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이성으로 구원에 이르려 했던 르네상스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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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우 칼럼] 르네상스(17)-단테

피렌체(Firenze)는 큰 도시는 아니지만 정감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마치 어머니의 따스한 품처럼. 그곳은 중세 도시답게 고풍스럽고 아기자기하여 마치 타임캡슐을 타고 진입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옛 조상들이 살았던 가옥들이 그대로 그 자리에 있고, 말과 마차의 줄을 매던 쇠고랑이 건물 벽에 처음 있던 대로 박혀 있다. 법으로 규제하고 있기에, 21세기를 사는 방문자들에게 중세의 15세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가 된다. 방문자 역시 중세 시민으로 참여하게 됨을 인식하게 만든다. 이런 도시가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사람들과 동물들만 바뀌었을 뿐….

시내를 걷던 중 한눈에 보아도 오랜 풍상을 겪었을 건물 앞에 이르자 동행인은 생각난다는 듯, “이 건물이 바로 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의 생가예요”라고 했다. 단테 한 사람으로 인해 현대 이탈리아어의 표준이 된 곳이 바로 피렌체다. 단테는 이곳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아버지 대에 와서 가문이 기울게 되었다. 그의 정식 이름은 두란테 델리 알리기에리(Durante degli Alighieri)로 “장수하는 날개가 달린 자”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단테.

▲단테.

그는 오랫동안 신학과 인문학, 스콜라 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학문을 섭렵했다. 그리고 젊은 나이에 피렌체(Firenze)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고, 35세에 2개월 임기의 피렌체 공화국의 높은 지위에 올랐다. 그는 구엘프파(교황 지지파) 당에 속했는데, 이는 기벨린파(신성로마제국 황제 지지파)와의 투쟁에서 승리하자 다시 흑당과 백당으로 나뉘었다. 흑당은 교황의 야심을 이용해 백당을 패배시켰고, 그참에 백당의 단테를 국가의 반역자로 기소하여 1302년에 2년 동안 국외로 추방하기로 결의했다. 그 후 단테에게 잘못을 시인하면 사면해 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했지만 그가 거절하자, 사형을 선고함으로 조국에 들어오는 길을 영구히 막아 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단테를 영접한 사람이 바로 라벤나 공작이었다.

단테의 현실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똑똑하고 뛰어난 그릇은 어김없이 사방으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받게 되어 있다. 강제로 조국에서 쫓겨난 그는 타국에서 쓰라린 심정으로 신곡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지성인들이 사용하는 라틴어가 아니라 토속 방언을 사용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유럽을 지배한 스콜라 신학에 반기를 들려는 행위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리운 조국 시민들이 사용하고 있는 방언을 애틋한 마음으로 그리워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외국에 살다가 고국을 방문하여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놀라게 된다. 갑자기 통역의 은사를 받았는가 하는 착각(?)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로마에서는 정신을 차려야 들려오는 언어들이, 가만히 있어도 미세한 부분까지 들려오기 때문이다. 평소에 그리워하던 언어들, 단테 역시 그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단테는 9살 때 베끼오다리(Ponte Vecchio)에서 잠깐 스치듯 만난 후 다시 만날 수 없었던 베아트리체를 신곡에서 천국의 안내자로 등장시켰다. 이는 그가 그녀를 마음 깊이 잊지 못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르네상스 인문학에 불을 지폈던 문필가들에게는 단테에게 베아트리체가 있었던 것처럼 공통점이 있다. 데카메론을 쓴 보카치오(Giovani Boccaio, 1313-1375)에게는 피아메타(Piameta)라는 여인이 있었고, 페트라카(1304-1374)에게는 라우라라는 여인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그 여인들은 결코 다가갈 수 없는 이상성을 의미할 수 있다. 그래서 늘 바라보며 사랑하며 소망하는 대상이었다. 그 대상이 있어 인고의 세월을 참아내며, 또한 자신의 결핍을 보충하려고 발버둥치게 되었다 싶다. 그것은 곧 기독교의 성화를 연상케 한다. 인문학의 선배 단테가 어린 시절에 만난 여인을 평생 삶의 주제로 여겼기에, 자신들도 이상적 여인을 마음에 두었는지 모른다.

단테는 자신을 따뜻하게 영접한 라벤나 공작의 후의에 감사하여, 베네치아와의 외교적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친히 나섰다. 그래서 라벤나와 베네치아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사절로 다녀오던 중, 말라리아에 걸려 라벤나에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 후 그의 조국 피렌체는 단테의 위대성을 뒤늦게 깨닫고 그의 시신을 가져가려고 애를 썼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자 해마다 단테의 죽은 날을 기념하여 등을 다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리고 천재를 알아보지 못한 것을 후회하여 그의 작품 신곡을 모든 사람이 읽도록 배려하는 것으로 그를 예우하려고 노력했다.

단테가 평생 흠모했던 베아트리체는 다른 사람과 결혼하여 24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그녀를 영원한 여인으로 승화했다. 그래서 신곡(La Divina Commedia)에서 자신을 천국으로 안내하는 여인으로 등장시켰고, 그가 평소에 존경했던 제정 로마의 대시인 베르길리우스를 연옥의 안내자로 부활시켰다. 그런데 혹자는 베르길리우스가 인문학의 중심, 즉 이성(지식)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이성의 계발을 통하여 인간이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완곡하게 표현하였다고 언급했다. 믿는 사람들이 흑사병에 그토록 많이 희생당했기에, 혹 구원을 위한 다른 길은 없나 하고 점성술이나 연금술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몸부림쳤던 르네상스였다.

더 나아가서 베아트리체를 천국의 안내자로 등장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는 사랑이라고 해석하면서 인간은 사랑의 힘으로 구원의 자리에 나아갈 수 있음을 비유로 표현했다고 주장한다. 즉 이성을 통해 지식을 연마하고 마음을 다해 사랑할 때 구원의 길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의인화했다고 했다. 이런 인문주의가 후배 페트라카에 의해 이어지고 확산돼, 온 세상에 하나님을 배제한 이성을 높이는 르네상스의 인문학이 퍼지게 되었다.

단테가 지옥에서 만난 스승 라티니가 “너의 별을 따라가거라. 그러면 너의 천국에 이를 것이다”라고 했는데, 그것은 다른 별이 아닌 바로 ‘너의 별’, 주어진 별이나 공동의 별이 아니라 자신의 별을 만들어 그것을 향해 나아가면 이상에 도달할 것이라는 의미라고 했다. 그러나 성경의 진리와는 크게 다르다 싶다. 단테는 이성주의자들이 주장하듯, 이성을 계발하고 열심히 사랑하면 구원에 이른다고 했고, 후배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자체가 구원이라고 했다. 실존주의자 사르트르의 주장처럼…. 그러나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야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선언한다. 캔터베리의 감독 안셀무스는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지 않으면 인간은 절대로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했다. 우리 앞에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는 천국과 지옥. 단테가 신곡에서 말하고 싶은 깊은 의미는 무엇일까?

로마한인교회 한평우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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