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황금률(黃金律)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태복음 7:12)”.
그리스도인들 중 ‘황금률’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황금률이란 ‘황금과 같은 율법’이란 뜻으로, 매우 깊은 뜻을 담고 있어 인생에 유익한 교훈이 되는 말이라는 뜻입니다.
더구나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의 도리를 요약한 기본적 윤리 원칙으로, 신약 성경 마태복음 7장 12절에 나옵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예수님 가르침으로, 이웃에게 대접을 받기에 앞서 내가 먼저 이웃을 위해 베푸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2024년 힘든 여름도 다 지났지만, 무엇이 그리 아쉬운지 아직도 한낮의 태양은 열기가 뜨겁습니다. 올 여름은 40도 가깝게 펄펄 끓는 가마솥 같았습니다. 갈수록 여름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진다니, 내년 여름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봄은 짧고, 여름은 길며, 가을은 더욱 짧아졌습니다. 안타깝게도 긴 겨울과 여름 두 계절만 남은 지경입니다. 필자는 가을을 너무 좋아하는데, 갈수록 가을이 점점 짧아져 사라질 위기까지 왔다니 마음이 아픕니다. 이 모두는 인간들의 탐심으로 하나님의 창작품인 자연을 훼손하고 망가뜨린 대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도 가을이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아침저녁으로 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뜨겁던 태양의 열기도 점점 식어갑니다. 드높은 가을 하늘은 유독 푸르고 맑고 청명합니다. 게다가 밤바다에 펼쳐진 은하수와 밤하늘의 크고 작은 별들을 보노라면, 어느새 시인처럼 마음이 적셔지는 애틋한 밤입니다.
가을은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의미로 풍요롭고 아름다운 계절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특히 가을에는 책 읽기가 아주 좋은 계절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책을 읽는 인구가 줄어들고 있어, 독서의 계절을 무색케 합니다.
지하철이나 버스, 기차를 탈 때마다, 책 읽는 사람은 거의 볼 수 없습니다. 너무 아쉬움이 남아 저라도 책을 한 권 읽어봅니다. 신앙인들도 주일 성경책은 필수인데, 안 가지고 다니는 분들이 갈수록 늘어갑니다.
성경책 대신 스마트폰으로 예배를 드리는 분들이 갈수록 늘어나는데, ‘이건 아니다’ 싶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 해도, 주일 한 시간 예배도 참지 못하고 편한 대로 하려 할까요? 하나님 말씀이자 신앙인들의 교과서인 성경을 괄시하거나 내팽개치는 모습을 보면서, 신앙인들의 마음이 너무 멀리 가 버린 것은 아닌가 염려가 됩니다.
필자의 어린 시절에는 책 종이 부분이 빨간 성경책을 손목이나 옆구리에 끼거나 품고 다녔고, 비신자들도 이 모습을 좋아하고 존경했습니다. 당시는 가방도 귀했던 시절이라 무거운 성경책을 옆구리에 차야 했지만, 교회 가는 길이 참으로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이 아름답고 좋은 계절을 맞아, 매일 성경 한 구절이라도 읽으시기를 소망합니다. 성경은 참으로 귀한 책입니다. 세상 어떤 책도 할 수 없는, 생명을 살리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들은 늘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세상을 구원하는데 모범이 돼야 하겠습니다.
지금부터는 이 아름다운 계절에 지인에게 들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소개해 드립니다. ‘눈물의 부탁’이라는 제목입니다.
서울 근교에 건실한 중소기업이 있었습니다. 나이 드신 사장님은 직원들을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하며 사랑을 베풀었으며,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젊은 직원들에게 장학금도 주시는 마음이 따뜻한 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한 경리 여직원이 금고에 있던 돈 200만 원이 없어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도둑이 들었다고 생각한 여직원이 곧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출동한 경찰은 수사 끝에 범인을 잡았습니다.
범인은 몇 달 전 입사한 신입사원이었습니다. 평상시엔 말 없이 일을 잘하던 직원이었습니다. 검찰로 넘겨진 직원은 재판에까지 넘겨졌습니다. 판결 날 사장님은 피해자 신분으로 증언대 앞에 섰습니다.
판사가 마지막 말을 하라는 권유에 사장님은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냐고 물었습니다. 판사가 고개를 끄떡이자, 그 사장님은 조용히 말을 시작했습니다.
“존경하는 판사님! 여기 이 젊은이를 구속시킨다면, 이 사회에서 완전히 낙오자가 되지 않을까요? 돈을 잘 간수하지 못한 제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데리고 있으면서 잘 가르치겠습니다. 저와 저 직원에게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진심을 담아 눈물로 간곡하게 부탁하는 사장님을 바라본 판사는 잠깐 무엇인가 생각하더니 조용히 말했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일단 나가 계십시오.”
