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둘째 주일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차 한 잔의 여유”.
제가 지지난 주, 미국에 다녀오자마자 홍복기 목사님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다짜고짜 “수능생 기도회를 하는데 밤기도회로 하시겠습니까? 새벽기도회로 하시겠습니까?”라며, 선택의 여유조차 없도록 밀어붙이면서 무조건 밤기도회나 새벽기도회 중 선택을 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좀 당황했습니다. 아니, 교육개발원 주최로 알아서 할 수도 있는데, 언제까지 담임목사만 의존할 것입니까? 그렇지만 곧바로 제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제가 젊고, 얼마든지 인도할 수 있는데, 저도 모르게 좀 쉬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금 산행하기 딱 좋은 계절 아닙니까? 그리고 가을을 느끼며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기에 딱 좋은 때입니다. 얼마 전 제가 탈진을 했다고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님께서 저에게 중국의 전통 보이차를 직접 보내주셨습니다. 이건 진짜로 최상품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김 목사님은 보이차가 만병통치약이라고 믿으세요. 그분은 아무리 바빠도 보이차를 마시는 여유를 가지고 계십니다. 해외를 가셔도 보이차를 항상 끓여 가지고 다니면서 보이차를 마신다고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분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군살 하나도 없어요. 몸에 군더더기 하나 없이 날씬하시고, 아직 머리숱도 많으시고, 머리도 새카마세요. 그 비결이 보이차에 있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의 사랑과 배려와 정성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한 두어 주 동안 식사 후에 보이차를 마셨습니다. 물론 그때도 보이차를 마시는 여유와 즐거움을 모르고 그냥 의무적으로 마셨지요. 그런데 미국을 다녀오고 나서 아예 제 식단을 관리하는 박현옥 권사님이 보이차를 끓여주지도 않는 것입니다.
진짜 지난주는 산책 한번 못 했고, 차 한잔 즐기는 여유도 전혀 없었습니다. 큰 집회건 작은 집회건 목사는 집회를 앞두고 항상 부담감과 압박감을 가지게 되거든요. 어쩔 수 없는 목사의 운명이라고 할까요? 물론 운명이 아니라 사명이죠. 그래서 지난주는 진짜 보이차는커녕 제 일상의 시간을 가질 수도 없었습니다. 산행 한 번도 못 했습니다. 아니, 설교 준비가 다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산행할 여유를 가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차 한 잔 마실 여유를 못 가졌습니다. 왜냐하면 수능생 자녀의 부담이 저의 부담이고, 자녀 기도에 대한 거룩한 부담감이 저의 부담감으로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설교가 준비되면 준비되는 대로, 준비되지 않으면 준비되지 않는 대로 항상 부담감을 가졌어요. 준비가 안 되면 쫓기는 마음으로, 준비가 되면 빨리 집회 시간이 다가오는 마음으로….
그래서 금요집회가 끝나고 토요일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산행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보온통에 보이차를 끓여가서 산에서 보이차를 마시려고 마음먹었습니다. 다음 주에는 지난주에 못 한 산행도 하고, 보이차 한 잔 마시는 여유를 갖고 살아보겠습니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해보지만, 얼마나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을지는 저도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여유로워지기 시작합니다.
여러분도 가을을 맞이하여 차 한 잔 마시는 여유를 가지면 좋겠습니다. 물론 금주도 기도해야죠. 수능 시험이 끝나기까지 우리는 거룩한 압박감을 가져야지요. 여러분 모두 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차 한 잔 마시는 여유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날씨는 차가워져도 따뜻한 차를 마시며 마음을 따스하게 하시길 바라봅니다.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