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예수님의 ‘티와 들보’ 비유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태복음 7:1-3, 5)”.
주님께서 탄생하신 크리스마스가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두웠던 세상을 밝혀주시고 잃었던 생명을 다시 살리시기 위하여, 아름다운 저택이나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호텔이 아닌, 천박하고 보잘 것 없는 가장 낮은 마굿간에서 자신을 내어놓으며,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오신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즐겨 부르며 연말연시를 들뜬 마음으로 환호하고, 주님께서 오신 날을 기념하기보다 자신의 이기적인 쾌락을 위해 크리스마스의 진실을 왜곡합니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는 주님의 가르침에는 관심이 없고, 오롯이 세상 연락에 심취되어 믿음마저 저버리는 불상사가 연일 속출하고 있음이 실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지금 대통령께서는 반국가 세력에 의해 나라가 경각에 있다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계엄령을 선포해 국내외에 대한민국 체제 위협의 심각성과 위험성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이 일로 나라 안에서는 무차별 탄핵의 목소리가 더 높아져, 그들이 원하는 정권 탈환을 위한 비판의 수준을 넘어 이제 대놓고 정권을 무너뜨리려 혈안이 되어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오늘 주제인 비판(批判)이란 잘못된 점을 지적해 부정적으로 말함이라고 사전에서는 말해줍니다. 충고(忠告)란 남의 잘못이나 허물을 충심으로 타이름이라고 합니다. 특히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모임이나 단체에서 꼭 비판을 입에 달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반면 남의 잘못이나 허물을 덮어주며 진심으로 타이르며, 의로운 건의를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자기들 눈 속에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에 티를 빼라고 난리들임을 볼 때 참으로 나라의 앞날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어, 어쩌다 나라 꼴이 이렇게까지 되었나 싶어 그저 하늘만 쳐다보고 긴 한숨만 나올 뿐입니다.
오늘 말씀인 ‘비판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교훈을 참과 거짓, 선과 악에 대한 분별을 포기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타인의 약점이나 실수를 용서하지 못하고 파괴적으로 비판하는 것을 삼가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마태복음 7장은 산상수훈의 마지막 부분으로, 여러 가지 경계해야 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1-5절에서는 남을 심판하지 말고 오히려 자신에 대해 엄격할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티’는 작고, ‘들보’는 큰 것입니다. 남의 작은 허물은 잘 보이나, 자신의 큰 잘못은 느끼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엄격한 자기비판을 통해 자신을 돌아본 후 남을 비판할 판단력을 지닐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어지는 마태복음 7장 6절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에서 개나 돼지란 다시 치료될 수 없는 불경건한 생활 속에 사는 사람, 사악한 행실에 완전히 빠진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앞서 7장 1-5절은 우리 자신이 얼마나 비판 대상이 되는지 살피지 않고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일에 대해 경고합니다. ‘비판을 받는다’란 하나님이나 다른 사람의 판단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6절은 제자가 행하도록 요청받는 올바른 종류의 판단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참고로 15장 20절에서는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7장 6절 말씀은 거룩하고 소중한 것은 그것을 음미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만 주어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아무런 구체적 적용도 제시되지 않지만,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가 있음을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전 3:7).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리는 불필요한 남용과 조롱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누가복음 6:41-42)”.
마태복음에 이어 누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티’와 ‘들보’의 비유를 통해, 자기에게 커다란 허물이 있으면서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사람의 작은 허물을 책망하는 외식주의자들의 모순을 꼬집으시고 계십니다. ‘티’로 번역된 헬라어 ‘카르보스’는 조각, 파편, 대패 밥, 지푸라기’ 등을 뜻하며, 들보는 지붕을 떠받치기 위해 가로지른 대들보를 말합니다.
