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염려하지 않는 믿음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마태복음 10:9-10)”.
전대란 동전을 넣어 허리에 차는 지갑 대용품입니다. 여행을 위해 필요한 돈, 가방, 갈아입을 옷과 신, 지팡이 등이 있습니다. 특히 지팡이는 방어를 위한 것이므로, 가져가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며 생계를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4절 말씀에선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고 하십니다. 이방인들의 도시를 떠날 때 먼지를 떨어 버리는 행위는 유대인들이 해오던 관습이었습니다. 특히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함은 사도들이 책임을 다했다는 뜻으로, 그들을 영접하지 않은 자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의식적으로 부정한 모든 것을 자신들 땅으로 묻혀 들어오지 않으려 했습니다. 제자들의 이런 행동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거부했기에, 참 이스라엘에 속하지 않음을 상징합니다.
필자의 직장인 시절에는 외국을 여행하는 일이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항공회사 직원이 되어 외국에 출장을 나가는 동료와 새로운 사업을 위해, 신기술을 익히기 위해 교육을 이수하러 나가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외국에 나갈 기회가 좀처럼 없어 ‘외국은 나와는 무관하구나!’ 생각하며 거의 포기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과장일 때였습니다. 직원 2명을 프랑스로 교육을 보내야 하니 선발하라는 지시를 받고, 대리 한 분과 직원 한 명을 신청했습니다. 교육을 이수할 곳과 출장지는 프랑스와 유고슬라비아 두 나라였습니다.
당시는 미국에 출장 및 교육 가는 것이 거의 전부였는데, 그때는 프랑스로 가게 되었습니다. 새로 도입되는 항공기 제작을 위해 그동안 고생했다고, 위로 차 여행을 보내주는 사례였는데, 갑자기 회사 방침이 바뀌어 영어 자격증이 없는 사람은 제외하고 자격이 있는 사람을 보내라는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저더러 다녀 오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너무 놀랐습니다. 당시 교육과 출장은 미국이 대부분이어서, 동료들이 꽤 부러워하는 눈치였습니다. 예술의 나라 프랑스를 방문한다는 소식에 마음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난생 처음 해외 여행이고, 당시 가기도 힘든 프랑스를 간다면서 혼자 들떠 있었습니다.
집밖에 모르던 사람이 프랑스라는 나라를 방문한 후 주체할 줄 모르는 아이디어가 샘솟듯 솟아올랐습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아이디어를 많이 제공해 회사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말고 시야를 넓혀 넓은 세상을 두루 보고 다녀야 한다는 말이 그저 된 말이 아니구나 새삼 느끼며, 이제 다른 사람들을 보면 여행을 자주 다니라고 합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요즘 시대는 여행을 수없이 다닙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께서는 여행을 할 때 지금 걸친 옷과 신발과 지팡이로 충분하다고 말씀하십니다. 한나절만 지나도 배가 고프고 날이 저물면 잠을 청해야 할텐데 말입니다. 뙤약볕에 걸으면 땀과 냄새가 나고, 비가 오면 옷이 젖어 추울 텐데, 아무 것도 없이 다니다니요. 며칠이 될지 모르는 여행길 아닙니까.
불편을 넘어 고통을 겪게 될 여행입니다. 때로는 도움을 받고 고마움도 느끼겠지만, 업신여김과 모욕도 당할 것입니다. 탈진을 하는 등 한계 상황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시련과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면 여행을 중도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지금 견딜 만한가요? 지극한 인내심이야말로 미혹에서 벗어나는 최선의 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행동을 다스릴 수 있는 사탄을 제어할 능력을 주시며, 역경조차 지혜와 인내심을 기르기 위한 양식으로 삼아 경험하며 배우라며 우리를 파송하십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겪는 모든 어려움, 자신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나아가 자연현상 속에서도 배움을 얻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경험하고 행동한 오직 그만큼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전할 수 있을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여기저기 옮겨 다니지 말고 지금 그곳에서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생각하기에 따라 모든 것이 번뇌일 수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들이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여행은 바로 거기서 시작됩니다.
