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주님 향한 믿음 보여준 마르다의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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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만 읽는 설교 300]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나사로의 부활(1608-1609)’. 각종 사건사고를 겪은 말년의 카라바조는 가시적 세계를 넘어 영혼의 세계로 진입한 것처럼 보인다. 빛조차 버리고, 고통과 절망을 아는 자만이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그림들이 탄생되고 있었다. 메시나 주립 박물관 소장. ⓒ한길사

▲‘나사로의 부활(1608-1609)’. 각종 사건사고를 겪은 말년의 카라바조는 가시적 세계를 넘어 영혼의 세계로 진입한 것처럼 보인다. 빛조차 버리고, 고통과 절망을 아는 자만이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그림들이 탄생되고 있었다. 메시나 주립 박물관 소장. ⓒ한길사

본문: 요한복음 11:21

나사로가 죽은 초상집입니다. 주님은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나사로의 집에 도착합니다. 그때 조문객들의 표정은 다양했을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과 추억에 젖어 있는 사람들, 그리고 무거운 침묵의 분위기에 찬 사람들까지 다양한 감정이 혼재됩니다. 본문을 배경으로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1. 서운함과 아쉬움을 느낀다
인간이기에 서운하고 아쉽다는 말입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21절)”.

마르다의 인간적인 감정이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사랑하는 오빠가 죽은 침통한 장례 현장입니다. 슬픔에 있는 마르다는 주님을 보자, 서운함과 아쉬움을 드러냅니다.

모르기는 해도 마르다는 인간적으로 주님에게 약간 원망하는 마음도 가졌을 것입니다. “주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에 모두 포함돼 있습니다. 마르다의 주님에 대한 인간적 서운함과 아쉬움은 아마 주님의 부재로 볼 수 있습니다. 마르다는 주님이 그 자리에 계셨다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마르다의 서운함과 아쉬움은 절박한 상황 때문입니다. 마르다는 주님께서 도움을 줄 수 있었다는 생각에, 서운함과 아쉬움을 느낍니다. 사람은 어려운 일을 당하면, 자주 후회하는 존재입니다.

나아가 마르다의 서운함과 아쉬움은 기대와 현실의 차이일 수 있습니다. 마르다는 주님이 여기 계시지 않았기에 오라비가 죽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현실과의 차이로 인해 마르다가 실망과 아쉬움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마르다가 서운함과 아쉬움을 느낀 이유입니다.

2. 인간적 슬픔과 실망을 느낀다
인간이기에 슬프고 실망스럽다는 말입니다.

마르다는 오라버니의 죽음에서 인간적인 슬픔과 실망을 했습니다. 오라버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죽음도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사람은 죽음을 잊고 살다가, 타인의 죽음을 보고서야 자신의 죽음을 깨닫게 됩니다. 가까운 가족의 죽음에는 더 강하게 죽음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다시 볼 수 없는 이별이기 때문입니다. 그 죽음이 바로 오라버니의 죽음이기에, 더 큰 인간적 슬픔과 한계를 느낍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것은 누구에게나 큰 충격과 슬픔을 주기 때문입니다.

오라버니의 죽음으로 마르다는 인간적인 슬픔과 상실감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오라버니의 죽음으로 인한 깊은 슬픔은 마르다의 말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오라버니를 잃은 상실감이 주님의 부재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집니다. 마르다는 주님이 여기에 계셨더라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 실망에는 믿음과 기대의 충돌이 순간적으로 일어났을 것입니다. 마르다는 주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 믿음이 현실 상황과 충돌하면서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마르다는 주님이 기적을 행할 수 있음을 확실하게 믿습니다. 그렇지만 오라버니의 죽음이라는 현실 앞에서, 그 믿음이 흔들리는지 모릅니다. 마르다가 인간적 슬픔과 실망을 느끼는 이유입니다.

3. 그래도 믿음과 신뢰를 갖고 있다
상황이 어찌하든지 주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마르다는 냉혹한 죽음의 현실에서 무력해지는 존재임을 느낍니다. 사람은 대단한 힘을 갖고 있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러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 앞에서 인간의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인간은 죽음 앞에 무력한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죽음 앞에서는 권력자보다도 영적 힘을 가진 사람이 의지의 대상이 됩니다. 영적 권세를 가진 종교가 의지할 만하고 기댈 만한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마르다는 주님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가집니다. 주님이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에 그 믿음이 드러납니다. 주님께 대한 마르다의 신뢰는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주님에게 가까이서 봉사하면서 다양한 경험과 기회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좋은 경험을 통해서 신앙이 강화됨을 알게 됩니다.

마르다의 신앙은 여러 가지의 시련을 통해 더욱 강화되었을 것입니다. 뒤에 나오지만, 마르다는 주님이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실 능력이 있음을 믿고 있었습니다. 마르다의 믿음은 주님의 강력한 치유와 구원의 능력에 대한 확고한 믿음입니다.

마르다는 슬픔의 고통 속에서도 주님을 향한 믿음을 보입니다. 마르다의 믿음이 오라버니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르다가 그래도 믿음과 신뢰를 갖고 있는 이유입니다.

▲김충렬 박사.

▲김충렬 박사.

4. 정리

모든 사람의 삶에는 슬픔과 고통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격언에 “임금이 타는 쌍가마 속에도 설움은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믿음으로 희망을 갖게 되면, 상황이 변화합니다. 마르다의 초상집이 믿음과 소망의 집으로 바뀌는 원리입니다. 가는 인생의 길에 주님을 만나 감사와 감격의 삶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신앙생활에서 서운함과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이 되지 말게 하옵소서. 신앙생활에서 인간적인 슬픔과 실망을 느끼는 사람이 되지 말게 하옵소서. 그리고 주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죽은 후에 부활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

전 한일장신대 교수
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문의: www.kocpt.com
상담: 02-2202-3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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