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선한 사명자 맛디아
“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사도행전 1:23-26)”.
말도 많고 탈도 많던 2024년 갑진년(甲辰年) 푸른 용의 해가 점점 서산을 넘어가는 대신, 2025년 을사년(乙巳年) 뱀의 해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23절 말씀에서는 “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가룟 유다 대신 사도직을 이을 사람을 말합니다. 그 자격으로는 예수님 사역 초기부터 항상 함께 다니던 사람, 예수님이 하신 일과 삶을 목적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야 부활하신 주님을 자신있게 증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는 가룟 유다 대신 열두 제자에 포함될 새로운 사도에 대한 분명한 규정입니다. 복음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을 내용으로 하며,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6절 “제비를 뽑아”를 봅시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제비뽑기는 신성한 제도였으며,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사도들에게 이 제비뽑기 방법은 의사를 결정할 처음이자 마지막 경우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방법이 예수님의 승천과 오순절 사이에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승천하셨지만, 아직 성령이 오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이 방법은 과도기에 사용됐으므로, 오늘날 교회에서 직분자들을 뽑을 때도 적절하다고 보기는 힘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후 안디옥 교회에서는 선교사들을 뽑을 때, 성령께서 불러 세우시는 사람들을 선임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에서 직분자들을 뽑을 때도 미리 정한 규칙대로 정의롭고 공정하게 뽑아야 할 텐데, 그렇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잘 아는 사람이나 향응을 제공받은 사람을 밀어주거나, 학연과 지연을 고려하다 보니 잡음이 끊이지 않고 파벌 싸움에 진흙탕 선거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어느덧 직분자로서의 참 모습은 사라진 채 인기 투표로 전락한 오늘날 직분자들은 교회와 사회에서 존경받지 못함은 물론, 복음 전도에 있어서도 크나큰 지장을 주고 있습니다.
교회는 늘 정의롭고 공정해야 합니다. 직분자들도 정직하게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진 자와 권력자, 세상 유명세를 타는 자 등을 분류하다 보니 교회 안에 다툼과 분쟁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신뢰하고 사랑해야 할 주님과 전혀 무관한 신앙생활로 교회 밖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가슴 아픕니다.
본문 말씀에서 열두 번째 사도가 된 맛디아는 비록 당시에 남들이 알아주진 않았을지 모르나, 주님께서 인정하는 제자였습니다. ‘맛디아’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의 선물이었습니다. 맛디아와 사도 경쟁을 한 요셉은 바사바라는 별명도, 유스도라는 이름도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더구나 세상 눈으로 볼 때 요셉은 분명 유명한 자이고 널리 알려진 인물로, 외형적으로 볼 때 맛디아보다 훨씬 나아 보였습니다. 그는 분명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을 것이고, 인기도 많았으리라 추측해 봅니다.
그러나 맛디아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았지만 묵묵히 주님을 따르는 자였기에, 비어 있던 사도직의 한 자리를 능히 채울 만한 겸손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임에 틀림 없었습니다. 가룟 유다처럼 스승을 배신하고 은 30냥에 팔아넘기는 자가 아니라, 끝까지 주님을 따르는 순종의 사람이 아니었을까요. 유다 대신 돈 궤를 맡아 정직하게 관리할 만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가룟 유다를 대신한 맛디아는 겸손하고 사리에 밝으며 매사에 신중하고 공과 사를 확실하게 구분하는 정직한 사람이었으리라 추측해 봅니다. 그는 제비뽑기로 사도직을 이어 받았는데,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최종 결정은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전통이 구약에서부터 이어진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구약의 제비뽑기 전통은 요나를 통해 살필 수 있습니다. 구약의 요나는 니느웨에 가서 ‘회개하라’고 외치라 하신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요나서 1장 3절의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구절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첫째로 요나는 성전이나 언약의 땅 이스라엘을 떠날 경우 하나님의 낯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만일 요나의 생각이 그랬다면, 그의 신관은 참으로 협소하고 국수주의적이며 어린 아이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둘째로 요나가 선지자의 직무를 포기했음을 의미합니다. 다시스로 가려고 한 이유는 요나서 4장 2절에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다시스를 향해 도피하는 요나의 배에 큰 바람과 풍랑을 내리셔서, 바다에 떠 있는 배가 거반 다 부서질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사공들은 요나의 말을 듣고, 여호와 하나님을 최고의 신으로 인식했을 것입니다.
