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칼럼] 국민 계몽을 넘어 정부 계몽이 필요하다

기자   |  

▲이명진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운영위원장(성산생명윤리연구소 전 소장, 의료윤리연구회 초대회장).

▲이명진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운영위원장(성산생명윤리연구소 전 소장, 의료윤리연구회 초대회장).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로베스삐에르와 우유 파동

1789년 하면 프랑스 혁명이 연상된다. 막상 프랑스 혁명을 살펴 보면 4만여 명의 목숨이 단두대에 처형된, 피비린내로 물든 광란과 공포의 시간이었다.

급진파 자코뱅당 지도자 막시밀리앙 로베스삐에르는 공포정치를 통해 반혁명 세력을 체포하고 단두대에서 마구잡이로 처형했다. 혁명의 공포 속에 식료품을 포함한 물가가 상승하자, 시민들의 불만이 커져만 갔다. 로베스삐에르는 시민의 환심을 사기 위해 포퓰리즘 정책을 도입했다. 일명 우유 파동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책이고, 강요된 자선을 요구하는 사회주의 정책이었다.

“모든 프랑스 아이들은 값싼 우유를 마실 권리가 있다”고 선전하며 우유 값을 강제로 절반으로 낮췄다. 그러면서 이를 어긴 농부들에게는 우유를 판 차익의 두 배의 벌금을 물렸다. 낙농업자들을 반값 우유 가격으로 우유를 생산하기 힘들자 젖소를 도축하여 시장에 내다 팔기 시작했다. 젖소의 수가 줄어들자 우유 공급량은 더 줄어들고 쇠고기 값은 폭락했다.

그러자 로베스삐에르는 우유 생산원가를 맞춰 주겠다고 젖소의 사료인 건초 가격을 강제로 낮췄다. 건초 생산이 원가에 미치지 못하자 건초 생산업자들은 건초를 태워 버렸다. 사료 값은 더 상승하고 우유 가격은 10배나 뛰었다. 결국 극소수의 부자들만 우유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반복되는 포폴리즘의 희생자, 국민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라는 취임사를 두고두고 써먹었다. 세상 역사상 존재하지도 않는 소득주도성장(소주성)이라는 포퓰리즘 경제 정책을 도입했다. 소주성 정책으로 최저시급 인상을 도입했다. 2017년 6,470원이었던 최저시급이 2018년 16.4% 인상돼 7,530원, 2019년 다시 10.9% 인상돼 8,350원이 됐다. 2020년 8,590원(2.87% 인상), 2021년 8,720원(1.5% 인상), 2022년 9,160원(5.05% 인상)이 돼 불과 4년 만에 총 41.6%가 인상됐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소주성 정책은 꼬리를 물고 도미노 현상을 일으켰다. 종업원의 임금을 맞추기 힘든 소규모 사업자들은 직원을 줄였다. 일반 회사는 정규직을 줄이고, 비정규직을 통해 임금 지출을 줄였다. 생산 단가가 높아지자 덩달아 물가가 치솟았다. 결국 일할 직장이 줄어들면서, 청년들의 취업문이 더욱 좁아지고 경제는 더욱 어려워졌다.

막상 임금이 오르면서 집값이 폭등했다. 너도나도 내 집값이 상승했다고 좋아했지만 세금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세수만 늘리고 국민의 가계는 각박해지고 청년들의 취업은 더 어려워졌다. 급기야 세금으로 집값을 잡아보려 했지만, 부동산 매매는 더욱 얼어붙어 버리고 내 집 마련의 꿈은 점점 멀어졌다. 결혼적령기의 청년들은 결혼을 포기하거나 미루고 있다. 결국 소주성의 피해는 젊은이와 국민들의 각박해진 생활고로 이어졌다. 아이들 키우기가 힘들어지자 출산율은 더욱 떨어졌다. 출산율이 2020년 0.84명, 2024년 0.68을 기록하여 세계 최저 초저출산 국가로 돼 버렸다.

두 번째 문재인 정권의 잘못된 포퓰리즘 정책 중 대표적인 것이 소위 <문재인 케어>라는 의료정책이었다. 많은 오피니언 리더들은 문재인 케어를 강행하면 의료보험 재정이 급속도로 고갈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고를 무시하고 문재인 케어가 도입되면서 실손보험 제도가 급성장하게 된다. 의료소비자나 공급자인 의료인 모두 실손보험제도가 안고 있는 도덕적 갈등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에 빠지게 됐고, 의료재정은 급속도로 고갈되어 갔다.

