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칼럼] 존재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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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호흡이 오늘 이 땅에 있음은 참으로 놀랍고 경이로운 일이다.

사물이 보이고, 소리가 들리고, 해, 달, 별, 하늘, 구름을 바라보고 느끼며, 꽃과 나비의 율동, 계절의 변화, 숲의 고요와 포효하는 파도를 육감하고 영감(靈感)할 수 있는 생명의 호흡은 너무나 커다란 기쁨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근사한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스스로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자신의 육신을 위하여 스스로 한 행위는 고작 먹고 마신 일이 전부인데, 심장은 뛰고, 사지가 활동하며, 체온이 유지되고 있으니 어안이 벙벙할 노릇이다. 아무리 깊은 사고로 해답을 얻고자 분별해 보아도 생명 유지에 대하여 자신이 알고 있는 부분이 전혀 없으니 누구의 생명이란 말인가.

자신의 생명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명제가 대두된다. 자신의 생명이 자신의 것이라면 늙고, 병들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낙심할 일을 스스로에게 큰 짐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더군다나 자신에게 죽음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어디 그뿐이랴. 자신의 인생이 자신의 것이면 좀 폼나게 살다가 날씨 좋은 날 옷매무새라도 단정히 하고 죽음을 맞이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인생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한 치 앞의 일을 예견할 수 없는 인생들의 근시안은 절대자의 추종을 수용하고, 하나님의 창조 섭리 앞에 두 손을 모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일찍이 성경을 통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생령(生靈)이 되었음을 일깨우고 있다. 그래서 인간만이 영(靈)적 생명체다.

영혼의 문제는 곧 믿음을 전제하고, 믿음은 곧 창조주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앞에 서게 된다. 성경 전도서 기록을 보면, 해 아래 인생들의 모든 수고가 헛되고 헛되다고 전제하고, 인생들의 결국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이라고 단언한다.

인생들은 누구나 무병장수를 꿈꾸고 있다. 장수가 아니라 가능하다면 영원히 살고 싶다. 인간의 영생(永生)은, 만화나 공상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설정이다. 인간은 스스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창조주의 창조 섭리 속에 소멸의 해답 또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한번 죽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정하신 일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

인간의 영생은 곧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을 전제한다. 성경은 인간의 영생의 길을 알리고 있다. 인간이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을 명시하고 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주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리스도 예수는 십자가를 통해 죽음을 찾아가서, 죽음을 심판하신 증거로 부활하셨다. 죽음을 이긴 능력은, 예수의 그리스도 권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죽음을 이긴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의 영(靈)을 영접하고 믿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되는, 꿈같은 현실이 인생들에게 주어져 있다.

그러나 인생들은 창조주와 피조물을 분별하지 못하고 갖가지 모양의 종교를 구현하여 헛된 믿음을 신념으로 여기며 우상숭배에 빠져 있다.

모든 종교는 죽음을 이겨낼 수 없다. 인생들과 똑같은 피조물(우상)이 어떻게 죽음을 이겨낼 수 있으랴. 창조주가 섭리한 피조물을 대상으로 여기는 모든 종교는, 인생들의 죽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무념무상이라든가, 각종 종교적 행위로 얻을 수 있는 영생이 아니다. 나눔과 봉사 같은 선행은 인생들이 추구해야 할 아름다운 가치이지만, 종교의 중심에 있는 피조물은 숭배나 경배해야 할 대상은 절대 아니다.

가을이 깊어간다. 오색 단풍이 낙엽이 되는 을씨년스러운 가을 끄트머리의 애상이 좋고, 들길, 산길, 굽이진 길, 모퉁이 아련한 추억이 좋다. 오곡백과가 결실을 맺으려 햇살 아래 풍성하여 좋고, 나락이 베어진 벼의 밑둥은 벌써 겨우살이를 알리니 애잔하여 좋고, 찬바람 옷깃을 간질이니 넉살스레 좋고, 산 능선 억새 군락이 황홀하게 좋다. 사랑하는 가족, 지인들과 자연을 벗 삼는 시간이 아무 생각 없이 두런두런 좋고, 맛난 음식을 함께 나눠 먹으며 걷는 여행길이 가슴 뭉클하여 좋다.

해 아래 인생들의 탐심과 부요가 헛되고 헛된 중에, 아름답고 숭고한 기쁨의 시간 또한 적지 않아서 좋다.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희로애락을 동반하는 인생 여정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은혜로 얻어놓고 살아가니 정말로 좋고 좋은 인생 여정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한 해가 기운다. 곧 엄동설한이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 곧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인생들에게 주어진 일생 시간 중에 반드시 소망하고 은혜로 받아야 할 실제 상황이고, 생명으로 존재해야 할 소중한 이유다. 그리스도 예수의 영생- 인생들의 존재 이유다.

웨민총회신학장 하민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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