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만 읽는 설교 288] 돌로 치려는 이유
본문: 요한복음 10:32-33
험악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주님을 돌을 들어 치려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은 분노했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분노로, 돌을 들어 주님을 치려 하는 급박한 상황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을 때, 분노가 충천해집니다. 그때 사람은 판단력이 마비되면서 우발적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상황이 꼭 그렇습니다. 이 본문을 배경으로 ‘돌로 치려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1. 선한 일의 오해
선한 일을 악한 일로 오해했다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32절)”.
유대인들이 주님의 선한 일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해하게 됩니다. 여기서 유대인들이 주님의 선한 일을 오해를 하게 된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그 중 기대와 상반된 모습이 가장 큽니다. 유대인들은 주님을 메시아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정치적 해방자나 권력자로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영적 구원을 주도하면서, 세속적인 권력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가 하면 유대교의 전통과 충돌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주님의 가르침과 유대교의 전통이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유대교의 제도와 규범을 뛰어넘는 예수님의 새로운 가르침은 유대인들에게 혼란과 반발을 일으켰습니다.
무엇보다도 현실적 이익 부재도 문제입니다. 주님의 가르침은 지상의 육적 이익보다는 하늘의 영적 이익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물질적 번영과 권력을 선호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가르침은 유대교의 권위와 교회의 권력에 반대됐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거부하려는 유대인들의 태도를 더욱 격렬하게 만들었습니다. 선한 일의 오해가 돌로 치려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2. 신성모독 때문
주님의 가르침이 신성모독을 한다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33절)”.
신성모독(神聖冒瀆)이란 종교 등 신성한 것을 훼손하거나 모욕하는 행위입니다. 이는 특정 종교나 신앙체계, 신성한 인물에 대한 비방, 조롱 행위 등을 포함합니다. 종교적 문화나 사회에서는 신성모독이 큰 논란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 당국이나 지역 사회에서 신성모독을 단속하고 처벌하기도 합니다.
신성모독은 각 나라에서 종교적 신뢰와 존경을 존중하고 보호하기 위해 법적으로 규제됩니다. 신앙적인 대상에 대해 모욕적 발언이나 행동, 신성한 대상을 조롱하거나 모욕하는 발언과 글쓰기, 그리고 그림 등을 포함합니다.
역사적으로 신성모독으로 재판을 받은 인물이 있습니다. 17세기 이탈리아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갈릴레오(Galileo Galilei)입니다. 갈릴레오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는 산술적 증거를 제시해 가톨릭 교회의 공식 견해와 충돌했습니다. 그 결과 갈릴레오는 교회에 의해 신성모독죄로 기소되면서 그의 작품들이 금지되었습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이란 작가인 살만 루시디(The Salman Rushdie)도 있습니다. 루시디는 1988년 《사탄의 시인》(The Satanic Verses)이라는 소설로 사형선고를 받아 표현의 자유를 위해 순교를 당합니다. 신앙을 중시하는 중동에서는 신성모독이 중요하게 취급됩니다. 유대인들이 신성모독으로 주님을 돌로 치려는 이유입니다.
3. 자칭 하나님 때문
자칭 하나님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니라(33절)”.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동격을 넘어, 내가 바로 하나님이다”는 말로 이해합니다. 그들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에 직면합니다. 유대인들은 주님이 어디서 태어나셨는지 알고, 그 부모를 알고 있는데 “주님 자신이 신이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주님이 “자칭 하나님이다”라는 것은 유대교 관점과 주님의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유대교 관점에서 하나님은 절대적이고 유일한 존재로 인식됩니다.
유대교의 중요한 신앙이 되는 ‘하나님의 증언’은 “하나님은 하나뿐이며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신명기 6:4)”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하나님이라고 자칭하는 것은 유대교의 유일신에 반하는 것으로 인식됩니다.
반면 주님의 관점에서 보면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세주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존재와 본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주님의 삶과 가르침, 그리고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완수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하나님으로 선포하는 것은 기독교의 중요한 신앙과 일치합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주님의 존재와 주님의 가르침을 유대교의 가르침과 대립되는 것으로 여깁니다. 유대인과 다르게 주님을 믿는 기독교인은 주님의 신성한 본성과 하나님과의 동일성을 신앙으로 받아들입니다. ‘자칭 하나님’이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는 이유입니다.
4. 정리
사람이 살면서 반드시 믿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주님이 인간이 되고, 신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옳은가 그른가의 문제가 아니라,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의 결단만 필요합니다. 가는 인생의 길에 주님을 만나 주님이 하나님으로 믿어지는 축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는 주님의 선한 일을 오해하는 사람이 되지 말게 하옵소서. 우리는 주님의 일을 신성모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지 말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는 주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을 세상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으로 믿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
전 한일장신대 교수
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문의: www.kocpt.com
상담: 02-2202-3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