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낡은 전통보다 사랑이 우선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마가복음 7:5-8)”.
무더운 날씨와의 전쟁으로 여름의 향기는 잊은 듯, 언제 그렇게 더웠던가 싶을 정도로 몹시 괴롭혔던 날씨가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일본 ‘산산’ 태풍 영향으로 그 뜨겁던 열풍이 조금은 가라앉은 9월을 맞이합니다.
민족의 대명절인 한가위를 앞두고, 조상들의 묘를 찾아 벌초하는 사람들의 뉴스가 나옵니다. 이러한 풍습은 오래도록 이어져 온 행위입니다.
전통(傳統)이란 사전적으로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과거로부터 이어 내려오는 바람직한 사상이나 관습, 행동 따위가 계통을 이루어 현재까지 전해진 것입니다. 관례(慣例)는 예로부터 굳어져 계속 전해온 사례나 관습을 말합니다.
관습(慣習)이란 한 사회에서 역사적으로 굳어진 행동 양식이나 습관입니다. 풍습(風習)이란 풍속과 습관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며, 풍속(風俗)은 옛날부터 그 사회에 전해오는 생활 전반의 습관이나 버릇 따위를 이르는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모두가 비슷한 말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는 말씀을 요약하면, 예수님의 교훈과 행동에 대해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기득권층은 연합 전선을 형성해 대적했습니다. 이에 손 씻는 문제로 논쟁을 하실 때, 예수님께서는 공격적인 자세로 그들의 사악한 의도를 질책하셨습니다. 제기하지 않은 문제(부모 공경)까지 들추며 외식된 자들의 본성을 통렬히 공박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논쟁을 통해 무엇이 진정으로 사람을 더럽히는가를 교훈하십니다. 외적인 청결보다 내적인 정결을, 형식적 전통 준수보다는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것을 강조하십니다.
지금 대한민국 여의도 국회의 민낯은 어떻습니까?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국가를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 머리를 맞대고 골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늘 등장하는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처럼 논쟁 자체를 즐기며 자신들의 권력과 부를 위해 헛된 이념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니,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 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6절)”는 말씀은 이사야 29장 13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형식을 따르는 데는 열성을 다하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음을 개탄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조상들의 전통에 관한 논쟁을 들려줍니다. 제자 몇 사람이 더러운 손, 곧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본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어떻게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의 질문을 받으시고, 또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질타하십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그렇지 않다며, 계명 안에 담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온데간데없고 외적으로 드러나 보이는 사람의 규정과 전통만을 고집하는 이들을 꾸짖으십니다.
단지 보이는 부분으로 다른 이들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지금 우리 모습을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 자신의 깊은 내면을 더 갈고 닦아야 할 이유이기도합니다.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Johann Heinrich Pestalozzi)는 174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습니다. 일찍이 부모를 잃은 그의 사연은 어른이 된 후 펼친 교육철학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상당히 힘들었기에, 이러한 경험은 교육을 통해 사회 개선을 꾀하고자 한 동기 중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관심사는 교육과 어린이 복지였습니다. 그는 교육 분야에서 혁신적 인물로 널리 존경받았고, 그의 이론과 방법은 후대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아동 중심 교육을 강조하며, 아동이 교육으로 잠재력을 완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러한 페스탈로치의 교육 방법은 전통적 방식과 명확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 밖에 아동 중심 교육과 전인 교육을 강조하고, 각 아동의 개별적 필요와 발달 속도를 고려하는 교육을 주장했습니다.
그의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아동 각자가 잠재력을 자연스럽게 발휘하도록 돕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또 교육을 사회적 불평등 해소의 도구로 보았고, 모든 계층의 아동들에게 교육 기회를 고르게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페스탈로치의 교육 이념과 방법은 유럽 전역에 퍼져 교육개혁 운동에 영향을 주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교육 철학과 실천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영향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 아닙니까?
그 시대에 우리나라에서 아이들에 대한 대우가 어떠했습니까? 아이들에게 눈길은커녕 관심조차 없던 어른들 위주 사회에서 아이들은 외면을 당해야 했고, 사람 대접조차 못 받던 시대였습니다.
기독교계는 어떻습니까?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올 당시부터 지금까지 고정관념과 전통 방식에만 의존한 탓에, 교회 성장이 멈춰 버리고 말았습니다. 시대에 따라 말씀을 중심 삼아야 하는데, 개혁과 혁신의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 때문에 교회는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여기 장막 셋을 짓자’던 제자들의 안일한 태도를 보는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요? 권력을 탐하며 높은 자리를 꿰차려는 그들의 마음은 주님의 사랑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고, 마치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의 모습과도 같지 않습니까?
