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우 칼럼] 르네상스(12)-조토
세상은 천재가 나타날 때 환호하고 열광한다. 그를 통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또한 천재는 자신의 정체를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가 세월과 함께 슬그머니 사라지는 경우도 흔하다. 사라진다는 것은 처음의 탁월함을 유지하지 못하고 평범함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천재로 살아가는 길이 힘들고 고달프기 때문인지 모른다. 사람들은 천재가 일어날 때 가만두지 않는다. 지나친 관심과 높은 기대를 하기에 그 기대에 부응하는 일은 너무나 힘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떠오르는 악상을 악보로 한번 그리면 전혀 수정할 필요가 없었다는 모차르트 같은 천재도 있었고, 그린 악보를 까맣게 될 정도로 수정한 베토벤 같은 천재도 있었다. 대부분 천재는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노력의 결정체라는 점이다.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서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큰 노력을 기울여 얻어낸 결과물을 통해 천재임을 증거한다. 그렇다면 그가 이룬 결과물이야말로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헌신의 결정체일 수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인류는 큰 빚을 지고 있다.
르네상스의 터를 닦은 화가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7-1337)의 집을 방문했다. 우리 역사로는 고려시대로, 7백여 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집이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는 피렌체의 북쪽 외곽 근교(Colle di Vespignano)에서 태어났다. 오르막에 그의 집이 있는데 조망이 좋다. 그곳에 그의 작업실을 보존해 놓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다. 피렌체 주변은 자연이 너무 아름답기에 예술가적 소양을 풍성하게 길러준다 싶다.
그는 당시의 유명한 화가 치마부에(Cimabue)를 따라다니며 프레스코화 기법을 배웠다. 이미 그의 실력은 스승을 넘어서고 있었기에 여기저기로부터 부름을 받게 되었다. 그런 중에 1306-1311년 앗시시의 성 프란시스 대성당의 벽에 성 프란시스의 일대기를 그리도록 부탁을 받았다.
당시는 예수님의 수난에 포커스를 맞추는 그림이 유행했다. 개인의 감정은 전혀 중요시되지 않았기에, 그림들은 정면을 응시하는 무표정인 그림들이었다. 더구나 예수님의 고난을 강조하는 그림은 더욱 그런 식으로 그렸다. 그런데 이런 관습을 조토는 과감하게 탈피하였다. 그는 처음으로 그림에 감정을 도입하였다. 그래서 슬픔의 표시로 고개를 숙인 다거나, 손을 얼굴에 대고 고개를 젖히는 동작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슬퍼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이런 방식은 그가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었고, 당시로서는 혁명적 발상이었다. 그는 명암을 통한 효과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원근법도 처음 적용하였다.
그림에 있어서 천재란 새로운 기법을 창안하는 사람이다. 그림을 따라 그리는 일은 웬만한 재능이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림의 양식을 새롭게 개발하는 일은 천재라야만 가능한다. 그런 일은 창의성을 요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고로 르네상스의 화가이자 최초의 미술평론가인 조르지오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는 조토를 “당시 유행하던 비잔틴 양식에서 벗어나, 200년 이상 무시돼 왔던 ‘정확하게 그리는 기법’을 도입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놀라운 회화 예술을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여기서 말하는 회화 예술이란 중세의 평면적 양식에서 벗어나 입체적이고 자연주의적 양식으로 발전시켰음을 뜻한다. 그리고 이런 양식의 출발 때문에 조토를 르네상스의 탄생을 알리는 화가로 인정한다.
조토가 이룬 미술사적 업적은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고흐를 떠올릴 수 있다. 그는 이 시대 모든 사람이 소장하고 싶어하는 그림을 그린 화가이다. 그러나 그의 생전에는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서 바에서 커피를 마시고 돈이 없어 대신 스케치를 해 주는 것으로 값을 대신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조각가나 화가가 생전에 그림이 팔리고 주문을 받는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드문 일이고 개인적으로는 큰 행운이다. 고로 당시에 알아주지 않는 그림을 그리는 모험을 한다는 것은 주문이 끊기고 외면당하게 되는 일인데, 그럼에도 자신의 길을 간다는 것은 큰 용기가 요구된다. 조 또는 그런 면에서 대단한 화가다.
그의 개척자적 행보는 수많은 제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됐다. 천재 미켈란젤로는 페루치 성당에 그려진 조토의 그림을 통해 구도와 프레스코화 기법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그 후에 태어난 위대한 르네상스의 화가나 조각가들이 그가 그린 그림을 통해 그림의 기법과 영감을 얻어갔다. 그는 앞서간 르네상스 태동의 선각자였기 때문이다.
로마한인교회 한평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