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호감, 가치감, 안전감, 효능감, 조절감…
언젠가 한 모임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자녀를 어떤 아이로 키우고 싶으세요?” 그때 필자는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키우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자존감이 높지 않았던 필자는 대인관계에서 수동적이었고, 자신의 능력에 비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제한시켰으며, 맡은 일에서도 당당하게 처리하거나 자기 표현에 있어서도 서툴렀던 경험이 있었기에, 자녀는 나와 다르게 자신을 사랑하고 잘 표현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눈치를 많이 보지 않으면서 소신 있게 해낼 수 있기를 바랐다.
아마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가 소심하지 않고 자신을 사랑하며 스스로를 존중하고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가길 원할 것이다. 그렇지만 막상 어떻게 해야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는지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공부를 잘하게 하면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부모들도 많이 있다. 실제로 미국 아이비리그 출신 고학력자들도 자존감 검사를 하면 낮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만난 한 분은 어머니가 아주 열심을 가지고 그 분을 키워서 호주에서 전문인으로 살아가지만, 자신은 자존감이 낮다고 말하며 늘 자신은 부족해서 매일같이 자신을 닥달하면서 힘들게 살아간다고 한다.
자존감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높아지는 것일까? 먼저 자존감이 무엇인지 살펴 보자. 자존감은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의 힘으로, 자신을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는가(self- esteem)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자아 존중감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존감은 어린 시절 부모의 양육 태도를 통해 기초가 형성되고, 그 기반 위에서 교육과 경험, 그리고 관계를 통해 조금씩 수정되어 간다고 볼 수 있다.
학자들은 자존감을 잘 이해하기 위해 세부적으로 자기 효능감, 자기 가치감, 자기 호감, 자기 안전감, 자기 조절감 등이 관련돼 있다고 본다.
자기 호감은 자신에 대해 긍정적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 중에는 생각보다 자신에 대해 호감을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자신을 혐오하는 사람들도 많음을 보게 된다. 나 자신을 좋아하는지 한번 질문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호감이 아닌 자신을 혐오하는 사람들은 내가 왜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혐오하는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원인을 살펴보면,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사랑와 용납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 어린 시절 내가 무슨 일을 해도 웃어주고 기뻐하는 부모의 사랑과 용납을 경험한 사람은, 부모의 거울을 통해 자신을 보면서 호감을 갖게 된다.
그에 비해 자기 가치감은 내가 소중한 사람임을 믿고 나의 생각, 감정, 행동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다. 비록 내가 실패를 하거나 어려움을 겪어도, 때로는 실수나 망신을 크게 당해도 내가 무가치하거나 형편없는 사람이 된다고 여기지 않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진 것이다.
실패나 거부의 경험은 누구나에게 힘들 수 있으나, 자기 가치감을 가진 사람은 실패나 거부의 경험도 가치 있는 교훈으로 바꿔 나가며 그것으로 자신을 지나치게 비난하고 형편없는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고 훌훌 털어낸다. 그에 비해 자기 가치감이 낮은 사람은 실패나 실수의 경험을 지나치게 크게 여기며 계속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자신을 비난하고 자신에 대해 부정적 감정을 오랫동안 갖게 된다.
자기 효능감은 어떤 영역을 잘 할 수 있고 쓸모 있는 사람이라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사람들이 모든 영역에서 지식과 기술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잘 할 수 있는 영역이 있고 거기에서 자신의 유능감을 발휘할 수 있다면 자기 효능감이 생긴다.
한국인 부모들은 자녀가 모든 영역에서 유능감을 발휘하기를 기대하다 보니, 잘하는 부분보다 못하는 부분을 더 잘하도록 요구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효능감 대신 오히려 열등감을 종종 경험한다. 그러므로 모든 영역에서 자녀가 잘하기를 기대하기보다, 잘 하는 부분을 발견하고 거기서 효능감을 경험하도록 도와줄 때 자존감을 높일 수 있다.
필자가 알던 한 10대 청소년은 이것저것을 아주 많이 배웠지만, 그 어떤 것에서도 유능감을 드러내지 못하면서 열등감으로 아주 힘들어하고 있었다. 다 잘 하지 못해도 한두 가지에서 효능감을 경험하는 것이 오히려 자존감 형성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 안전감은 자신을 편안하게 느끼는 것이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나 애정 결핍이 있는 사람은 안전감이 부족하다. 그들은 안전감이 없어 자신이 무엇인가 계속 노력하고 잘해야 사랑을 받는다고 여기기에, 불안감이 많다. 안전하지 않은 사람은 혼자 있는 것을 힘들어하고, 늘 사람을 찾아 헤맨다. 사람이 주는 안전감이 필요해 때로는 학대도 견디고 참아내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그에 비해 안전감이 있는 사람은 혼자 있어도 안정감과 안전함을 느끼고, 실패했더라도 최선을 다한 자신을 사랑하고 일을 즐거워하면서 자신을 여전히 마음에 들어한다. 결국 자기 안전감도 어린 시절 따뜻하고 충분한 부모의 사랑이 기반이 된다.
그렇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성인이 되더라도 배우자 또는 영적 경험 또는 좋은 공동체를 통해 충분한 사랑을 경험할 경우, 안전감이 높아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기 조절감이다. 자기 조절감은 내가 삶을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럴 때 자존감이 높아지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가족들이 요구하는 삶을 늘 살면서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한 채 살아온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존감이 낮고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다.
최근 만난 한 여성분은 부모가 원하는 삶을 살면서 그것에 순응하는 데 익숙하다 보니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의 감정이 어떠한지 잘 모른 채 의존적으로 살고 있었다. 그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부모의 사랑도 느끼지 못한 채 지내고 있었다.
삶을 내가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독립된 어른의 한 모습이고, 자존감 높은 사람이 더 잘할 수 있다. 그렇기에 어릴 때부터 작은 선택과 자유의 기회들을 가정이나 학교, 관계에서 많이 경험할수록 더 높은 자존감으로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자존감은 어린 시절에 기반이 형성되지만, 노력하고 변화를 시도하면 성인이 된 다음에도 어느 정도 변화가 가능하다. 그러므로 호감, 가치감, 안전감, 효능감, 조절감 중 내게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자존감을 높이는 훈련을 해보자.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에게도 자존감 증진 훈련이 필요하다. 부모가 자존감이 높으면, 자녀들도 닮아가기 때문이다. 부모라면, 자녀들에게 그 무엇보다 소중한 인생의 버팀목이 될 ‘자존감’을 선물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서미진 박사
호주기독교대학 부학장
호주 한인 생명의 전화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