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영의 신앙시, 기독 시인 2] 김현승
<예수와 민중과 사랑과 그리고 詩>(고정희 엮음)에서
삶과 신앙의 여정에서, 시(詩)만큼 우리를 풍요롭고 복되게 하는 것이 있을까?
출애굽 이후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후 오직 모세와 친구처럼 자신의 이름(여호와)을 알리고 대면하여 말씀하셨고(출 33:11), 다윗은 내 마음에 합한 자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리라(행 13:22) 하셨다.
솔로몬에게는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셨는데, 동양 모든 사람의 지혜보다 뛰어나 3천의 잠언과 1,005편의 노래를 지었다(왕상 4:32). ‘노래들 중의 노래(canticum canticorum)’, 아가서는 그 중 가장 아름다운 절창이었다.
사람은 외모를 보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신다(삼상 16:1). 그런데 하나님이 즐거워하시는 것이 하나있다. 바로 시(詩)다.
본래 말이 능치 못하고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모세는 찬송하고 노래하는 시인(출 15장)이었고, 형들보다 볼품없던 말째 다윗과 솔로몬은 말할 것도 없다. 출애굽 이후 하나님이 사랑하신 이 세 인물이 모두 시인이라니!
시와 시집이 모두 외면 받는 시대가 되어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시를 사랑하시며 시를 노래하는 사람들을 기뻐하신다. 이를 위해 크리스천 시인들의 노래를 소개한다.
가을의 祈禱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다형(茶兄) 김현승(1913-1975)은 평양에서 목사의 자녀로 출생하였고, 빛고을 광주에서 자랐다.
시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이 양주동의 추천으로 <동아일보> 문예란에 발표되면서 등단하였다. 숭실전문학교 문과(중퇴)를 나왔으며 독실한 장로교 신자로 숭실대와 숭전대 그리고 조선대 교수를 지냈다.
기독교 정신과 인간주의를 바탕으로 신앙의 여부를 떠나 대중들이 좋아하는 독특한 시 세계를 구축했던 탁월한 시인이었다.
김현승 시인은 자신의 시 가운데 어떤 시보다도 인구에 회자되는 <가을의 기도>에 대해 “평생의 버릇대로 가을에 관한 시를 많이 썼는데, 이 시에서도 내 기독교적 기질이 어느 정도 나타나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시인의 호 다형(茶兄)은 커피를 지극히 좋아하던 시인 자신의 이미지를 반영한다. 만일 좀 더 장수하였다면, 다형만큼 커피 광고에 어울리는 내공을 가진 문인이 있었을까?
하지만 커피 잔을 손에 든 시인의 이미지는 단순한 퍼포먼스는 아니었다. 가슴의 상처(아들의 죽음)와 인간의 절대 고독과 오직 사람에게만 주어진 신의 은총으로서 ‘눈물의 의미’가 담겨 있다.
웃음이 잠시 피었다 지는 삶의 꽃이라면, 눈물은 ‘오직 사람에게만 주어진 신의 은총’이기에.
눈물 있는 초상집에 가는 것이 웃음있는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낫고,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전 7:2, 3)는 성경의 패러독스를 이해하는 것은 시적 감성이 풍성한 사람만이 누리는 은총은 아닐 것이다.
조덕영 목사
신학자, 작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