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간절함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마가복음 10:46-52)”.
행정구역상으로는 팔레스타인 요르단 강 서안지구에 속하며, 여리고 주의 주도입니다. 성경 속 이름은 여리고이지만, 현지 아랍인들은 ‘아리하’라고 부릅니다. 예루살렘 북동쪽 36km, 요르단 강과 사해가 합류하는 북서쪽 15km 지점에 있으며, 지중해 해수면보다 250m나 낮은 저지대입니다.
예루살렘은 해발 750m이니, 두 곳의 고저 차이가 무려 1,000m(1km)나 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에서 출발해 여리고에 이르는 길은 내리막만 있는 비탈길입니다. 각종 과실수(특히 종려나무)가 우거진 오아시스가 위치해, 예로부터 종려나무 성이라 불렸습니다.
본래 요르단 영토였던 여리고는 1967년 ‘6일 전쟁’ 때 이스라엘이 점령한 후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군의 공격으로 여리고 성이 함락된 바 있습니다.
오늘 본문 47절에서 ‘다윗의 자손’이란, 메시아를 일컫는 명칭입니다. 마태는 예수의 행적을 소개하면서, 그가 다윗의 후손이라는 것을 족보로 증거했습니다(마 1:16).
본문 50절에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는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겉옷을 던져 버리고 예수님께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이런 신속한 움직임을 생생하게 묘사한 점도 복음서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52절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는 말씀에서 보듯, 바디매오의 믿음은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와 호칭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소경 바디매오가 병 고침을 받은 것은 순전히 그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소경을 보게 하는 것은 메시아의 사역 중 하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전 소경을 치료하신 것은 자신이 메시아임을 공표하신 것입니다.
소경 거지 바디매오는 무엇이 그토록 보고 싶었길래, 예수님께서 자신이 있는 곳을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소리를 질렀을까요? 주변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꾸짖으며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량곳하지 않고 목청이 떠나가도록 더욱 큰 소리로 예수님 이름을 불렀습니다.
소경 바디매오의 외침에는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간절함과 절박함이 있었습니다. 죽을 만큼 소원하는 것이었기에, 자존감이나 창피, 굴욕이나 체면 따위는 그에게 사치였습니다. 남의 이목은 안중에도 없이, 눈을 뜨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면 보이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그의 외침이 얼마나 간절하고 절박했으면, 길을 가시던 예수님께서 가시던 발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라 말씀하셨을까요? 겉옷을 던져 버리고 예수님께 다가가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고 묻자, 그는 “다시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간절하게 말합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예수님께서는 바디매오에게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디매오는 이를 통해 그가 그토록 바라고 원하던 것을 얻게 됐습니다. 그는 세상을 눈으로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그 순간부터 그는 확실한 믿음과 구원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귀한 종이 되었습니다.
거지 바디매오는 도대체 무엇을 보고 싶어서, 그토록 다시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청했을까요? 이는 보고 싶은 것, 관심 있는 것만 보면서 마치 눈먼 이처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줍니다. 정말 간절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주님께 기도하면, 우리의 기도를 반드시 들어 응답해 주신다는 믿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새로운 문명과 기술이 판을 치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너무 풍족하고 복에 겨운 삶을 살지만, 감사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며, 더 짙은 행복을 누리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 처참한 죄악 속에 살아갑니다. 오늘 바디매오가 우리 신앙인들에게 주는 교훈은 참으로 크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구원은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열린 문입니다.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께 열어드리기만 하면 됩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감사하며 간절함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 되시길 기대하며, 가능한 이웃을 위한 배려의 삶도 곁들였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