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만 읽는 설교 289] 신성모독이 안 되는 이유
본문: 요한복음 10:34-36
논쟁이 일어나는 부분입니다. 주님과 유대인 간에 일어나는 논쟁입니다. 유대인들은 주님이 자칭 하나님이라고 했다는 것에 문제를 삼고 있습니다. 주님이 신성모독을 한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주님이 하나님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구약성경을 들어 전혀 신성모독이 아님을 매우 합리적으로 주장하십니다. 이 본문을 배경으로 ‘신성모독이 안 되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1. 구약성경에서 유대인을 신이라고 지칭했기 때문
아삽의 시에서 유대인을 신이라 말한 적이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34절)”.
율법은 구약성경 전체를 가리킵니다. ‘아삽의 시’인 시편 82편 6-7절을 봅시다.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모두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했으나 너희는 사람처럼 죽으며 고관의 하나같이 넘어지리로다.”
구약성경에서 유대인의 특별한 사람을 신으로 지칭합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그들을 특별히 선택하고 이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로 약속하였다고 믿습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과의 계약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이들을 특별한 백성으로 구별하고 인도하겠다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신권국가에서 통치자나 행정가의 권위를 인정합니다. 그들의 권위와 능력을 인정하여 신성한 위업을 하나님의 대표자로 봅니다. 이는 옛 신성한 견해가 있었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님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당성입니다. 신성모독 없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단조입니다. 특이한 경우 구약에서도 ‘신의 아들들’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유대인을 신이라고 지칭했기에 주님의 신성모독이 정당하다는 이유입니다.
2.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사람을 신이라 하였기 때문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사람을 신이라 했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35절)”.
유대인의 탈무드에서 많이 사용되는 유대식 말하는 방식입니다. 논쟁의 어떤 지점에서든 주장이나 사례를 제시하면, “그건 깨질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또는 이런저런 방식으로 반대하고 반박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파기될 수 없습니다. 성경을 반대할 수 없으며, 성경에 대해 반박할 수 없습니다. 이는 성경의 절대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받은 사람을 신이라 했다는 근거를 내세웁니다. 성경의 신성성과 권위를 강조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전달됐음을 나타냅니다.
기독교는 성경의 예언과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입증합니다. 예언된 주님의 출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과 관련된 성경적 예언들입니다. 주님의 존재와 활동은 역사적으로 문서화되어 있습니다. 주님을 진정으로 만나고 경험함으로써 주님의 존재와 신성함을 체험합니다.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를 만나고 믿음을 갖게 됨으로써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된 삶의 증거는 그리스도의 존재와 영향력을 입증합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사람을 신이라 하였기에 하나님이 보내신 주님이 신성모독이 안 되는 이유입니다
3.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
하나님이 세상에 보낸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36절)”.
주님이 신성모독이라고 주장하는 유대인들에게 반문합니다. 너희들은 사람 중에서도 특별한 사람을 신의 아들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받는 선지자들을 신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거룩하신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을 두고 신성모독이라고 할 수 있는가의 반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반문’은 한 가지 주장이나 주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때 사용합니다. 부정적 반응을 나타내는 질문이나 발언을 가리킵니다. 이는 주장이나 주제에 대한 의문이나 불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반문할 때는 주로 비판적인 의견을 나타냅니다. 반문은 주장이나 주제에 대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검토를 장려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반문은 다른 관점을 고려하도록 사람들에게 자극을 줍니다.
주님은 세상에 태어나시기 전에 예정되면서 임명되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영원한 로고스로 이 세상에 왔습니다. 주님은 영원한 말씀 자체이셨습니다. 주님은 다시 생명을 얻기 위해 십자가에서 그 생명을 구원의 속죄물로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하였으니 신성을 모독한다 하느냐?”는 정당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사실에 대해 옳은가 그른가를 따질 것이 아니라, 믿을 것인가 믿지 않을 것인가를 결단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신성모독이 안 되는 이유입니다.
4. 정리
사람이 살면서 참 어렵고도 쉬운 일이 있습니다. 믿느냐 믿지 못하느냐의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믿기 어려운 일을 쉽게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사람은 쉽게 믿을 일을 전혀 믿지 못하는 일이 있습니다. 가는 인생의 길에 주님을 만나서 주님이 하나님으로 믿어지는 축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신성모독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되지 말게 하옵소서.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신성모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지 말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는 주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을 세상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으로 믿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
전 한일장신대 교수
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문의: www.kocpt.com
상담: 02-2202-3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