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하늘에 소망을 두며, 가정의 권위를 세우는 아버지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요한복음 6:27-29)”.
여기서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썩지 않고 영원히 남아 있는 영적 양식, 둘째는 영생을 주는 양식입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28절에서 복수형으로 여러 율법의 행위를 말하지만, 여기서는 단수형을 썼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일은 하나뿐입니다. 곧 믿음이라는 행위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인치신 자’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열두 광주리를 남긴 예수님의 기적이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확증이 된다는 것임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어떠한 의무를 행하는 노력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자연히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요한복음 6:31-33)”.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두 가지 잘못을 지적하십니다. 첫째로 만나는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 둘째로 만나는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세의 만나는 참 떡이 아니었습니다. 그마저도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 주시는 참 떡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군중들은 예수가 광야에서 내려 주신 만나와 그것으로 상징되는 영적인 참 떡을 구분해서 말씀하신다는 점을 감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그들은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34절)”라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35절)”. 지금까지 논쟁에서 ‘참 떡’은 아버지의 대리자인 인자가(32절) 가져다 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27절). 그러나 예수님 말씀은 날카로운 비판을 불러올 것이 분명했습니다.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란, 하나님은 부분적으로만 생명을 주시지 않기에 부분적으로만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께 자기 모든 것을 맡기면, 영육으로 온전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임을 가르쳐 줍니다.
하지만 그들은 주님 말씀을 아직도 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요청은 사마리아 여인이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4:15)”라고 한 말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원하고 청하며 얻고자 하는 것은, 단지 배고픔을 채워줄 일상의 떡이 아닌 영적 배고픔을 채워주실 하나님 말씀, 그리스도의 계명과 주님의 거룩한 몸이 돼야 합니다. 물론 육신의 생명이나 이 세상을 미워하거나 외면하라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거룩한 영적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너무 당연하게도, 하나님 나라와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하는 일이라면 하나님 말씀과 계명에 따라 그리스도의 모범된 행동강령을 실천하는 살아있는 믿음, 궁극적이고 구체적인 사랑 실천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믿음의 군병들로서의 삶입니다.
주님께서는 창조하신 풍요로운 자원을 사람들 손에 맡기시고, 당신 자녀들인 우리 식탁에 음식이 모자라지 않게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말씀과 생명의 양식으로 거듭난 이들은 먼저 자녀들의 식탁에 음식이 모자라지 않게 하시고, 오늘 족한 만큼 날마다 청하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그리고 남의 것을 탐내거나 뺏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여분의 것을 내어주며 나누고 베푼다면, 그 사람은 하늘에서 주님의 우편에 앉아 이 세상에서 천국의 시민권을 이미 획득한 사람일 것입니다.
지금 나라 안 국회의원들의 민낯은 인간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백성들의 어려운 고통과 처절한 삶에는 귀를 닫은 채, 오롯이 정권 탈환을 위한 투쟁으로만 얼룩져 있습니다. 국민들에게는 매일같이 ‘어찌할꼬!’ 탄식하는 소리가 그칠 줄 모르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국민들이 수해를 입어도, 음주운전으로 해를 당해도, 경제적으로 난관에 부딪쳐 고달픈 세월을 보내도 눈과 입과 귀를 닫은 채, 오롯이 사법 리스크를 피하려 온갖 잔머리를 굴리며 오롯이 최고의 권력을 쥐겠다는 일념으로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이 특검과 탄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런 국회의원들을 뽑아줬는지, 정말 한심하다 못해 이제 구역질이 날 정도이며, 국민들이 나서야 할 때가 온 것 같기도 합니다.
국민들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방해되는 법이나 제도들을 하루속히 수정하거나 개혁하지는 못할망정, 허구한 날 피켓시위와 국회 안에서 말장난을 하는 모습들은 참아내기 힘든 고통입니다. 온갖 거짓말과 꼼수, 비리가 만연한 저 국회를 한시라도 빨리 없애는 것이 대한민국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헌법을 존중하고 나라의 법을 준수하는데, 가장 이상적이고 모범적으로 보여야 하는 국회의원들이 오히려 헌법과 법을 교묘히 이용하여 자신들의 방패막이와 상대 공격용으로 이용하고 있으니, 오늘날 젊은이들이 과연 무엇을 배우고 모델로 삼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젊은이들이 정치인들을 그대로 보며 배우고 있다면, 나라의 미래는 어쩌란 말입니까?