배 안에 있던 선장을 비롯한 사람들은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아 보자” 했습니다. 곧 제비를 뽑으니, 요나가 선택된 것입니다.
요나는 “나를 바다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공들은 그 말을 듣지 않고 끝까지 자신들 힘으로 폭풍을 벗어나 보려 했으나, 헛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인간 스스로 막아보려는 노력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큰 물고기를 준비하셔서 그를 구원하십니다. 그는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죄를 고백하고, 신실하게 회개하여 다시 뭍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후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니느웨로 가서 그곳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사명을 성공리에 마무리했습니다. 이를 통해 니느웨에 있던 백성들이 모두 구원받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도 제비뽑기는 허다합니다. 혹 제비를 뽑지 않더라도, 방법은 많습니다. 인간 사회에서는 단체나 모임에서 조직을 잘 이끌 사람을 뽑아야 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맛디아가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줄곧 따라다녔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당시 많은 사람들을 앉힐 때도 함께 도왔을 것이고, 열두 제자들로 손이 모자랄 때마다 함께 도우며 예수님의 마음과 제자들의 행동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럴 때마다 맛디아를 주목해 보시고 늘 마음 속에 그를 잊지 않았을 것이며, 제자들 역시 일을 잘 돕는 맛디아를 유심히 관찰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사람 중 맛디아를 선택한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니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유월절 엿새 전 베다니에 가신 일이 있습니다. 나사로가 있던 그곳에서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벌였을 때,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든 한 근을 가져다 예수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 향유 냄새가 집 안에 가득했다고 합니다.
그때 가룟 유다는 “이 비싼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고 호통을 쳤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가룟 유다의 본심은 가난한 자들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돈 궤를 맡아서 거기 넣은 것을 훔쳐가는 데 있었습니다(요 12:3-6). 그런 가룟 유다 대신 맛디아를 선택한 것은, 그가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요 정직한 자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어떤가요? 교회 안에서, 그리고 세상에서 직무를 수행할 때, 정직하고 바르게 행동해야 할 사명감이 있습니다. 나 하나의 잘못으로 예수님이나 모든 신앙인들에게 모욕을 주며,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 걸림돌이 될 일은 절대 삼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신앙인들은 물론, 비신앙인들의 이기적인 사고 때문에 날이 갈수록 국가의 미래가 보이질 않아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온갖 거짓 술수와 꼼수를 부리고, 귀한 생명까지 앗아가는 실태를 보노라면, 국회의원들을 잘못 뽑은 우리 잘못이 더 크다는 생각도 듭니다. 차라리 제비를 뽑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가장 모범이 되어야 할 국회의원들인데, 오히려 죄인들만 뽑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나라를 위해 정의롭고 신실해야 하며, 선거 역시 말로만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양심을 가지고 올바르게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법을 만들어내는 입법기관에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으니 참으로 애가 탑니다. 맛디아를 제비 뽑아 사명자로 세운 일보다 더 못한 방법이 오늘날 국회의원 선거가 아닐까요.
애민정신과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가진 자들을 뽑아야 할텐데, 이념과 사상, 그리고 지역 이기주의로 똘똘 뭉쳐 선거를 치르는 이 나라 실태는 도무지 앞을 내다볼 수 없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전산조작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는 뉴스가 나올 정도입니다. 야당은 자신이 있다면 여당과 함께 조사해 떳떳하게 이를 밝혀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주인공인 맛디아는 그저 묵묵히 달리는 기관차처럼, 이름도 빛도 없이 성실과 정직으로 사명을 감당해 오다 제자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제자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인정한 그는 맡겨진 직무를 틀림없이 잘 성취하리라 확신합니다.
오늘 맛디아의 정신을 계승하여, 이 땅에 주님의 거룩한 사랑의 향기를 이 세상을 향해 뿜어내는 군병들이 되어, 2025년 을사년(乙巳年)을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해로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