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우 칼럼] 르네상스(15)-도나텔로
미켈란젤로가 등장하기 전 탁월한 조각가는 단연 도나텔로(Donato di niccolo di Betto Bardi, 1386-1466)였다. 그는 피렌체 출신으로, 일찍부터 재능을 보였다. 천재가 출현한 셈이다. 왜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라는 작은 도시에서 한꺼번에 무수한 천재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날 수 있었을까?
이탈리아의 마을을 방문하게 되면 습관적으로 먼저 그곳에서 어떤 위인이 출생했는지를 찾아 본다. 그러나 그 많은 천 년 이상 된 마을 중에서도 그런 자가 나온 예는 아주 드물었다. 그런 데 비해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는 역사적으로 볼 때 특이한 현상이다 싶다.
도나텔로는 연장자인 브루넬레스키가 피렌체의 세례당의 문 제작을 위한 공모전에서 기베르티에 패하자 순순히 물러났다. 시 당국에서는 브루넬레스키의 작품도 좋았기에 두 사람이 함께 세례당의 청동 문을 제작하라고 하였으나, 브루넬레스키는 자존심 때문인지 그 제의를 뿌리쳤다. 그리고 공부하려고 로마로 갔는데, 브루넬레스키와 막역한 사이인 도나텔로는 두말없이 그를 따라갔다.
브루넬레스키는 로마에서 오랫동안 머물면서 초기 로마 시대의 건축물들을 연구했다. 제정 로마 시대의 건축이나 조각은 서로마가 멸망한 후 기술 이전이 되지 않았다. 마치 우리나라의 고려청자처럼. 고로 그 잃어버린 비법을 배우려고 무려 1,400년이나 버티고 있는 판테온을 찾아가 꼼꼼하게 배웠다. 벽을 두드려 보기도 하고, 몰래 벽을 뚫어 보기도 하면서 꼼꼼하게 메모했다.
그러나 도나텔로는 브루넬레스키의 그런 점이 흥미가 없었던지 몇 년 후 혼자 피렌체로 돌아왔다. 도나텔로는 기베르티, 브루넬레스키와 더불어 르네상스 초기 3대 조각가로 불린다. 그는 젊을 때 청동으로 다윗 상을 최초로 제작했다. 그 후 다윗은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이 즐겨 선택한 모델이 되었다. 도나텔로를 위시하여 베르끼오, 미켈란젤로, 베르리니, 그리고 화가 루벤스, 카라바조 역시 다윗을 모델로 삼았다.
왜 여러 조각가와 화가들이 한결같이 다윗을 모델로 삼았을까? 그 이유는 다윗은 가장 낮은 목동의 자리에서 가장 강력한 통일국가를 이룬 왕이 된 입지전적 인물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당시 외부의 위협을 빈번하게 받던 피렌체가 다윗과 같은 강력한 지도자의 출현을 앙망하였고, 메디치 가문의 지도자 코시모를 부각하기 위한 수단이었을지도 모른다. 코시모는 귀족 출신이 아니라 장사꾼 출신으로, 그것도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이루었다는 약점 때문에, 전통적 귀족 가문들이나 교회 측의 공격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나텔로가 제작한 다윗 상은 실제 남성의 크기(158cm)로, 지지대 없이 서 있는 형상이다. 신체의 균형적 비례는 옛 그리스나 로마 시대 조각의 부활을 예고한 작품이다. 목동이 즐겨 쓰는 월계수로 장식된 모자를 썼고, 장화를 신은 발로 목이 잘린 거대한 골리앗의 머리를 밟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다윗은 성경에 보면 나이가 어려 군대에 갈 수 없었다고 한 점을 주목하여, 소년티를 채 벗지 못한 모습으로 제작했다. 그 조각상은 이탈리아 미술사를 바꾼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런 형태로 제작한 것은 도나텔로가 처음이고, 그 후 미켈란젤로를 위시하여 많은 조각가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또한 1453년, 그의 대표작으로 높이 4m에 이르는 가타멜라타 장군의 기마상을 제작했다. 그 기마상은 파도바의 수호성인 안토니오 대성당 광장에 세워졌다. 청동으로 만든, 유럽 최초의 작품이다. 기마상은 9백여 년 동안 동상 제작법이 끊긴 고대 로마의 주물상을 재현하는 데 성공한 작품으로, 그 역사적 의미는 크다. 그 상은 로마에 세워진 아우렐리아 황제 기마상의 영향을 받았다.
그 후 그는 만년인 69세에 막달라 마리아 상을 제작했다. 막달라 마리아를 아름다운 여성으로 묘사하는 대신, 더러운 차림의 옷을 입고, 움푹 파인 눈, 그리고 볼썽사납게 푹 들어간 볼, 마른 팔다리로, 늙은이의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즉 세상에서 저주받은 창녀가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평생 주님을 사랑하고 좇아갔던 막달라 마리아. 그녀는 양손을 모으고 기도하며, 하늘을 향한 모습은 은혜에 감사하고 천국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상기시켜 주고 있는 모습이다. 이제껏 세상에서 받은 인기와 명예가 세상을 떠나야 할 도나텔로에게 어떤 위안이나 위로가 될 수 있었을까? 오로지 주님의 긍휼하심을 구하는 간절한 열망을 담아낸 작품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는 후배들에게 형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차원을 뛰어넘어 내면을 표현하라고 권고했다. 도나텔로는 선에 집착하지 않고 시각적 구현을 표현하려는 점에서 대단한 예술가였다. 그는 조각의 형태보다 시각적 효과 중에 빛과 그림자가 구현하는 조각의 시각적 효과를 중요하게 인식한 예술가였다. 그의 이러한 관점은 바로코 시대의 위대한 화가 카라바조가 빛과 어둠을 그림에 적용하도록 아이디어를 제공한 선각자였던 셈이다.
로마한인교회 한평우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