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믿음의 성취는 구원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누가복음 1:38, 45)”.
믿음이란 무엇인가? 우리 조상들은 태곳적(太古的)부터 내려오는,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신에게 새벽마다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놓고 가족들이 잘 되기를 빌곤 했습니다. 그 믿음과 우리가 가진 믿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어딘가에 계실지 모르는 모호한 신을 믿는 것으로 구원을 받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그를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사전에서 말해 줍니다. 그러면 믿음의 요소는 무엇인가요? 믿음은 무엇보다 마음의 문제입니다. 구주 예수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만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들의 삶은 믿음의 삶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요? 구약에서 믿음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하나님께 피하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그를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을 뜻합니다.
‘믿음 장’으로 알려진 히브리서 11장에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11:1-2)”고 했습니다. 믿음은 본질을 말하며, 여기서 ‘실상’이란 확신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증거’란 확신하는 것, 또는 확실히 아는 것을 뜻합니다. 고로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대한 확신입니다.
2절의 ‘선진’이란, 문자적으로는 ‘노인’을 뜻합니다. 신약에서는 보통 ‘장로’를 가리키나, 여기서는 구약의 조상들을 가리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한 가브리엘 천사는 몇 마디 말로 메시아의 이름과 그의 위대하심, 하나님의 아들 되심과 다윗 왕국의 회복에 대한 모든 약속의 성취 및 그가 건설하게 될 왕국의 영원한 성격을 나타냈습니다.
특히 35절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라는 간결한 문장에는 심오한 신학적 의미, 즉 메시아의 초자연적 출생이 함축돼 있습니다. 메시아가 그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을 보기 전까지, 마리아는 그 말의 온전한 뜻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메시아의 초자연적 출생의 필요성은 대속의 죽음과 그분의 부활을 통해 깨닫게 될 진리였기 때문입니다.
45절에서 마리아는 사가랴와 달리 하나님 말씀을 굳게 믿었습니다. 이에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이와 같은 믿음을 축복합니다.
천사인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구주가 탄생할 것을 예고했지만, 마리아는 자신에게서 차마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아직 사내를 모르는 자신에게서 아기가 태어난다는 것은 도저히 믿기 어려웠고, 받아들이기도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기가 태어나 장성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된다는 미래까지 들었다면 과연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을 탄생하게 할 수 있었을지 의심도 해보지만, 천만다행으로 천사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마리아는 놀라운 하나님의 성취에 대한 순종과 믿음을 보여 줍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로마서 1:16-17)”.
이 말씀은 로마서의 주제가 되는 동시에 기독교의 핵심으로, 복음의 성격 곧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과 그 내용, 하나님의 의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 복음은… 됨이라”, “기록된 바… 살리라” 등의 주제는 로마서 전반에서 나타납니다. 3장 21-24절과 28절에서 더욱 충분히 표현되고 있습니다.
17절에 “믿음으로 믿음에”라는 말씀은 문자적 번역으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복음에 있는 하나님의 의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나니”로 번역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렇게 해야 하반절의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와 잘 부합할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의는 죄가 전혀 없으신 하나님의 의로운 속성을 말합니다(시 35:28, 사 56:1). 이러한 하나님의 의로운 속성은 복음을 통해 나타나 죄인들을 구원하여 의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의로운 속성인 동시에,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여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박국 2장 4절)”. 하박국은 유다가 ‘죽음의 고통’을 당하는 시기에 예언 활동을 했습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회개하기를 끊임없이 촉구했으나, 그들은 완악하여 죄악의 길을 돌이키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박국은 이 견딜 수 없는 상황이 얼마나 계속돼야 하는가를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유다를 징벌하는 회초리가 될 것이라고 대답해 주십니다. 그리고 하박국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이 백성들을 징벌하시는 방법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하나, 하나님의 지혜를 찬양하며 하박국 책은 이제 끝을 맺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대한민국 역시 하박국 선지자의 말씀대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만 살 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멸망받을 만한 충분한 지경까지 이르러, 회개하라고 외치고 또 외쳐도 깨진 독에 물 붓기처럼 죄에 대한 인식조차 못한 채 심지어 분별력과 사고마저 무감각으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마음은 감동이 전혀 없는 돌과 같이 황폐해져 인간이라 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러, 곧 노아의 홍수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처럼 심판을 받을 때가 이르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마가복음 5장 37-40절에서 회당장의 딸을 구원하실 때에도 주님은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시며 오롯이 믿음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특히 백부장 하인의 병을 고쳐주신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 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노라(마태복음 8:10)” 하시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마태복음 8:13)”.
백부장은 아랫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멋진 군인이었습니다. 당시엔 하인 하나쯤 아파서 죽든 말든 별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 텐데, 그는 하인의 괴로움과 신음을 깨닫고 주님께 달려가 병 고쳐 주실 것을 간절히 애원했습니다. 체면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께 나아가 구원을 간청한, 이 시대에도 볼 수 없는 참으로 선하고 훌륭한 군인이었습니다.
대통령께서 나라에 위기를 느끼고 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계엄령에 가담한 장성과 군인들을 국회에서 청문회로 불러 질문하는 과정을 보니, 그래도 정규 코스인 사관학교를 거쳐 장군 반열에 오른 군 수뇌부들의 한심한 모습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릅니다. 어떻게 저런 분들이 장군 반열에까지 오를 수 있었나 싶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살수대첩의 을지문덕 장군, 백제의 계백 장군, 귀주대첩의 강감찬 장군, 행주대첩의 권율 장군, 진주대첩의 김시민 장군, 한산대첩의 이순신 장군, 일제시대 청산리 전투의 김좌진 장군 등 국난의 위기에 나라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던 인물들을 분명 알고 있을 텐데, 어찌 장군이라는 이들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싶어 개탄스럽습니다. 그들의 부하들이 어느 정도인지도 대략 짐작이 갑니다.
군인은 오롯이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자신만 살겠다고 두루뭉술하게 답변을 피하며 남 탓만 할 수 있을까요. 이들은 군인도 아니고, 천하에 아무 쓸모없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들에게 지급했던 국민 혈세가 너무 아까워 연거푸 한숨만 나오며, 허탈감도 좀처럼 가시질 않습니다.
오늘날 하인을 사랑했던 백부장 같은 군인들만 있다면, 대한민국의 안보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주인공인 마리아는 당시 율법과 상황으로 볼 때, 결혼하지 않는 여자가 임신할 경우 자칫 돌에 맞아 죽을 수 있었음에도, 이를 거절하지 않고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마리아의 믿음은 이스라엘은 물론, 온 인류의 죄를 담당하실 사명을 감당하러 오신 구세주 아기 예수님을 탄생케 했습니다. 그 숭고한 믿음은 오늘날에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2024년을 떠나보내는 시점에서, 신앙인들은 우리 죄를 짊어지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오롯이 주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으로 가득해야 하겠습니다. 선한 마리아를 택하여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님은 33년 후 십자가를 통해 우리 죄를 모두 대신 짊어지시고 갈보리 언덕에서 “다 이루었다” 선포하신 후 운명하셨다가 부활하셨습니다.
그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오늘 아기 예수님을 탄생케 한 마리아의 순전한 믿음을 본받아, 겸손한 회개의 성탄절을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마리아가 보여준 선한 믿음의 모범답안을 마음에 새기며 품고 실천하며 2024년을 마무하시길 바랍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