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찢어진 소파
셋째 아이가 3개월 동안 숙박하면서 진행되는 상담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열심히 일을 하고 필요한 학비를 모아서 간 곳이기에 부모로서 대견하기도 했고, 가서 정말 좋은 시간을 경험하길 원했습니다.
그런데 한창 학교가 진행되고 있을 때, 아이에게서 카톡이 하나 왔습니다. 거기에는 사진이 두 장이 나란히 있었고 한 장에는 ‘나’, 그리고 다른 한 장은 ‘엄마’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나’라고 되어 있는 사진에는 찢어진 소파가 있었는데, 다 찢어져서 속이 허옇게 보이는 모습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엄마’ 사진의 소파는 그 찢어진 부분이 아주 예쁘게 봉해져 있었고, 거기에 앰브리오로 수가 놓여 있어 아주 훌륭한 예술 작품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런 설명이 없는 그런 그림을 여러분이 받는다면, 어떻게 해석하셨을까요? 순간 저는 그 사진을 보고 마음이 슬퍼졌습니다. 자신을 찢어진 소파로 보고, 반대로 엄마는 치유를 다 받아서 멋지게 회복된 모습으로 보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멋지게 회복된 엄마를 보여주는 사진이 기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찢어진 소파로 생각하는 딸이 너무 안쓰러워서 속상하고 슬퍼진 것이었습니다. 자신에 대해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는지 몰랐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아가 저 자신을 탓하는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치유하고 상담하는 사람인데, 우리 아이를 제대로 못 키워서 이렇게 만들어 놓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삶에 대한 회의가 오면서 마음이 우울해졌습니다. 그렇지만 어떡해서든 아이를 도와주어야 겠다는 생각에 ‘OO야, 너는 엄마보다 더 아름답게 될 거야! 하나님께서 너를 그렇게 하실 거야’라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미국과 호주는 시차가 나기에 한참 지나서 아이와 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사진을 보냈어? 왜 너 자신을 찢어진 쇼파라고 생각했어?“ 물었습니다. 그런데 아이 말이 황당했습니다. “엄마, 그 사진 인스타그램에 올라왔는데, 좋아서 보냈어.”
“응… 그래?” 라고 답을 하자, 아이가 이어서 말했습니다. “내 마음이 그 소파처럼 찢어져 있을 때, 엄마는 늘 내 마음을 엠브리오로 꽃을 만들어 준 것처럼 치료해 주는 역할을 했어!”
아이의 그 말을 듣자, 저의 마음은 갑자기 감사로 바뀌면서 너무나 기뻤습니다. 딸의 마음을 달래주고 싸매주며, 거기서 벗어나 더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드는 일에 사용됐다는 생각에 감사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가족이 그렇게 저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참 감사했습니다.
이 경험을 하면서, 우리는 같은 사건을 만나도 다르게 반응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마음이 우울해지거나 괴로워질 수도 있고, 마음이 따뜻해지거나 행복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실제로 누군가는 인스타그램에서 그 그림을 보며 “나는 찢어진 소파 같은데 나에게는 마음을 달래주는 엄마가 없네!”라면서 더 기분이 나빠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저희 딸처럼 엄마의 존재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저처럼 엉뚱한 해석을 하다 마음이 힘든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신기합니다. 외부로부터 감각 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들을 처리하면서, 그것에 적절한 반응을 하게 합니다. 어떤 사람의 마음에는 잘못된 정보들을 기반으로 위험하지 않은 정보도 과하게 위험한 해석을 하기도 하고, 나쁜 의도가 아닌 것도 표정만 보고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잘못된 정보들이 뇌에 많이 축적된 사람들은 그 정보를 해석하는 뇌의 모양도 달라져 있습니다. 달라진 뇌 모양은 외부 특정 자극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어, 심각한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많이 경험한 경우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사이즈가 작다고 합니다. 어쩌면 트라우마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해마를 발달시키지 않고 기억을 차단하려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보호본능으로 시작됐는지 모릅니다. 그에 비해 편도체는 활성화돼 있어 외부 자극에는 민감하게, 때로는 과하게 반응하며 부정적 해석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어린 시절이나 이후 삶 속 경험들이 어떤 정보를 가져다 주었는지를 인식하고, 그것이 나에게 가져다 준 긍정적 패턴과 부정적 패턴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는 우리가 경험한 정보를 내 안에 있는 마음의 패턴이 해석해 버리는 것을 옳다고 생각하며 거기에 기반을 두고 쉽게 감정적으로 행동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필자의 경우에는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받았던 신체적 체벌이나 권위자로부터 받았던 판단적 메시지들의 정보가 내면에 자리잡아 “내가 충분한 사람이 아니어서 그래, 내가 더 잘 해야 해. 내가 문제가 있는 아이야”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결국 자기 연민이나 비난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감사하게도 그것이 내 안에 잘못 자리잡은 거짓 메시지인 줄 알게 돼, 지금은 자기 비하가 많이 사라졌고 대신 자기 공감으로 나 자신을 이해해 주고 마음의 생각을 바꾸는 일들을 통해 감정이 편안해지는 경우가 훨씬 많아졌습니다.
필자의 마음이 훨씬 편안해질 수 있었던 것은 거짓된 생각을 진리의 생각, 현실적인 생각, 그리고 소망의 생각으로 바꾸고, 그렇게 훈련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통해 그 생각을 바꾸는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은 신기하게도 하나님께서 주신 ‘가소성’이 있습니다. 많은 신경 조직을 통해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극과 정보를 처리하는 마음 시스템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우울증, 불안증과 같은 신경증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마음에서 정보들을 건강하게 처리하고 전달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내 마음을 돌보고 고치는 것이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복이 가능하므로, 내 마음의 모양이 어떤 경험으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전문가의 도움으로 잘 발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발견을 현실을 기반한 진리의 생각으로, 그리고 긍정적인 소망의 생각으로 바꾸는 것을 통해 마음을 회복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마음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천국이 되기도 하고 지옥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천국이 될 수 있는 마음 가꾸기에 힘씁시다.
서미진 박사
호주기독교대학 부학장
호주 한인 생명의 전화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