우리 신앙인들은 하늘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 생명의 말씀을 먹고 살아가지만, 믿지 않는 저들은 오롯이 권력과 돈의 종이 되어 그것을 얻기 위해 모든 악법을 총동원해서라도 쟁취하려 합니다.
가정에 경제적 위기가 닥쳐오면, 안정된 생활을 위해 자녀들을 할머니나 외할머니 집에 맡겨두고 직장이나 생업 일선에서 전력투구하며 갖은 수고를 다하기도 합니다. 아마 경험해 보신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자라면 영유아 때 부모님과 함께 했던 추억이 거의 없기 마련입니다. 특히 아버지는 추억과 한참 거리가 멉니다. 어린 시절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겠지만, 대신 할머니나 외할머니와의 추억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필자 역시 아버지께서 멀리 길을 떠나 보통 집에 안 계셔서, 아버지와의 추억은 거의 없는 편입니다. 날마다 대문 앞에서 아버지가 오시기를 기다렸던 추억만 눈가에 선합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와의 추억이 없는 것을 늘 불운으로 생각하고 투정 부리던 제 모습 때문인지, 어엿한 성인이 된 후에는 아버지처럼 가정을 멀리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지 않겠노라 다짐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의 아버지들이 가정에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을 보며 부러워했던 것처럼, 필자도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가족을 위해 살아갈 것을 다짐해 봅니다.
특히 친구들의 아버지를 보면, 그 험한 세월을 어떻게 참고 버티며 식구들을 위해 쉴 틈 없이 노동으로 피로를 감수해 가며 희생하셨는지 참으로 존경스러워 보입니다.
우리나라 같은 전통 사회에서 아버지 역할의 가장 큰 부분은 가족을 위한 식량 조달이었습니다. 가족의 기초생계를 해결할 능력을 갖춰, 자식들을 굶기지 않고 헐벗지 않게 하며 지붕 아래에서 잠을 재우는 일이 아버지의 역할이었습니다.
자식들을 위해 좀 더 배우게 하고, 훗날 이러한 고통을 주지 않으려 시골에 없어서는 안 될 유일한 생계 수단인 논이나 소를 팔아가면서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굶기지 않으려 무던히 애쓰셨던 아버지의 그 모습들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이 땅 모든 남성들이 다 아버지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자식 돌봄의 의무를 기꺼이 짊어지고 자식의 사회성과 도덕성에 방향과 지침을 주는 존재로 살겠다는 약속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자식이 따라야 할 깃대이며, 이상적 모델로 자녀들 보기에 영웅이 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국회의원들은 어떻습니까? 국민을 대신해 세비를 받아 일하면서 국민의 소리를 외면한 채, 국회는 그들의 나쁜 놀이터로 전략하고 말았습니다. 훗날 자식들로부터 무슨 원망을 들을지, 참으로 개탄스럽습니다. 양심도 없는 오롯이 권력을 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저들의 만행은, 머잖아 그 끝이 다가올 것입니다.
국회는 국민의 머슴으로서의 사명과 책임을 다해야 하는데, 오히려 국민들은 지붕도 없는 집에서 세찬 비바람과 허기진 배를 움켜지며 좋은 세상을 기대하지만, 국민들이 기대하고 원하는 모습은 사라지고, 악마와 같은 포식자로 돌변하여, 가정과 이웃과 나라를 망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천국 백성이라면, 반드시 가정을 거룩하게 만들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매일 밤마다 드리는 가정예배의 주인은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 사랑하는 자녀들 모두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가정예배 주인공이 된다면 이 나라도 굳건히 설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노란 봉투를 안주머니에서 꺼내 용돈을 주시고, 한 손엔 과자를 나눠주시며 호탕하게 웃으시고, 그동안의 피로도 잊은 채 당당하셨던 아버지의 모습과 권위가 살아나야, 가정이 살고 이 나라가 살아날 것입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