게다가 의료보험 통합정책으로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진 상황에서 수도권 병원으로 환자 집중 현상이 발생했다. 의료보험 재정은 수년을 버티기 힘든 상황까지 도달했다. 정권은 바뀌었고, 문재인 정권은 윤석열 정권에게 의료보험 재정의 고갈이라는 폭탄을 던졌다.

산에 불이 났으면 불을 꺼야지, 나무를 심겠다고?

2024년 총선을 앞두고 각 지역마다 선심성 총선 공약이 줄을 이었다. 이미 공항 건설 공약은 써먹을 대로 써먹어 약발이 다한 상황이라, 의과대학 유치라는 공약이 전국을 휩쓸었다. 여야 할 것 없이 의대 유치 공약을 내세웠다. 의대 유치 플래카드를 내걸고 삭발 퍼포먼스까지 벌였다. 부산 지역에 부산의대와 고신의대, 동아의대, 인제의대, 경상의대가 있는데, 1시간 거리에 있는 창원에 의대를 세우겠다고 한다. 대구에 경북의대, 영남의대, 계명의대, 대구가톨릭의대 등이 있는데 1시간 거리에 의대를 신설하겠다고 한다. 실제로 탄핵 심판의 혼란 중에도, 광주에 전남의대와 조선의대가 버젓이 있는데도 1시간 거리에 있는 순천·목포 지역에 의대를 세우겠다고 추진 중이다. 포퓰리즘 정책으로 세워져 세금을 잡아먹다 못해 많은 인명을 앗아간 무안공항(일명 한화갑 공항)의 참사를 보면서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윤석열 정부는 총선을 앞두고 필수의료 부족 현상을 해결하겠다고 해결책을 발표했다. 첫 단추로 의대 정원을 매년 2,000명씩 5년간 1만 명을 더 뽑겠다고 발표했다. 정작 필요한 것은 당장 나의 아이들과 나를 치료해 줄 필수영역의 의사들인데, 10년 이상 지나야 의사가 될 의대 신입생을 더 뽑겠다고 발표했다. 산에 불이 났으면 불을 꺼야지 나무를 심겠다고 한다. 의료 사회주의 포퓰리즘 정책에 발을 깊이 담그고 벼랑 끝 전술로 의대생과 전공의를 압박했다. 의료 사회주의 정책의 특징은 1) 질이 아닌 양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2) 강요된 자선을 요구하고 3) 우선순위를 무시한 포퓰리즘 정책을 먼저 내세우는 것이다.

정작 필수의료 영역의 의료가 부족한 것은 힘들고 어려운 진료과에 대한 부족한 보상과 의료사고에 따른 과도한 민형사상의 위험부담, 그리고 저출산으로 인한 환자 수 감소가 근본 원인인데, 그것은 손도 대지 않고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다.

연이어 입시 생태계는 의대 광풍 안으로 들어갔다. 너도나도 의대를 가겠다고 나서면서 이공계의 인재들이 의대 입시로 몰렸다. 실제로 서울대 이공계 학생의 대략 300여 명이 의대 진학을 위해 빠져나갔을 것이라는 추정까지 나왔다. 교실도 교수도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모든 입시 규정을 앞장서 무시하고 1,500명을 선발을 강행했다. 무더기 의대생 증원에 반발해 18,000여 명의 의대생이 집단 휴학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자선과 희생을 강요당한 1만여 명의 전공의들은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채로 사퇴서를 내고 진료 현장을 떠났다. 휴학 의대생 중 병역을 마치지 않은 사람들은 3년 3개월이라는 군의관을 포기하고 대신 짧은 1년 6개월의 일반 군복무를 택했다. 전공의들의 상당수는 의사가 아닌 직종으로 이직하거나 외국으로 나가는 진로를 준비하거나 봉직의로 취직하고 있다. 정부는 전공의가 감당해 오던 진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1년 만에 3조 원이 넘는 재정을 갖다 부었다. 진료 현장에서는 과로한 진료 업무에 지친 필수영역의 우수한 교수들이 병원을 떠나자, 수술할 의사가 없어 환자들이 전국을 배회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교수들이 떠나자 부족한 교수를 확보하기 위해 지방의 우수한 교수들을 수도권 대학병원에서 흡수해, 지방 대학병원은 교수 인력난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도미노 여파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 우선순위를 무시하고, 강요된 자선을 요구하고, 양으로 해결하려는 비상식적인 의료 사회주의 정책의 결과는 고스란히 대한민국 국민에게 돌아오고 있다. 진짜 의료 대란과 붕괴된 의료교육 현장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은 3월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이제 국민 계몽을 넘어 정부 계몽이 필요하다