끊임없이 무언가로부터 달아나기 때문에 지혜는 솟아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도망가면, 그것들은 어디까지고 무수히 쫓아옵니다. 번뇌가 두렵다 해서 달아나서는 배움을 얻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다른 것들과 교류하며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그 시작입니다.
경험하며 깨닫고, 인내하며 문제가 생겨난 그곳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십시오. 걸려 넘어진 그 돌부리 아래 보화가 묻혀있습니다. 어려움에 달아나지 말고 자신의 번뇌와 맞서고 지혜를 구하면, 오직 그만큼 얻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환영하지 않거나 복음을 듣지 않으면 그 또한 신발의 먼지를 털듯 털어버리십시오. 좋은 느낌이 사라지듯, 그것들도 사라질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늘 옳은 방향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 길을 걸어 열매를 따는 것은 이제 각자의 몫입니다.
어떤 분들은 조그마한 산을 오르면서 히말라야 산행에나 어울릴 법한 장비들을 챙겨 가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물론 산을 오르려면 완전무결한 장비를 갖출 수도 있습니다만. 어울리지 않는 장비나 준비물은 오히려 무거운 짐이 될 뿐입니다. 힐링을 위해 떠났던 산행이 괴로움으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을 오를 때는 가벼운 몸으로 가는 것이 옳고, 험하고 높은 산을 오를 때에는 그에 맞는 장비들을 챙기는 것이 옳습니다. 유사시 일기불순으로 오는 추위와 안전한 산길을 위해서는 필요한 장비나 부품들을 반드시 챙겨야만 합니다. 비상식량과 어둠을 밝힐 랜턴도 있어야 하고, 위험에 처했을 때 신호를 보낼 수 있는 호루라기나 스마트폰, 무전기도 있으면 좋습니다.
우리도 건전한 신앙인으로 세상을 살아가려면 필요한 장비나 비상식량, 그리고 어둠을 밝힐 손전등이나 연락할 수 있는 통신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여행을 위해 필요한 돈이나 가방, 갈아입을 옷과 신, 그리고 지팡이를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오롯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는 주님의 당부이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이는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을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마태복음 14:28-30)”.
풍랑 가운데서도 주님이심을 알아 본 베드로가 용기를 내 물 위로 걸어 주님께로 걸어가게 해달라 간청함을 보면서, 복잡하고 혼탁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를 향해 모든 얽매임과 당면한 문제를 내어맡기고 주님만 바라보라고 교훈하시는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게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베드로가 주님께로 가기를 원했을 때 주님은 즉시 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는 지체 없이 배에서 뛰어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로 담대히 나아가기로 결단합니다. 환경과 조건을 의식하지 않고 강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베드로는, 시선이 오롯이 주님께로만 고정돼 있었기에 그 같은 모험을 감행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베드로는 다른 제자와 달리 모험심이 꽤나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세상을 살다 보면 때로 물 위를 걷는 것 같은 위기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오히려 그럴 때마다 주님을 향한 믿음을 보이며, 주님의 능력이 임하고 기적을 체험하는 놀라운 영광의 기회를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주님만 바라보고 가까이 가는 것까지 성공했지만, 출렁이는 파도와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보고 그만 무서워 물 속으로 빠져가면서 구원해 달라고 소리쳤던 것에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 위를 걷던 그가 순간적으로 시선을 돌려 풍랑을 바라보았을 때 두려움이 엄습해 왔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위기를 자초했음을 보게 됩니다. 믿음은 오롯이 고정관념과 환경, 상식을 초월하는 능력임을 확고히 믿어야 합니다. 믿음의 적은 곧 의심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주님의 시선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 안에서 평안을 누릴 때, 주님 말씀 안에서 위안을 받고 충전해 세상 죄악의 풍랑 속에서도 휘둘리지 않고 힘차게 물 위를 걸어 주님께로 다가갈 수 있도록 간절히 바라며 신뢰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에 어떤 뜻이 담겨져 있는지 이제 이해하실 것입니다. 여행을 위해 쓸데없는 것들은 다 버리고 가라는 주님의 단호한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뜻이 무엇인지 깊이 인식하며, “오로지 주님께 의탁하고 믿기만 하라”는 다정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날마다 ‘염려하지 않는 믿음으로’ 나아가는 성숙된 신앙인들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