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예술 후원자였지만, 부패했던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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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우 칼럼] 르네상스(23)-교황 알렉산더 6세

▲교황 알렉산더 6세.

▲교황 알렉산더 6세.

르네상스와 관련된 교황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 중에 교황 알렉산더 6세가 있다. 루머가 많았고 또한 부패의 온상처럼 치부됐기에,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기치를 드는 데 결정적 원인 제공을 했던 교황이다.

1492년은 격변의 시대였다. 메디치 가문의 위대한 통치자 로렌초가 세상을 떠났고, 그해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 스페인에서는 이슬람의 무어 왕국이 드디어 막을 내렸고, 스페인의 발렌시아 출신 알렉산더 6세(Alexander VI, 1492-1503)가 새로운 교황에 올랐다. 61세의 노인이었는데 말이다.

그는 외숙부가 칼리스트 3세 교황이 되자, 26세에 교황청의 재정을 관리하는 상서 원장이 됐다. 그 후 5명의 교황을 모시며 대단한 행정 경험과 더불어 엄청난 부를 쌓을 수 있었다. 교황청의 돈줄을 오랫동안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양한 유력자들과 두터운 인맥을 맺었다.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서.

1492년 7월 모시던 교황이 선종함으로 콘클라베에서 새로운 교황 선출이 있었다. 지원자들은 밀라노의 지지를 받는 스포르차 추기경, 프랑스의 지지를 받는 로베레 추기경, 그리고 로드리고 보르자였다. 그 선거에서 로드리고 보르자가 압도적 표를 얻어 선출됐는데, 그가 교황 알렉산더 6세다.

그가 교황으로 선출된 후에 루머가 많았다. 교황 선출에 경쟁자를 사퇴시키기 위해 지불한 재물을 노새 4마리가 끌고 가야 할 정도였으니, 추기경 중에 돈으로 그를 당할 자는 없었다. 특히 경선 상대였던 스포르차 추기경은 “나는 그 만한 돈이 없다”고 고백했기에, 돈 선거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선거였다는 심증을 갖게 한다. 당시에는 그런 일이 흔했다.

그는 볼로냐대학에서 교회법을 전공하였는데, 탁월한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그래서 누구보다 교회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으려는 야심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 흐지부지하게 되고 말았다. 그는 주교 시절에 여러 명의 첩을 두었고 추기경의 질타도 받았으나, 그런 부분이 그에게 약점이었다. 그는 세 여인으로부터 7명의 자녀를 두었다. 특히 세 번이나 결혼했던 정부 반노차데이 카타네이는 그와 오랫동안 관계를 하였고 네 자녀를 두었다. 나머지 세 자녀는 누구로부터 출생했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 역시 자녀들을 끔찍하게 사랑했는데, 교황이 된 후 그는 다섯 명의 아들을 추기경으로 서임하였고, 다른 아들은 18살에 이미 대주교로 서품하였다. 교황이 의지를 가지고 밀어붙이는 일이니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을까?

그 중에서 큰아들 체사레와 딸 루크레치아가 당시 화제의 중심이었다. 체사레는 후에 추기경의 직분을 반납하고는 거리낄 것 없는 삶을 살았다. 정치력으로 경쟁자를 죽이기도 했고, 늙은 교황인 아버지를 뒤에서 마음껏 요리하면서 자신의 정치력을 행사하였다. 고로 사람들은 그를 몹시 두려워하였다. 그는 아버지를 닮아 여성 편력으로 매독에 걸렸고, 그 후유증으로 외모가 훼손되어 항상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할 정도였다.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이미 사생아를 11명이나 두었을 정도였다.

교황의 딸 루크레치아는 아버지나 오빠들의 정치적 희생물로 이용되었다. 교황은 그녀를 밀라노의 통치자 가문 스포르차와 결혼을 시켰는데, 이는 밀라노와 동맹을 맺어 강력한 힘을 구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용 가치가 사라지자 발기부전이란 이유를 들어 이혼시켰고, 대신 두 번째 남편으로 아라곤의 알폰소와 결혼을 하도록 했다. 그러나 그가 체사레에게 살해당하자, 다시 페라라의 왕자 알폰소와 결혼을 주선했다. 호화로운 축하연의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교황청 내의 새로운 자리 80개를 팔았고, 새로운 추기경들 9명을 임명했다.

교황의 큰아들 체사레는 로마의 귀족 오르시니 가문의 몇 사람을 암살하고 재산을 강탈하기도 했다. 그리고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추기경직과 고위 성직을 수시로 판매하였다. 특히 로마를 대표하는 큰 가문 콜론나와 오르시니들을 회유와 압박으로 무력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는 당시 유럽의 강자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 외교를 구사해야 했다. 때로는 추기경이라는 성직을 이용하여 타협하였고, 또는 자녀들의 결혼을 통해 관계를 형성하였고, 돈으로 협상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로서는 예외적으로 유대인 포용 정책을 도모하였다. 1492년 알람브라 칙령으로 스페인에서 강제 추방을 당한 4천여 명의 유대인들을 교황령으로 이주하여 자유롭게 살도록 했고, 1497년 포르투갈에서, 그리고 1498년 프로방스에서 추방된 유대인들에게도 역시 로마로 이주를 허락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종교를 자유롭게 지키며 살도록 폭넓은 아량을 베풀어 주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진정한 르네상스의 예술 후원자였다. 브라만테, 라파엘, 미켈란젤로 등에게 일을 시켰고, 핀투리키오에게 자신의 궁전 특실을 그림으로 채우게 했다.

1503년 8월, 로마의 더위는 맹렬했다. 교황 알렉산더 6세와 아들 체사레는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 당시 파다했던 소문에 의하면, 교황과 체사레는 별장에서 최근에 임명된 카스텔리 추기경과 함께 식사하며 그를 독살하려고 했는데, 상대방에게 마시게 하려던 독이 든 와인을 실수로 자신들이 마시게 되었다고 한다. 더 나아가 딸 루크레치아가 아버지와 및 오빠 체사레와 불륜관계였다고도 했다.

당시 교황은 여러 모로 어려운 상황에 있었다. 로마 귀족들은 스페인 사람들을 철저히 무시했다. 고로 교황은 외톨이었다. 더구나 교황이 여러 명의 애첩과 자녀들까지 있었고, 그 자식들에게 교황을 뽑을 수 있는 추기경을 서임하였으니 얼마나 이태리 출신 추기경들의 시기심이 대단했을까 싶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죽기 전 고해성사에서 눈물을 흘리며 죄를 회개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시신은 부풀어 올랐고, 금방 변했고 악취가 진동하여 다가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후임으로 교황의 경쟁자였던 줄리아노 델라 로베레 추기경이 교황 율리오 2세로 선출되었는데, 그는 지난번 알렉산더 6세와 교황 선거에서 떨어지자 당선자를 성직매매로 고발했고, “그가 돈으로 상대방을 사퇴하도록 압력을 행사하였기에 교황 선출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신변의 위협을 느껴 파리로 피신했다.

그는 교황으로 선출된 후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전임 교황처럼 살지 않겠다. 그는 교회를 더럽혔고, 악마의 도움을 받아 교황권을 탈취했다. 그의 이름을 언급하는 자는 파문에 처하겠다. 그의 이름은 영원히 사라져야 한다.” 지난번 경쟁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했을까? 아니면 자신이 싫어하는 이방인 출신이었기에 악담을 퍼부은 것일까? 놀랍게도 율리오 2세 교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비판하기는 쉬워도 정직하고 청렴하게 살아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로마한인교회 한평우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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