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롭고 정의롭고 자비롭고 겸손한 학자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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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우 칼럼] 르네상스-교황 니콜라오 5세

▲교황 니콜라오 5세.

▲교황 니콜라오 5세.

교황 니콜라오 5세(Nicolao V, 1397-1455)는 1397년 제노아의 동남쪽 빌라 프란카의 루니지아나(Villa Franca, lunigiana)에서 태어났다. 현재 주민이 4,800명 정도인데 1,400년경에는 훨씬 작은 마을이었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약사였는데,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었다. 말이 약사이지 산에서 약초를 수집하여 파는 약초상 비슷한 역할을 하던 사람이었다.

당시 그가 태어난 루니지아나는 피렌체 공화국에서 경쟁국 제네바 공화국으로 넘어간 지 3년째가 되던 해였다. 자연은 그대로인데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땅이라고 선언하기를 좋아한다. 보통 사람은 가난이라는 환경에 함몰되지만, 특별한 사람은 그런 환경을 뛰어넘게 된다. 그는 학문에 큰 관심이 있었기에 지방을 벗어나 수도인 피렌체 공화국으로 갔다. 그리고 피렌체의 전통적 귀족인 스트로치와 알비치 가문 아이들의 가정교사로 들어갔다. 그런 대단한 가문에서 가정교사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인품과 실력이 탁월했음을 의미한다.

그곳에서 그는 뛰어난 인문주의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학문에 대한 열정이 있던 그는 피렌체와 볼로냐에서 공부할 수 있었고, 신학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그에게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는데, 그의 재능을 눈여겨 본 니콜로 알베르가티 주교는 그에게 학문의 넓은 세계를 익히도록 적극 후원하였다. 그 덕에 그는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잉글랜드 등에서 유학을 할 수 있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중요한 책들을 수집하려고 힘썼다. 그리고 자신을 후원한 알베르가티 주교 덕에 피렌체에 망명한 에우제니오 4세 교황과 친분을 맺을 수 있었고, 주변의 많은 인문학자들과도 교제할 수 있었다.

당시는 메디치의 코시모가 피렌체에 플라톤 아카데미를 세워 인문학 중흥을 위해 힘썼던 시절이었다. 더 나아가 도서관을 세워 온 세계의 중요한 책들을 모았고, 많은 필사 자들을 고용하여 매입할 수 없는 책들에 대해 필사하도록 아낌없이 후원했다. 고로 학문을 좋아했던 그에게는 고기가 물을 만난 것 같은 기회였다. 그런 열심 때문에 그는 모르는 게 없는 사람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

그는 1444년 피렌체 공의회에 참석하였고, 후원자 니콜로 알베르가티 주교가 선종하자 그가 담임했던 볼로냐 주교직을 맡았다. 그러나 볼로냐 시민들의 결사적 반대에 부딪히게 되자 교황은 그를 프랑크푸르트에 특사로 파견했고, 그는 교황령과 신성로마제국 간의 협상을 지혜롭게 성사시켰다. 그의 해박하고 뛰어난 외교술에 감동한 교황청은 로마로 돌아온 그를 산타 수산나 교회 사제급 추기경으로 서임했고, 드디어 1447년에 그는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교황이 되자 “주교관의 심부름꾼이 교황이 될 줄 누가 짐작했겠느냐”고 고백했다.

그는 항상 교회 안의 평화를 강조했고, 로마의 질서와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힘을 썼다. 또한 세상을 요란하게 하는 전쟁에 개입하지 않았고, 당시 만연됐던 ‘친척을 요직에 등용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의 내분을 막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1450년, 희년을 선포하여 수많은 순례객이 로마를 방문하도록 하였고, 아울러 많은 재정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는 넉넉한 재정을 확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무척 검소했다. 욕심이 있었다면 오로지 책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학자들에게 선물할 때는 결코 인색하지 않았다. 그는 인문주의자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였다. 그동안 로마에서는 인문주의자에 대해 교회를 분열시키는 이단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교황은 인문주의를 기독교 도시인 로마의 문화 수준을 한 단계 도약하는 수단으로 보았다. 어쩌면 그런 시각 덕에 르네상스의 운동을 긍정적으로 보게 되었고, 그런 여파로 교회 안에 스며드는 신비한 주술이나 점성술에 심취하는 일도 눈감아 주지 않았을까 싶다. 당시 많은 사람을 이단으로 몰아 화형에 처하였는데 말이다.

1452년에 베드로 성당에서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대관식을 집전함으로, 제국과의 관계를 공고히 다져 로마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할 수 있었다. 연대기 작가는 그에 대하여 “지혜롭고 정의롭고 자비롭고 겸손한 학자 교황”이라고 기술했다. 콰뜨로첸토(1400년) 시대에 볼 수 없는 훌륭한 교황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아주 드문 지도자로, 교황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전범이 되는 인물이었다.

그는 로마시의 안전을 위해 요새를 강화하고, 시내를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도로 포장과 급수시설 회복에 힘썼다. 6세기에 외적이 침략하여 수로 시설이 파괴되었는데, 계속 방치되고 있었다. 그래서 시민들은 우물과 물탱크를 이용하였고, 빈민들은 테베레강물을 그냥 마셨다.

그러나 그에게 가슴 아린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재직 중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고 성 소피아 성당이 이슬람사원으로 바뀌게 된 안타까운 일이다. 1452년 동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가 강력하게 일어나는 오스만 투르크를 상대하기에는 힘들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서방 기독교 국가들에 지원을 호소하였으나, 그들은 자국의 사정을 이유로 응하지 않았다. 겨우 베네치아와 제노아, 그리고 나폴리에서 동원된 배 열 척을 보냈지만, 콘스탄티노플의 멸망을 저지할 수는 없었다.

콘스탄티노플의 멸망은 로마 제국이 1400년 만에 사라짐을 의미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인문학자 에네아 실비오(Enea Silvio)는 이를 호메로스와 풀라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교황은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후 학자들을 데려오기 위해 특사를 보냈다. 또한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필사본을 포함, 9만 권의 서적을 인수하여 그 책들을 소장하는 도서관을 만들어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했다.

그는 교황으로 선출된 지 겨우 9년 만인 1455년에 통풍으로 선종하였다. 길지 않은 삶이었으나, 르네상스 시대 인문학을 후원하고 그들을 통해 예술이 꽃피우도록 터를 닦는 일에 충실한 삶을 살았던 교황이었다.

로마한인교회 한평우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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