘 떠지지 않고 온 몸이 피곤한 듯 아무것도 하기 싫어, 마음으로 ‘아이들 도시락을 그냥 사 먹게 할까?’라는 생각까지 하면서 일어나다가 ‘그래도 이러면 안 되지’라는 생각으로 나를 다독이며 부엌으로 갔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아들이 부엌에 들어오면서 ‘엄마, 나 오늘 왜 이렇게 피곤하지? 너무 너무 일어나는 게 힘드네’라고 했다. 필자도 비슷한 증상이 있다고 말하자, 아마 알러지 때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조금 있다 일어난 딸도 ‘엄마, 어제와 오늘 진짜 피곤하고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 필자도 지난 주부터 꽃가루 알러지(hay fever, 알레르지)로 계속 재채기를 하고 콧물을 흘리고 있었다. 여기서 내려진 결론은 극심한 알러지가 몸을 피곤하게 만들어 온 가족이 신체적으로 지치고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입증하듯 사무실에 가니 사무실 직원도 출근하지 못했다. 새벽 한 시에 남겨진 메시지는 ‘알러지가 심해서 출근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영국 브리스톨 의과 대학 연구팀은 우울증, 불안증 같은 정신건강 장애와 알러지, 꽃가루 알러지 사이의 유전자 인과관계를 조사했다고 한다. 연구 결과 알러지와 우울증은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고, 꽃가루 알러지와도 관련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최근 경험한 꽃가루 알러지와 우울한 감정이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일을 계기로 전날부터 일어난 사건을 재조명하면서, 귀인(사건의 원인을 어디에 두느냐)과 해석(사건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우울한 감정에 대해 나름대로 귀인을 찾고 해석을 하려 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우 우울했던 감정에 대해 먼저는 내적인 것에서 답을 찾으려 애를 썼다. 최근 해결되지 않는 개인적 문제로 지속적인 스트레스가 있었기에, 스트레스와 우울의 기질적 소인이 우울감을 느끼게 했다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최근에 일어난 스트레스를 일으킨 사건들에서 원인을 찾고, 이런 것들을 잘 극복해내지 못해 우울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해석하자 우울감이 깊어지는 듯했다.

그런데 내적 소인에 무게를 많이 싣지 않고 꽃가루라고 하는 외적 환경 요인이 많은 영향을 주고 있음을 새삼 깨달으면서 어제와는 사뭇 다르게 마음이 가벼워졌고, 내 자신을 비난하고 우울의 감정에 더 깊이 빠져들던 데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렇게 사람은 원인을 어디에 두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감정을 조절할 수 있고, 반대로 그 감정을 누군가를 해치는 데 사용하기도 하며, 그 감정에 깊이 빠져 감정적 어려움에 처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중요하다.

우울한 감정적 소인을 연약한 자신의 기질로만 본다면 자신을 탓하고 연약함을 비난하는 자기 증오를 낳게 된다. 또는 낙심하고 우울에 처함 자신을 불쌍하다는 연민으로 바라보면서 더 깊은 우울에 빠져들 수도 있다. 세상 모든 짐을 짊어진 불우한 예술가처럼 우울한 음악을 듣고 침대에 오래 머물러 있다 창문 밖을 멍하게 바라보며 우울의 늪에 빠져드는 것이다.

우울의 원인을 내 감정을 몰라주고 위로해 주지 않는 가족 또는 배우자에게 두면 어떻게 될까? 자신을 비난하는 화살을 타인에게 돌리면서 타인에 대한 적개심과 원망을 마음에 쌓고, 그들의 무관심과 배려 없음을 탓하고 그들 때문에 나의 우울 감정이 증폭되고 지속되는 요인이라 믿으며 ‘나는 희생자, 그들은 가해자’라는 프레임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러면 변하지 않는 프레임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의 덫에 빠져들게 된다.

우울의 원인을 사회적 제도나 불합리한 세상과 불특정 다수인 타인들에게 돌리면 어떻게 될까? 세상을 향해 나갈 수 있는 용기가 없어 히키코모리처럼 방안에만 쳐박혀 세상을 두려움 또는 증오의 대상으로 대할 수 있다.

그 억압된 분노가 때로는 자신을 돌보는 가족들에게 때로는 자신을 모르는 세상의 특정 다수에게 칼을 휘두르거나 악행을 저지르는 모습이 될 때, 그들은 가해자가 되어 세상에 원망을 쏟아내는 반사회적 인물이 되기도 한다. 최근 이런 사건들이 수시로 생겨난다. 최근 호주 국립대 운동장에서 무고한 두 여학생이 누군가의 소행으로 칼에 찔려 중상을 입는 사건도 있었다.

대인관계 심리치료(interpersonal psychotherapy)에서는 우울증의 원인을 다른 것에 두지 않고 우울증이라는 질환 자체에 둔다. 그래서 누군가를 원망하기보다 나타나는 모든 증상을 우울증이라는 질환이 가진 증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해 자연스럽게 환자 역할을 할 수 있게 한다.

많은 경우 우울증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질병이기에, 우울한 사람이 아무것도 못하고 있으면 그것을 질병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주위 사람들이 ‘게을러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이기적이어서, 야망이 없어서’ 등 잘못된 원인을 해석해 환자에게 부정적 편견을 갖고 관계가 더 나빠질 수 있다. 이 역시 우울증 증상을 심화시킬 뿐이다.

앞부분에서 최근 경험한 우울의 원인을 알러지로 이해하고 나만이 아닌 모두에게 일어나는 현상임을 받아들이고 이해했을 때 잘 극복할 수 있었듯, 우울한 감정이 다가올 때 원인을 어디에 두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감정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각자 다른 양상일 수 있기에 같은 답을 생각할 수는 없으나, 자신에게 해가 되는 방식(무조건 내 탓 또는 남 탓)으로 해석하거나 부정적(나는 어리석어 또는 나는 피해자야)으로 해석하기보다, 우울한 감정을 다루는데 도움이 될 만한 방식이나 현실에 기반한 생각(지금 꽃가루가 워낙 심해서 우울한 감정이 생겼구나)으로 해석함으로써, 우울한 감정을 극복해 보자.

▲서미진 박사.

▲서미진 박사.
서미진 박사

호주기독교대학 부학장
호주 한인 생명의 전화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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