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새해에는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성도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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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렘브란트, 선한 사마리아인이 있는 풍경, 패널에 유채, 66x46.5cm, 1638, 크라쿠프 국립미술관 소장.

▲렘브란트, 선한 사마리아인이 있는 풍경, 패널에 유채, 66x46.5cm, 1638, 크라쿠프 국립미술관 소장.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0:36-37)”.

이 성경 말씀은 세상 사람들도 다 아는 구절입니다. 깊은 자비와 사랑의 완성 단계의 이 말씀은 예수님의 적극적 명령입니다. 이방인은 물론 가난한 자들, 억압받는 자들, 병든 자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자들, 높고 낮은 자들 모두 차별하지 말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즉시 행동으로 옮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행동하라”고 하십니다. “자비를 베풀다”는 말씀은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선하심과 진실하심으로 자기 백성을 사랑하심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선행’입니다. 곧 “네가 주께서 네 앞에 두신 가난한 자의 이웃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앞선 34절의 ‘주막’의 문자적 의미는 ‘모든 사람이 영접받는 곳’으로, 주로 서민들이 쉬어가는 곳입니다. 율법사가 ‘자비를 베푼 자’라고 한 것은, 경멸 대상인 사마리아인 이름을 입에 담기가 역겨워 이렇게 말했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예수님의 준엄한 명령입니다. 지금까지 유대인만 ‘이웃’으로 생각해온 율법사는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 ‘참 이웃’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받았을 것입니다.

신앙인들은 ‘선한 사마리아인 같이 살겠다’고 마음먹고 행동하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마음만 있을 뿐, 실천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타이밍을 놓쳐 안타까워할 때가 많습니다. 자신이 만든 엄격한 틀에 갇힌 채 자신과 가족, 교회의 안위만 구하다 보면, 어떤 능력도 기적도 일으킬 수 없을 것입니다.

저마다 타고난 곳도 가족도 다릅니다. 그리스도 안의 가정은 참으로 훌륭하지만, 그 속에 올바른 가르침이 있어야 하고 이웃을 위하는 마음이 어릴 적부터 몸에 배어야 합니다. 아무리 예수님 같은 좋은 스승이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명령하시더라도, 자비와 사랑이 몸에 배어 있지 않다면 이웃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기 힘들 것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 선한 사마리아인, 캔버스에 유채, 60x73cm, 1890. 크뢸러 뮐러 뮤지엄 소장.

▲빈센트 반 고흐, 선한 사마리아인, 캔버스에 유채, 60x73cm, 1890. 크뢸러 뮐러 뮤지엄 소장.

하지만 모두들 자신의 위치나 지위, 체면 때문에 기피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이웃을 배려하기보다 군림하려는 생각이 압도적으로 우위를 차지하다 보니, 이웃을 돌아보는 마음은 뒷전이고 높아지려는 고약한 교만 때문에, 제사장과 레위인은 깊은 상처를 안고 거반 죽어가는 사람을 발견했음에도 그냥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자체가 그러한 특성을 지니진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창조주께 순종함으로써 그것을 이뤄야 함에도, 아담은 창조주와 상관없이 자신의 지식과 만족, 가치를 추구하다 범죄하고 말았습니다.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씀은 사람의 자유의지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교만과 방종으로 영적 생명을 잃을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 철저히 대비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하나님께서는 죄의 열매를 맺지 않도록 엄한 금령으로 다스리셨지만, 인간 본성이 창조세계를 흐트려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됐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금지 명령과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명령에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이웃을 불쌍히 여길 줄 아는 마음과 함께, 아가페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철저히 깨달아 영혼과 육체에 주님의 사랑이 충만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 복음을 향한 열정과 믿음으로 가득하다면 선한 마음도 저절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럴 때 거룩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면 이웃을 향한 새로운 도전이 시작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성경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가라”고 명령하시는 장면이 여럿 나옵니다. 창세기 12장 1절에서는 우르에 거주하던 아브람에게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람은 원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살았을 것입니다. ‘우르’는 페르시아만 중앙에 있었고, 유브라테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에 위치했으며, 아브람 시대 전부터 페르시아만과 북아라비아 사이에는 반유목민인 갈대아인들이 활약했다고 전해집니다.

아브람은 우르에 있을 때 받았던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우르 땅에서 불러내셨기에, 그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데라가 아브람 일족을 데리고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으로 가고자” 한 것은, 이미 하나님의 섭리가 그를 통해 역사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하고 실천으로 옮긴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는 영웅이나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는 흙으로 지은 사람이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받고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지 보여준 ‘믿음의 표상’이었습니다.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아무것도 모르고 뛰어들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땅’을 향해 전적으로 믿고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창세기 7:1)”.

신약은 ‘노아의 홍수’를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노아 시대의 종말을 예고한 것이고(마태복음 24:37-39, 누가복음 17:26-27), 둘째는 노아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에 대한 믿음의 표상으로 쓰였다는 것이며(히브리서 11:7), 세 번째 홍수는 그 자체가 육체의 더러움을 씻는 세례의 표징이라는 것입니다(베드로전서 3:19-21). 방주로 들어가라는 말씀에 순종한 노아의 가족은 구원을 얻는 놀라운 섭리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노아의 말을 우습게 여기고 세상 향락에 젖어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하다, 결국 모두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며, 죽으라 하면 죽기까지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아브라함의 상심이 얼마나 컸을까요? 하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고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러 떠났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직전 중지를 명령하셨습니다. 늦둥이를 낳아 삶에 활력이 넘치던 아브라함은 청천벽력 같은 하나님의 명령에도 순종했고, 결국 믿음의 조상이 됐습니다.

우리는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예수님의 준엄한 말씀에 절대 순종으로 화답해야 하겠습니다. 화려한 복장을 한 채 입으로만 떠드는 제사장과 레위인들 같은 허울 좋은 모습이 아닌, 모든 교만과 고집 그리고 탐심을 버리고 가장 낮은 자세에서 쓰러져 가는 사람을 돌 보아야 합니다.

돈 몇 푼에 사진이나 찍자고 하는 정치가들과 연말정산에 도움을 얻으려 기부하는 가식적인 이들은 이제 이 땅에서 몰아내야 하겠습니다. 국민들은 헐벗고 굶주리며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데 저들은 일류 문화에 젖어 비틀거리며 권력까지 쟁취해, 국민의 애절한 삶에는 전혀 관심 없이 더 호화롭게 살기 위해 아랫사람들을 더욱 못살게 굴며 자신의 권위나 명예에 치중하는 모습은 예수님의 정신과 사랑의 법칙과 전혀 관계가 없는 허탄한 모습으로, 그들 역시 소돔과 고모라 같은 멸망을 경험할 것입니다.

비신앙인들도 잘 아는 십계명은 “두지 말라”로 시작해 “만들지 말고, 부르지 말라”는 말씀에 이어 4계명은 “지키라”, 5계명은 “공경하라”, 6-10계명은 “말라”로 강하게 어필하는 명령문이 이어집니다. 이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주님 말씀을 지킵시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신앙인이든 비신앙인이든 이 좋은 기회를 더 이상 흘려 보내지 말고, 지금도 신음하는 백성들을 위해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이웃이 되어, 이제 열방과 세계를 향해 시선을 옮겨야 하겠습니다.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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