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영의 신앙시, 기독 시인 3] 미당 서정주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의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푸르른 날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
송창식 노래 가사로 유명해진 ‘푸르른 날’.
서정주 시집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열음사 간, 1984)에서
미당 서정주(1915-2000) 시인은 전북 고창 태생으로 예술원 원로회원을 지냈다.
동국대와 오랜 인연이 깊었던 미당이 언제 그리스도인이 됐는지는 불분명하다.
복음이 흥왕한 호남 출신으로, 아마도 노년이 되어 자녀의 권면과 전도 때문이었을 거라 여겨진다.
미당의 영면(永眠) 시 불교식 장례 후 기독교 장례로 마무리되었다는 것은 그의 일생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창조주 하나님은 공평하시다. 십자가의 두 강도 중 오직 한 사람만이 예수님과 함께 낙원(천국)에 가게 됐다는 사실은 인간이 평생의 공덕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준다(눅 23:41-43).
<한국어의 美學>을 다루면서
미당은 요한복음 1장 1절(태초에 말씀이 계셔,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을 인용하며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나 서양 사람들과 달리, 하나님의 의견과도 썩 잘 맞는 마음 속의 진정과 진실을 영 말로는 잘할 줄 모르는 ‘쑥’”이라 한 구절이 생각난다.
젊은 날의 친일문학 논쟁을 넘어, 미당은 옛 젊은 문학도들이 반드시 음미하고 극복하고 거쳐야 하는 한국어 미학의 절정을 보여준 시인이었다.
조덕영 박사
신학자, 작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