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첫 주일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너무나 숙연했던 송구영신”.
저는 지난 주일 저녁예배부터 금요일 저녁까지 5일 동안 신년축복성회를 인도했습니다. 이 성회는 35년이 넘도록 이어온 집회입니다. 그런데 저는 주일날 제주항공의 참사 소식을 들었습니다. 정말 한숨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왜 우리나라에 이런 참사가 일어나는 건가….”
순간 비행기를 조종하는 우리 교회 집사님과 전철과 고속철을 운행하는 성도들이 떠올랐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무안으로 직접 내려가서 조문을 하고 싶었지만, 하필이면 발뒤꿈치에 저온화상을 입어 장거리를 오가는 것은 정말 무리가 될 것 같았습니다.
대신 저는 용인시청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 가서 조문을 하고 왔습니다. 누구에게 뭐라고 말씀드릴 수도 없어 이런 글을 남기고 왔습니다. “참척의 슬픔에 잠겨 애도를 표하며 기도합니다.”
문득 한강 작가의 말에서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린다”는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그들의 희생이 이 땅의 살아 있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생명을 구하고 이어가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 집회 때마다 손뼉을 치거나 기쁨으로 찬양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했습니다. 새해 0시가 되면 당연히 기립해서 손뼉도 치고 환호성을 지르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번에는 찬양대가 찬양을 한 다음에도 손뼉을 치지 않고 모든 집회 전에 애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집회 중에 찬양을 부를 때도 손뼉을 치지 않고 주로 회개와 사모함, 헌신의 찬양을 부르도록 했습니다.
제가 송구영신예배를 두 번을 인도했습니다. 하루 저녁에 설교만 총 4회를 한 거죠. 저는 그때마다 경건한 마음으로 애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기쁨으로 가슴이 벅찰 뿐만 아니라 목이 터질 정도로 환호성을 내질렀을 때, 조용하고 숙연하게 새해를 맞았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집합적 인격체(corporate personality) 신앙이 있습니다. 집합적 인격체 신앙이란 한 인격 안에 여러 세대가 함께 하나가 되거나 혹은 한 역사 안에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백성이 시공간을 초월해 함께 하나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하고 홍해를 건널 때 이미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다 죽었지만 집합적 인격체 안에서 함께 출애굽을 하고 홍해를 건넌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미 모세 이후 수백년 후에 태어난 이스라엘 백성들도 집합적 인격체 안에서 함께 출애굽을 하고 홍해를 건넌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 신학에 와서는 ‘아담 안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사상으로 발전했습니다. 이러한 사상을 현대적으로 적용하면 공동체 신앙,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연합의 정신으로 승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듯이 저는 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번 참사에 대해 당연히 애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또 예배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찌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또한 통회하고 자복하는 마음으로 기도회를 하였습니다.
설교를 하는 제 자신도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시간마다 가슴이 조이고 심장에 압박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목사이기 전에, 또한 그리스도인이기 전에, 대한민국 국민이어서였을까요? 저희 기도가 부족하고 너무나 방심했던 것이 아닐까도 생각해 봤습니다. 다시는 우리나라에 이런 사고가 없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거의 모든 집회마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 전철과 고속철, 또 자동차를 운전하는 분들을 위해서도 새삼스럽게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니 가슴 벅차야 할 송구영신 예배와 신년축복성회가 숙연할 수밖에요.
그렇지만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사람들, 생명을 이어가고 사명을 이어가야 할 사람들에게 축복의 말씀을 전해야 했습니다. 애도하는 마음과 더불어 축복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저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부디 역사와 주권과 생명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와 민족에 안전하고도 평안한 복을 내려주시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