얼마 후 법원 복도에서 기다리던 사장님 눈에, 멀리서 뛰어오는 직원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판사는 직원이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사장님도 눈물을 흘리며 부탁하는 점을 정상 참작하여,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직원을 풀어줬습니다.
“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직원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아니다. 젊을 땐 누구나 실수도 하는 것 아니겠니? 괜찮다. 이제 그만 회사로 가자!“
회사에 들어서는 순간, 전 직원이 입구에서 사장님과 직원을 향해 박수를 치면서 환영했습니다.
다음 날 사장님이 퇴근을 하려는데, 한 아주머니가 찾아왔습니다. 그 직원의 어머니였습니다. “사장님 제 아들이 잘못을 저질러 정말 죄송합니다. 아버지 없이 저 혼자 키우다 보니, 잘못을 깨닫지 못한 것 같네요, 저런 직원을 용서해 주시고 다시 일할 수 있게 해주시니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사장님은 계속 울고 있는 직원 어머니를 위로하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을 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어머니~! 걱정 마시고 제게 맡겨 주십시오. 잘 가르치겠습니다.” 어머니가 가신 후, 사장님 탁자에 봉투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직원 어머니가 놓고 간 봉투에는 200만 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얼마나 힘든 일을 감당하셨을까? 사장님은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장님은 그 길로 전 직원을 마트로 데리고 가서 과자를 잔뜩 산 뒤 고아원으로 데려갔습니다. 고아원생들은 전부터 사장님을 알고 있었는지, 사장님을 보더니 모두 뛰어와 사장님 품에 안겼습니다.
과자를 골고루 나눠준 후, 사장님이 직원들에게 말했습니다. “어릴 적에 이곳에서 자랐고, 한때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다 고아원 돈을 몰래 훔치다 걸려 경찰서로 끌려갔어요. 원장님이 용서해 달라고 눈물로 부탁해 주신 덕분에 곧장 풀려났고, 덕분에 새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잘못을 저질렀던 직원을 앞으로 나오게 한 후, 어머니가 가져온 봉투를 건네주면서 부탁했습니다. “이것을 어머니께 갖다 드려라. 이것은 어머니의 눈물이니 절대 잊지 말고, 평생 효도하면서 그 눈물을 닦아 드려야 한다.”
직원들과 원생들의 등 뒤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노을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사장님의 간곡한 부탁 한 마디가 판사의 마음을 움직이게 해서 한 젊은이가 다시 꿈꿀 수 있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키울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이러한 눈물의 부탁을 우리도 간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눈물의 부탁으로 미래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희망을 되찾아주면, 그들이 얼마나 행복할까요? 서로 믿고 배려해 주는 가운데, 눈물이 기쁨으로 바뀌어 밝은 미래가 빛나는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 말씀은 누구든지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행동하기를 바라는 대로 다른 사람에게 행동하는 사람은, 적어도 이웃에 대한 사랑의 문제에 있어 율법과 선지서 내용을 다 이뤘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황금률’입니다.
다른 종교들이나 윤리에서는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소극적 윤리입니다. 이에 비해 예수님의 가르침은 적극적입니다. 자기에게 좋은 것을 남에게도 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남에게 보답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내게 어떻게 하든 상관없이 선을 베풀라고 하십니다(누가복음 6:30-36).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는 구약의 정신이자 대강령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는 율법의 정신을 ‘사랑’이라고 요약하셨습니다. 여기서는 사랑의 요구가 어떤 성격인지 좀 더 자세하게 밝히십니다.
곧 예수님의 사랑은 자기중심적 애정이나 친절이 아니라, 이면의 이해관계 없이 상대편의 필요와 요구에 관심을 보이는 순수한 사랑입니다. 주고받는 사랑이 아니라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그저 베풀어 주는,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이것이 바로 황금률입니다.
직원이 저지른 죄를 용서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눈물로 간구한 사장님의 깊은 사랑에 찬사를 보냅니다. 한 사장님의 용서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자신도 어린 시절 그런 일이 있었다며, 사랑으로 직원을 보듬어 준 사장님의 깊은 사랑의 향기가 세상을 울립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케 하는 ‘그리스도의 정신’이 아닐까 요.
우리는 선한 일을 조금 했다고 자랑하거나 나타내려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조그마한 영향력으로 세상을 위해 더 불을 지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다 아는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말없이 묵묵히 자신의 사명을 즐겁게 받아들이며, 더 좋은 것으로 이웃을 위해 대접할 수 있는 사람들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조건 없는 사랑’, 황금률 말씀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신앙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