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우 칼럼] 르네상스(13)-인문학의 중흥기
르네상스 시대 인문학이 어떻게 중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을까? 바티칸이 시퍼렇게 눈을 치켜뜨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스콜라 신학이 중세를 지배할 때 사람들의 관심은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삶이었다. 당시는 철학은 신학의 시녀에 불과하다고 여겼고,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거기서 넘어서거나 후퇴하면 바티칸에 불충이 될 수 있게 되고, 까딱 잘못하면 화형을 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시대에 어떻게 인문학이 하나님을 맞서는 방향으로 꽃피울 수 있었을까?
당시 교황 에우제니우스 4세는 로마 귀족 출신이 아닌 베니스 출신이었기 때문에 살해 위협을 받아야 했다. 그는 급히 로마에서 배를 타고 테베레강을 통해 피렌체로 피신했다. 그리고 메디치가의 실력자 코시모의 도움을 받게 됐다. 즉 교황은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수도원에서 무려 9년 동안이나 머물면서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다.
또한 당시 그 수도원은 신흥 상인들의 자손들이 고위 성직자로 있었고, 그들은 신흥 상인들의 막대한 후원을 힘입어 가장 세속화된 수도원으로 변질되어 버린 상황이었다. 땅이 사람에 의해 더러워지는 것처럼, 수도원도 경건치 못한 수도사들에 의해 세속화된다.
이런 상황을 직시한 교황은 수도원을 개혁해야 한다는 결의를 갖게 되었다. 교황은 기존의 수도사들을 모두 몰아내고 엄격한 삶을 지향하는 도미니코 수도사들로 채우도록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산 마르코 수도원은 음산하고 습기가 많아 병을 앓는 수도사들이 많았다. 교황은 이들을 위해 코시모에게 산 마르코 재건축 비용으로 1만 플로린(한화 80억)을 후원하도록 요청했다.
이런 상황을 주시한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는 오히려 수도원을 신축하기로 했다. 그렇게 할 때 건축자로서 자신의 이름이 건물이 존재하는 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통크게 수도사들이 머물 수 있는 40여 개의 방과 도서관, 그리고 45명의 필사본 전문가를 고용하여 도서관을 채우도록 책을 필사하도록 했다. 이런 관계로 엮여 있었기에 코시모가 하는 일을 교황은 눈감아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교황 피우스 2세(1458-1464)는 코시모가 열정을 가지고 실행하는 인문학을 눈감아 주었다.
아무튼 코시모는 인문학의 중흥을 위해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밀어붙였다. 코시모는 마르실리오 피치노에게 플라톤의 학문을 연구하도록 했다. 그래서 태동된 것이 플라톤 아카데미였고, 플라톤의 이상 정치를 피렌체에서 구현하려고 시도했다. 플라톤 책임자 피치노는 코시모에게 최고의 선에 이르는 명상의 삶을 통해 구원의 길을 알려주려 했다. 당시 인문학자들은 인간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는 존재로 생각하는 새로운 교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 상황에서 태어난 그림이 곧 ‘보티첼리의 봄’(프리마베라)이었다. 이 그림은 로마 제국의 시인 오비디우스가 저술한 ‘로마의 축제들’이란 작품을 그림으로 그린 것으로, 피렌체의 어두운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비잔틴 제국에서 비밀리에 전해 내려온 금서 헤르메스 전서를 구하여 피치노가 라틴어로 번역하였다. 성서와 비슷하게 쓰여 있었는데, 인간은 쾌락적인 삶에서 나와 명상을 통해 신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사람들은 플라톤 아카데미 인문학자들에 의해 전파되는 신비주의에 깊이 빠져들었다. 이런 새로운 사상이 전 이탈리아로 확상됐다. 당시 사람들은 자연과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인문학자들이 해결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런 문제는 교황청의 큰 반대에 부딪혀야 했으나, 메디치 가문이라고 하는 큰 산이 이들의 정치적 보호막이 되어 주었기 때문에, 결정적 반대에 이르지는 않았다.
플라톤 아카데미의 책임자 피치노는 코시모에게 인간의 영혼도 불멸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그것은 물질적인 삶을 멀리하고 명상적인 삼을 추구할 때 가능하다고 했다. 이런 사상들이 머리를 디밀었고, 인간도 자연의 일부고 이성이 제대로 훈련만 하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방법의 하나가 마술이고, 별자리를 연구하는 일이라고 믿었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점에 열광한다고 한다. 매년 점이나 사주를 보는 사람들로 인해 약 4조 원이 넘는 시장이 형성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시대는 재차 르네상스로 회귀하려는 것이 아닌지 모른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는데 말이다.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코시모 메디치 같은 사람이 지도자로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로마한인교회 한평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