여기서는 ‘티’와 ‘들보’를 비교함으로써 외식하는 자들의 모순이 얼마나 큰지를 잘 드러냅니다. 외식하는 자로 번역된 헬라어 ‘히포크리테스’는 성경 외 자료에서는 주로 ‘무대에서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배우’라는 뜻으로 사용되나, 성경에서는 겉으로 경건한 체 하면서도 속으로 신앙에서 떠난 자들을 일컫는 말압니다. 이 말은 누가복음에서 3회 사용되는데(12:56, 13:15), 주로 교만한 바리새인을 책망할 때 사용됐습니다.
누가복음 6장 45절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 이니라”는 앞서 말씀하신 비유의 참뜻을 직설적으로 설명하신 말씀입니다.
사람의 언행은 그 마음에서 비롯되므로, 속마음 상태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쌓은 선이란 문자적으로 ‘마음의 선한 창고에서’라는 뜻입니다. 여기서는 마음을 ‘창고’에 빗대 말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특히 지금은 대림절입니다. 세속화된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을 희망하고 기다리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병마에 신음하고 고통 받는 이들과 억압된 자들, 가난한 이들에게 소망의 빛을 선물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 오시기를 차분히 기다리는 거룩한 성탄절, 대림절 시기입니다.
하지만 나라 안에서는 온갖 술수와 비정상이 정상으로 변하고, 진실이 사라지고 거짓이 오히려 진실로 둔갑하여 갖은 사기와 도적질, 음행과 권력으로 나라를 망가뜨리고 있는 현실에도, 정당한 비판을 쏟아내지 못하거나 충고 한 마디 못하는 현실의 국회와 교회를 보면, 국민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맞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모든 국민들과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해선 안 될 것입니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충실한 청지기로서의 자세로 옳은 비판을 앞세워야 할 것입니다. 권력의 힘에 침묵한다면, 이는 사두개인들이나 바리새인들, 그리고 서기관들과 무엇이 다를까요?
세례 요한의 비판 결과는 비록 죽음이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아주 귀한 사명을 감당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세례 요한은 지금까지 많은 신앙인들에게 하나님의 귀하고 모범적인 종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제 이조 시대 선조들의 잘못된 관행과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고, 새로운 시대의 변화의 물결 속에 나 자신을 우선 돌아보고 이웃과 나라를 위해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가야 하겠습니다.
대통령이 오죽 하면 계엄을 선포하여 이를 알리려 했을까요? 대통령이 사과문을 발표했으면 이를 수용하고, 그렇게 만든 야당이나 반대편 사람들 역시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며 다시는 이런 사태가 나지 않도록 깊이 반성하고 참회해야 하는데도, 오히려 호기를 만난 듯 정권 탈환에만 날을 세운 채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이 나라 정치가 참으로 개탄스러울 뿐입니다.
자신들 죄를 정당화하며 국민을 속이고 권력을 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저지르는 만행과, 심지어 사람을 죽게 만들면서까지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삶에서 벗어나,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귀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과 고집을 버리고, 진정한 소통과 서로를 인정하는 마음 자세로 이 나라를 지켜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지금까지 잘못된 관행들과 역사를 바로세우기 위해, 자신의 지은 죄를 돌아보고 뉘우치며 반성하는 진실한 회개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닭 울기 전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신 주님 말씀이 떠올라 통곡하며 회개한 베드로처럼, 오늘 이 순간 우리 신앙인들과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정치인들도 이 자리를 빌어 신실한 참회의 순간을 맛보며 국민이 원하는 정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나라, 새로운 나라를 탄생시키는데 주저 없는 행동으로 임해야 할 할 것입니다.
서로의 이념과 갈등, 상대방을 적대시하는 문화 역시 바꿔나가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성탄절을 맞아, 그동안 서로를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 탈피하여,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문화로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오래 침묵했던 회개의 자리에서 더 많이 참고 인내하며 배려하고 나누는 실천적 삶의 변화와 옳은 비판 속에, 서로 소통하고 통용하는 아름다운 신앙인들로서 참된 회개와 용서를 통해 새롭게 나아가는 대한민국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