전통은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낡고 부패한 전통은 도려내야 합니다. 오래 묶여온 관습과 풍습, 풍속과 전례는 과감히 버려야 하는데, 오롯이 자신들의 보신에만 열중하다 보니 기독교의 미래만 더욱 암울해질 뿐입니다. 하나님의 귀한 양들을 지도하며 그들을 영적으로 이끌고 나아가야 하는데, 과거로부터 해오던 방식대로 진행되고 있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강단에서 입으로나 설파하는 말씀은 이제 그만 물리고,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셨던 실천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직접 행동하는 지도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나눔과 배려와 사랑을 더해, 우리 마음에서부터,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부터 하늘나라처럼 평안과 즐거움, 재미의 동산이 되도록 힘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전통, 즉 사람의 계명과 유전이 하나님 말씀과 같은 권위를 가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시 서기관들은 유전, 즉 의례적인 법을 더 존중하고 있었습니다.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마가복음 7:14-18)”.
예수님께서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음식물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오는 악한 생각, 말, 행실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결례 법을 잘못 받아들이는 것을 비판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밖에서 들어가는 것 즉 식물이 사람을 오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 마음의 불결함이 근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리새인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제자들의 씻지 않은 손이 아니라 마음이 문제임을 일깨우십니다.
18-19절 말씀은 예수님께서 외부의 의식적 더러움이 아닌, 마음의 정결함이 중요함을 말씀하십니다. 손을 씻지 않고 먹어도 결국은 배설이 되니, 마음에는 영향을 끼치지는 못한다는 뜻입니다.
‘모든 식물은 깨끗하다’는 예수님의 선언은 모세의 율법을 절대시하고 랍비들의 유전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던 유대인들에게는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식물에 관한 규례는 초대교회 시대에 이르러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오래 전해오는 전통이나 관례, 그리고 풍습, 풍속, 습관이 아무리 옳다 해도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고, 옳은 전통이나 관례. 풍습, 풍속, 습관이라도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모든 행동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시대나 현 시대나 별 차이 없이 오랜 전통과 관례, 그리고 풍습, 풍속, 습관이 사람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고정관념과 고집과 아집으로 변화를 싫어하는 시대입니다. 거기다 인간의 탐심이 추가돼, 온통 가짜뉴스와 거짓말, 뜬소문만이 세상을 지배하여, 노아의 대홍수 같은 심판의 날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 아닌가, 아니면 소돔과 고모라의 시대를 재촉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잘못된 전통이나 관례, 풍습이나 풍속, 습관을 제대로 바꾸지 않는다면 세상의 끝이 머지않아 도래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만을 전통이자 관례이며 풍습과 풍속, 습관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어느 신사는 ‘법원은 하늘로 올라갔고, 검찰은 땅속으로 들어갔다’고 이야기합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유권무죄 무권유죄’는 고질병이 됐습니다. 법을 어긴 범죄자들이 입법기관에 떼거지로 들어가 법을 만들고 있는 코미디 같은 국회는 연말 ‘코미디 대상감’이라는 유튜브 댓글을 그냥 웃어넘길 수 없는 실정이어서 참으로 유감입니다.
맡은 사명은 제대로 감당하지 않은 채 오롯이 기득권 유지와 권력 쟁취에만 몰두해 나라를 위태롭게 하며, 겉으로는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체 가면을 쓴 이중적 태도로 국회를 꿰차고 있으니, 그들의 마음과 머리에서 무엇이 나오겠습니까?
국회의원들 역시 마음 속에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은 없고, 오롯이 권력과 부귀영화만을 위해 권력을 남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습니다. 국민들이 결단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불우했던 환경을 극복하며 이겨낸 페스탈로치 선생이 자신의 어려움을 승화시켜 어린 시절 아픔을 교육 혁신과 개혁으로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 것처럼, 교계에서도 목사와 장로들만을 위한 총회 법을 하루속히 개정하고 개혁과 혁신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 주님과 성도들을 위해 올바른 전통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의 사랑과 십자가의 의미를 먼저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교회 안에서 주님의 십자가와 전혀 상관없이 쓸데없는 논쟁과 일로 싸우는 모습은 벗어버리고, 먼저 교계가 아픔을 딛고 거듭나는 새 역사를 만들어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변화된 마음으로 좋은 전통은 간직하고, 시대 흐름에 변화를 이끌어내며 날마다 십자가의 정신으로 이웃에게 베푸는 삶으로 예수님 사랑을 널리 전파하는 전통을 세워가야 하겠습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