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김춘수 시인의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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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영의 신앙시, 기독 시인 5] 김춘수 시인

▲김춘수 시선집.

▲김춘수 시선집.

나의 하나님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비애(悲哀)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詩人)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女子)의 마음 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어리디어린
순결(純潔)이다.
삼월(三月)에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두빛 바람이다.

​<※괄호 안의 한자는 원문이다.>
(<金春洙 詩選>, 金春洙 저, 정음사 간, 1976)

김춘수(金春洙, 1922-2004) 시인은 경남 통영 생으로 일본 니혼대 예술과(藝術科)에서 공부하며 항일 주장을 펴다 퇴학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귀국 후 중등 교사를 지냈고, 경북대와 영남대 교수를 지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제11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교과서에 주로 등장하는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과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꽃>이라는 시로 잘 알려져 있으나 이것은 주로 초기의 詩들이고, 이후 그의 詩 영역은 '의미에서 무의미로' 나아갔다.

스스로 쓴 <대표작 自選自評(자선자평)>에서 김 시인은 ‘허무, 그 논리의 역설’이라는 소제목을 통해 “말을 부수고 의미의 분말을 어디론가 날려” 버리며, “말의 의미가 없고 보니 거기 구멍이 하나 뚫리게 된다”고 했다.

그렇게 그는 거기서 생겨난 구멍을 통해 허무의 빛깔을 보려 하였다. 따라서 그의 詩에서는 대상에 대한 통일된 전망으로서의 이미지가 자연스레 사라졌다.

▲김춘수 시인. ⓒ대구문학관

▲김춘수 시인. ⓒ대구문학관

세상과 다른 역설로 가득찬 성경적 진리를 허무를 통해 시 속에 구현해 보려는 것이었을까? 김춘수 시인은 “허무는 나에게 있어 영원이라는 것의 빛깔”이라 했다.

打令調(타령조)에 실린 ‘나의 하나님’은 그의 초기 시에 해당하는데, 그의 신앙에 대한 자세한 여정은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

김춘수는 호주 선교사 아담슨(Andrew Adamson)이 1905년 설립한 충무교회(당시 대화정교회) 출신이다. 충무교회는 진명학원과 관련을 맺으며 발전하였는데, 이 교회와 학교 출신 유명 문화·예술가로는 윤이상, 유치환, 유치진, 박경리, 김춘수 등이 있다. 과거 이 교회에 가서 충무회 대접도 잘 받고 한 집사님을 통해 과분한 한산도 관광도 했던 기억이 새롭다.

시(詩) 자체가 성서는 아니다. 따라서 기독 시인들은 작품의 성격마다 하나님, 하느님, 신, God, 주, 주님 등 어떤 호칭을 시어로 택할 것인지, 늘 쉽지 않은 고민과 망설임을 가진다.

그래서 김춘수 시인의 ‘나의 하나님’은 필자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조덕영 박사
신학자, 작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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