결자해지를 위해서는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자를 문책하고 잘못 끼운 첫 단추를 다시 끼워야 한다. 첫 단추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썰물처럼 밀려오는 피해와 도미노 효과를 막을 길이 없다. 정부도 실수할 수 있다. 정책 실패로 발생한 비용을 아까워도 수업료로 생각하고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으면 된다. 하지만 역주행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국민 계몽을 넘어 자신들의 정책 실패를 돌아보는 자아 계몽의 시간이 빨리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이명진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운영위원장(성산생명윤리연구소 전 소장, 의료윤리연구회 초대회장)

<저작권자 ⓒ '종교 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신청

많이 본 뉴스

123 신앙과 삶

돋보기 메모 관찰 성찰 내면 탐정 탐구 찾기 노트

‘성찰’, 숨은 죄 발견하는 내시경

눈 열어 하나님 자세히 바라보자 하나님 알아야 나 자신 알게 돼 성찰, 자신을 반석 위 세우는 것 자기 문제에 매우 민감한 사람 눈 가늘게 뜨고 자기 안 살펴야 숨어있는 죄 발견해, 제…

CT YouTube

더보기

에디터 추천기사

행동하는프로라이프를 비롯한 59개 단체가 5일(수) 정오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재판소(헌재)의 이중적 태도를 강력히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헌재, 낙태법 개정 침묵하면서 재판관 임명만 압박?”

행동하는프로라이프를 비롯한 59개 단체가 5일(수) 정오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재판소(헌재)의 이중적 태도를 강력히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행동하는프로라이프 연대를 중심으로 바른교육교수연합, 자유와 정의를 실천하는…

1인 가구

“교회에서 ‘싱글’ 대할 때, 해선 안 될 말이나 행동은…”

2023년 인구총조사 기준으로 1인 가구는 무려 782만 9,035곳. 전체 가구 2,207만의 35.5%로 열 집 중 네 집이 ‘나 혼자 사는’ 시대가 됐다. 2024년 주민등록인구 통계상으로는 지난 3월 이미 1,000만 가구를 돌파했다고 한다. 2050년에는 전체의 40%로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

림택권

“오늘도 역사하시는 ‘섭리의 하나님’까지 믿어야”

“두 개의 평행선으로 이뤄진 기찻길이어야만 기차가 굴러갈 수 있듯, 우리네 인생도 형통함과 곤고함이라는 평행선 위를 달리는 기차와 같지 않을까 한다. 우리 앞날은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그저 좋은 날에는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곤고한 날에는 하나님이 우리에…

조혜련

방송인 조혜련 집사가 이야기로 쉽게 전하는 성경

생동감 있고 자세한 그림 1천 장 함께해 성경 스토리 쉽게 설명 재미 함께, 신학교수 감수 거쳐 조혜련의 잘 보이는 성경이야기 조혜련 | 오제이엔터스컴 | 614쪽 | 55,000원 CGN 에서 성경 강의를 할 정도로 성경을 많이 읽고 연구한 방송인 조혜련 집사가 ‘성경…

열방빛선교회 촤광 선교사

“수령 위해 ‘총폭탄’ 되겠다던 탈북민들, 말씀 무장한 주의 군사로”

“수령님을 위해 총폭탄이 되겠다던 북한 형제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거듭나면서, 지금부터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위해 남은 생명을 드리겠다고 고백하더라” 열방빛선교회 대표 최광 선교사는 지난 25년간 북한 선교와 탈북민 사역을 …

북한인권재단 출범 정책 세미나

“인권 말하면서 北 인권 외면하는 민주당, ‘종북’ 비판 못 피해”

재단 설립, 민주당 때문에 8년째 표류 중 정치적 논쟁 대상 아닌 인류 보편의 가치 정부·여당·전문가·활동가들 역량 결집해야 국민의힘 박충권 의원이 주최한 ‘8년의 침묵, 북한인권재단의 미래는’ 정책 세미나가 3일 오전 10시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

이 기사는 논쟁중

인물 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