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 교역자들의 말 아닌 주님 말씀 따라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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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미국 화가 존 싱글턴 코플리(John Singleton Copley, 1738-1815)의 ‘사울을 책망하는 사무엘(Saul Reproved by Samuel, 1798)’

▲미국 화가 존 싱글턴 코플리(John Singleton Copley, 1738-1815)의 ‘사울을 책망하는 사무엘(Saul Reproved by Samuel, 1798)’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사무엘상 15:22)”.

‘순종(順從)’이란 다른 사람, 특히 윗사람의 말이나 의견 따위에 순순히 따르는 것이라고 국어사전은 정의합니다.

그러나 요즘 교계에서는 순종이라는 말을 잘못 사용하고 있어 심히 안타깝습니다. 교역자들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 아닐까요. 그러나 오히려 목회자들을 교만하게 만들고 신격화시켜, 양들을 구렁텅이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사무엘이 사울 왕에게 전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사무엘상 15:3)”.

사울 왕은 말씀대로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 모든 백성을 진멸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말씀을 봅시다.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사무엘상 15:9)”.

이집트 왕을 ‘바로’라고 부르는 것처럼, 여기서 ‘아각’이란 아말렉 족속 왕을 일컫는 칭호로 보입니다. 이 칭호는 발람의 예언에서 처음 언급되는데, ‘동방의 세력 있는 왕’으로 나옵니다. 이 이름은 ‘높은’ 또는 ‘전쟁을 좋아하는’이란 의미입니다.

사울은 타협하지 말고 공의를 세우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기주의적 생각에 사로잡혀 좋은 가축들을 죽이지 않고 자기 소유로 남겨 두었습니다. 그는 ‘왜 이런 가치 있는 물건들을 모두 진멸해야 하고, 승리의 상징이 될 수 있는 전리품들을 없애야 하겠는가?’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더구나 사울은 아말렉을 치고 오는 도중, 갈멜에서 승리의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사울은 자기 공적에 스스로 만족해 자신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약한 자와 나쁜 가축들만 죽인 후, 좋은 것은 자기 소유로 남겨둠으로써 하나님의 명령을 절반만 지킵니다. 사울은 하나님과 물질을 동시에 섬긴 것입니다.

사울이 더 나빴던 것은, 자신이 지은 죄를 백성과 무리에게 돌린 것입니다. 소와 양을 남겨둔 것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던 것이라고 변명함으로써, 자신의 욕심을 은폐하고자 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까지 죄를 시인하지 않고 떠넘기려는 못된 습성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 세상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계속될 것입니다,

사울은 왕이 되기 전 자신이 미천하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렇듯 겸손할 때 여호와께 택함을 입었던 것입니다. 그가 왕이 된 것은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지만, 지금은 자기 만족과 이기심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말았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 종교의식이나 형식을 따르는 일보다 중요함을 알려줍니다. 다윗은 시편에서도 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시편 50:8)”,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시편 51:16)”.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근심하다’는 히브리어 ‘칼라’는 ‘분노하다’는 뜻입니다. 비슷한 예로 여호와께서 니느웨 성을 멸망시키지 않자, 요나가 항의하며 기도하는 본문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단어입니다. 사무엘은 자신이 기름 부어 세운 왕이 버림받게 된 것에 분노하다, 자신의 예언 사역에 오점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고, 사울은 죄를 고백하긴 했지만, 건성으로 회개한 것 같습니다. 그는 죄를 고백하면서도 백성들 핑계를 대고 여러 번 경솔한 행동을 했는데, 그때마다 책임을 회피하며 남 탓을 하며 지은 죄를 은폐하려 했습니다.

사무엘이 길갈에 늦게 도착했을 때, 그는 참지 못하고 조급함으로 직접 번제를 바치고, 하나님의 궤를 가져오라고 했다가 금세 취소하기도 했습니다. 백성들에게 성급하게 금식령을 내리더니, 결국 아말렉 족속의 제물이 탐나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진멸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잘못에 대해 백성들과 블레셋 사람들, 사무엘 등의 핑계를 댑니다. 핑계와 변명은 진정 회개하는 자세와 모습이 아닙니다.

신약으로 갑니다.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누가복음 5:1-10)”.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누가복음 5:10-11) ”.

이 사건은 실로 놀랍습니다, 베드로는 고기 잡는 어부로 호수 근방을 꿰뚫을 정도로 능숙했지만, 자신의 경험만 의지하다 밤새 고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기적을 맛보게 됩니다.

이후 베드로는 두려움에 떨며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고백합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누가복음 5:8)”.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 앞에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을 베드로는 순간적으로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적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에 대한 베드로의 신뢰 덕분입니다. 베드로가 자신의 경험과 지식과 기술만 믿고, 예수님을 부정하고 무시하며 탐탁치 않게 여겨 그냥 배에서 내렸더라면 기적은 나타나지 않았을 테고, 베드로 역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도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분을 시인하고 그분에게 순종했기에,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어 성경 역사에 길이 남는 예수님의 훌륭한 제자가 된 것입니다.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마태복음 14:25-33)”.

구약 시대에는 밤을 세 부분으로 나눠 ‘1경’이 4시간씩이었는데, 신약 시대에는 밤을 네 부분으로 나눴습니다. ‘1경’은 오후 6-9시, ‘2경’은 9-12시, ‘3경’은 다음 날 12-3시, ‘4경’은 오전 3-6시였습니다.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본 베드로는 ‘혹시 그 분이 유령이 아닌가’ 의심하게 됩니다. 그는 약해진 믿음을 되찾았으나, 아직 예수님을 완전하게 신뢰하는 상태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아닌 바람을 바라보자, 믿음이 약해지고 의심과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험한 세파에 휩싸일 때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지 않으면, 시험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교훈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베드로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신앙인들 역시 이 험한 세상 속에 살면서 베드로 같은 경험을 합니다. 나름대로 성실히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하거나,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허다합니다. 사력을 다해 노력했지만 결과가 물거품이 되는 상황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겸손함을 보고 왕으로 세우셨지만,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교만과 아집으로 하나님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해, 어리석은 왕으로 역사에 남았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사위이기도 한 다윗을 죽이기 위해 갖은 수고를 다합니다. 사무엘이 더디 온다며 자신이 직접 제사를 드리는 죄를 저지르고,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이미 죽은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는 어리석은 짓도 일삼은 최악의 왕이었습니다. 하나님 명령을 불순종했던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내 지식과 경험과 판단을 고집하는 것은 자만이고 나 뜻대로 사는 삶이지, 진정 주님께서 이끄시는 신앙의 삶은 아닙니다.

스승님 말씀대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린 베드로의 순종처럼, 우리 신앙인들도 주님께 절대적인 신뢰의 자세를 갖추고 주님의 뜻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겸손의 모습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 순간부터 참된 신앙인의 삶이 시작됨을 알고, 순종의 참 의미를 깨닫는 크리스천들 되시길 소망합니다.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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