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
성경, 사랑 이야기하고 있으나
예수님, 친히 우선순위 정하셔
하나님 사랑 다음이 이웃 사랑
그리스도 조롱, 사소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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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만화가 윌리엄 엘리 힐(William Ely Hill)은 ‘나의 아내와 장모(My wife and my mother in law)’라는 제목의 삽화로 유명하다. 이 그림은 보는 사람에 따라 젊은 여자의 뒷모습을 그린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늙은 여자의 옆모습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인지심리학 교재에서 자주 활용되는 이 그림은 인간의 인식이 주관적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은 객관적이지만, 나의 내부에 존재하는 인식은 주관적이다. 능동적 의미 부여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동일한 사건을 목격했음에도 의견이 갈리는 이유이다.
윌리엄 힐의 그림을 객관적으로 표현하면 단순히 ‘곡선들의 조합’이지만, 하나하나의 곡선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주관적 인식이 형성된다. 동일한 곡선의 조합이 ‘젊은 여자의 귀’로 해석되기도 하고, ‘늙은 여자의 눈’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동일 곡선의 조합에 ‘젊은 여자의 턱선’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도 있지만, ‘늙은 여자의 코’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도 있다.
과학적 근거가 확립된 것은 아니지만, 이 그림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기반으로 그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기도 한다. 젊은 여자로 해석하는 사람은 전체적인 분위기나 큰 그림을 먼저 파악하는 거시적 인지 성향을 가진 것이고, 늙은 여자로 해석하는 사람은 세부적 정보에 먼저 집중하는 미시적 인지 성향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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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종교전문기자인 이명희 논설위원은 2025년 2월 18일 ‘기독교가 정치의 신하가 돼선 안 된다’는 제하의 칼럼을 기고했다. 이 글에서 그는, 교회와 국가의 위기 앞에서 한겨울 추위를 감내해 가며 부르짖는 성도들의 기도를 ‘극우 유튜버의 선동에 놀아난 어리석은 자들의 정치 행위’로 평가하면서, 기독교인들에게 좌우로 갈라져 사회 갈등을 조장하는 괴물이 되지 말라고 촉구했다.
그의 이러한 인식이 주관적 해석의 결과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를 비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외계인이 아닌 인간이라면, 사안에 대한 인식이 주관적일 수밖에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물론 세이브코리아 주최측의 일원인 내가 갖는 인식 역시 주관적 해석이다. 다만 윌리엄 힐의 그림을 어떻게 해석하는가를 두고 성격 유형을 분석한 것처럼, 현 상황에 대한 그의 인식 과정을 분석하여 그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없음을 밝히고자 할 뿐이다.
동일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평가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선택적 주의(selective attention)’ 때문이다. 인간의 인지능력은 생각보다 열등하다. 상충하는 정보가 동시에 주어질 때, 이를 종합해 결론을 내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부분 어느 하나의 정보에만 초점을 맞추어 판단한다.
상반되는 다수의 정보가 동일한 정도로 중요하다고 인식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고 부르는 심리적 불편감 때문에 결국 어느 한 쪽을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인식은 그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을 사소한 것으로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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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8월 내게 복음을 전한 중등부 교사는 영접 기도를 마친 나에게 ‘지금 누군가가 목에 칼을 들이대며 신앙을 버리라고 협박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었다.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을지를 논외로 한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대답은 변함이 없다. 사실 어린 시절 그 대답은 철없는 마음에 한 것이었지만, 나이를 먹으며 자신에 대해 깊이 알게 될수록 나의 확신은 점점 더 커졌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셨지만, 그 은혜의 체감 크기는 죄를 자각하는 정도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를 알게 될수록 나의 구원이 오로지 믿음 때문임도 알게 된다. 이런 사람에게 그리스도는 다른 모든 것을 잃더라도 결코 놓을 수 없는 것이 된다. 절벽 아래로 미끄러지다가 운 좋게 잡은 나뭇가지처럼. 부정한 여인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깨뜨릴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며,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한다는 성경 구절의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이명희 논설위원은 세이브코리아 집회에 기독교인이 결집하는 이유가 이재명이 당선되면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돼 동성애가 합법화될 것이란 위기감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의 이러한 분석을 보고 난 나의 즉각적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그걸 알면서 어떻게 남 이야기하듯 말할 수 있는 걸까?”
종교전문기자인 그가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후 신앙의 자유가 사실상 사라진 영국 상황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지난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서 그리스도가 전 인류 앞에서 공개적으로 조롱당하는 장면을 목도했을 것이다. 최소한의 지능만 있어도 간단한 인과관계 추론은 가능하니, 이재명 당선과 파리올림픽 개막식이 오버랩되지 않았을 리 없다. 결국 이명희 논설위원에게는 이 모든 것이 ‘사소한 일’에 불과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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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선순위를 정해 주셨다. 하나님 사랑이 첫 번째이며 이웃 사랑이 두 번째라고.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빠진 이웃 사랑은 위선이거나 아무리 좋게 보아도 세속 철학 따위에 불과하다.
이명희 논설위원에게 진지하게 묻는다. 당신에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사랑인가, 이웃 사랑인가. 하나님 아버지 말고 당신의 친아버지가 전 인류 앞에서 공개적으로 조롱을 당했어도, 사소한 일로 치부했을까?
백 번 양보하여 그리스도를 사소하게 여기는 자가 기독교 일간지를 표방하는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할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사회부 또는 정치부 기자가 아닌 ‘종교전문기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기사를 쓰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국민일보가 말하는 ‘종교’는 대체 무엇인가?
이형우
교수·행정학 박사
한남대학교 행정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