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과 성찰 8] 성찰에 대하여
눈 열어 하나님 자세히 바라보자
하나님 알아야 나 자신 알게 돼
성찰, 자신을 반석 위 세우는 것
자기 문제에 매우 민감한 사람
눈 가늘게 뜨고 자기 안 살펴야
숨어있는 죄 발견해, 제거해야
2부. 성찰이란
1. 왜 성찰인가
성찰(省察)이라는 한자어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먼저 省(살필 성)은 작을 소(少)와 눈 목(目)으로 이뤄졌다. 사람은 무언가를 자세히 볼 때, 지그시 눈을 감고 본다. 눈을 작게 뜨고 볼 때 자세히 볼 수 있도록 돼 있다. 성(省)은 자세히 보는 것을 뜻한다. 察(살필 찰)은 갓머리 면(⼧)에 제단 제(祭)로 이루어졌다. 집 안에 하나님을 섬기는 제단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찰이란 자세히 눈을 뜨고 집 안에 있는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뜻을 가진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안에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다. 모든 믿는 자 안에 성령이 거하신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먼저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자기를 알기 위해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알아야 자기를 알게 된다.
사람은 하나님 없이 자기를 알 수 없다. 성령이 믿는 자 안에 거하시는 이유와 그 목적은 한마디로 믿는 자가 진정한 자기를 깨달아 하나님을 알고 믿고 따르도록 하기 위함이다.
성령으로 인해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추악한 죄인인가를 깨닫게 된다. 자신이 추악한 죄인임을 인정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못한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
성찰하는 사람은 자기를 반석 위에 세우는 사람이다. 자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사람은 자기 문제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다. 자기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은 죄와 허물에서 자기를 지키는 지름길이다.
의로움은 죄의 값을 지불한 대가로 주어진다. 그리하여 죄인은 의롭다고 칭함을 받는다. 이것이 칭의(稱義, justification)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칭의 된 존재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칭의되었다 해도, 여전히 죄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칭의는 하나님이 인정해 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법적인 신분에 대한 이름이다. 칭의되었다 하여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니다.
더러운 죄의 습성은 여전히 남아서 칭의 받은 그리스도인을 괴롭힌다. 이때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살펴야 한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자기 안을 살펴야 한다. 죄는 언제나 자기 안의 깊숙한 곳에 숨어 지낸다. 성찰은 이 숨은 죄를 발견하는 내시경이다. 발견된 죄는 제거되어야 한다.
성찰에 대한 영어 의미도 매우 다양하고 깊은 뜻을 가진다. 네이버 영어사전은 ‘성찰’을 성숙한 사람의 심사숙고(mature consideration), 자기 투사(self-reflection), 자기 내부 검사(self-introspection),
자기 시험(self-examination), 회개(repentance) 등으로 소개한다. 이 하나하나를 살피고자 한다.
2. 성찰이란?
1) 심사숙고(mature consideration)
심사숙고(深思熟考)는 깊이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성숙한 사람은 깊이 생각하고, 미숙한 사람은 생각이 얇다. 성숙한 사람은 뿌리가 깊어 잘 흔들리지 않지만, 미숙한 사람은 생각의 뿌리가 깊지 못해 늘 흔들린다.
뿌리가 얕으면 세찬 바람이 불 때 나무가 넘어진다. 강풍이 몰아치고 난 다음 날 아침 런던 시가지 가로수들이 절반 이상 넘어졌는데, 이유를 알고 보니 대부분 나무 뿌리가 땅속에 깊이 박히지 않은 것이었다.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다. 생각을 하고 살아야 짐승의 삶을 면한다. 생각은 학습하고 수련할수록 그 깊이가 더해간다. 생각의 뿌리가 깊어야 성숙한 사람이 된다. 성숙한 사람은 자기를 돌아본다. 생각의 뿌리가 깊지 못한 까닭은 자기를 성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교는 남을 먼저 알아야 자기를 안다(知彼知己, 지피지기)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자기를 먼저 아는 일이 먼저라고 말한다. 나아가 성경은 자기를 알기 위해선 반드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를 시작하면서 바로 이 점을 간파했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지혜, 즉 참되고 건전한 지혜는 거의 모두 두 가지 부분으로 되어 있으니,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두 지식은 갖가지 끈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 그 중 어느 것이 먼저 오며, 어느 것이 그 뒤에 결과로 따라오는 것인지 분간하기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우선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살며 기동하므로(행 17:28),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순간 곧바로 하나님을 묵상하는 데로 생각이 옮아가지 않을 수 없다(존 칼빈, 원광연 옮김, <기독교 강요>, 1장 1, 크리스찬다이제스트, 2004, 41쪽).” <계속>
최더함 목사
Th. D., 바로善개혁교회
마스터스 세미너리 책임교수
마스터스 개혁파총회 임시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