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천재였지만, 한두 가지에 집중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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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우 칼럼] 르네상스-알베르티

▲알베르티.

▲알베르티.

르네상스 시대에 잘 알려진 예술가들은 대부분 천재였다. 줄기를 잡아당기면 주렁주렁 달려 나오는 고구마들처럼, 천재들이 그렇게 많이 나왔다. 그 작은 도시에서 200여 년 동안 그 많은 천재들이 집중적으로 나올 수 있었다는 점이 신기하고 놀랍다. 그림이면 그림으로, 건축이면 건축으로, 조각이면 조각으로, 글이면 글로, 마치 천재들의 행렬을 보는 것 같다. 훈련소에서 집합하라는 명령에 훈련병들이 집합하는 것처럼.

이번에 소개하는 사람 역시 천재다. 어떤 사람은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1472)를 르네상스의 천재 중 천재라고 칭송하기도 한다. 천재를 찾는 것은 모래사장에서 다이아몬드를 찾는 것처럼 희귀하고 어려운 일이다. 어떤 나라는 유구한 역사를 지녔으나 천재가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하기도 한다.

그런데 알베르티는 초기 르네상스의 철학자이자 건축가다. 그는 다양한 분야, 즉 법학, 고전학, 수학, 희곡, 시학, 회화나 조각에 있어서 창작뿐 아니라 이론에서도 놀라운 실력을 지녔고, 많은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어떻게 한 사람에게 이런 다양한 재능이 나타날 수 있을까?

알베르티는 1404년 제노바에서 서자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비앙카 피에스키(Bianca Pieschi)였다. 그의 아버지는 피렌체 사람으로 부유한 상인이자 은행가였는데, 경쟁 관계였던 알비지(Albizi)에 의해 추방당하게 됐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기대가 있어서였는지, 아니면 일찍부터 재능을 알아보았기 때문이었는지, 그를 베네치아의 영재학교로 유학을 보냈다.

그리고 알베르티는 파도바에서 문학과 수학, 그리고 고전학을 공부했고, 볼로냐 대학으로 가서 교회법을 공부해 1428년에 졸업했다. 그는 언어적으로 뛰어나 그리스어와 고대 라틴어에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를 후원하던 아버지가 그가 17살이 되던 해 세상을 떠났고, 후견인으로 지정했던 삼촌까지 얼마 후 세상을 떠나, 그는 궁핍하게 됐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바티칸에 직원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사제도 됐다. 그는 바티칸에서 근무하면서 그곳의 도서관에 소장된 귀중한 장서들을 마음껏 읽을 수 있게 됐다.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지식 탐구에 목말라하던 그는 독서를 통해 마음껏 지식을 축적하게 됐다.

그러던 중, 기원전 고대 건축가 비트루비우스(Vitruvius, BC 80-15)가 쓴 “건축에 대하여”란 책을 보고 큰 흥미와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고대 작품에서 많은 영감을 받고는 그것들을 현대 건축물에 접목하려고 큰 열정을 쏟았다. 그에게 있어서 조각의 궁극적 목적은 자연을 닮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조각가는 보편적인 균형, 제각각인 사물의 균형에 대한 지식까지 갖춰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게 됐다. 또한 아름다움은 전체의 조화를 손상하지 않으면서 더하거나 빼거나 변경할 수 없도록 모든 부분을 비례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는 1431년 교황과 동행해 유럽 여러 나라를 순방했다. 그런 중에 피렌체도 방문하였는데, 거기서 당대의 대단한 천재요 건축가로, 원근법이 적용된 그림을 처음 그렸고, 아무도 할 수 없었던 피렌체 두오모의 돔을 완성한 천재 브르넬레스키와 도나텔로를 만나 교제하게 됐다. 그리고 알베르티는 회화론을 통해 원근법을 이론화했다.

그는 라틴어로 자전적 코미디인 “영광의 연인”을 썼는데, 그 작품은 오랫동안 고대 라틴어의 전범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건축에 대한 그의 논문 10권은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이를 통해 그는 새로운 건축의 비트루비우스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1433년부터 1441년까지 모국어로 가족에 관한 내용, 즉 결혼, 가족생활, 자녀 교육, 가족의 경제관리, 다양한 가족 간의 관계, 전반적인 사회생활 등에 관한 책을 썼다.

또한 그는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노벨라 교회의 파사드(교회 정면)를 설계했고, 산세바스티아노교회(1460, 만토바), 산탄드리아 교회(1472-1494, 만토바), 파스드 루첼라이의 정면, 템피오 말라테스티아노의 외관(1446-1468년, 중단, 리미니) 등이 그가 건축한 경이로운 작품들이다.

르네상스 시대 처음 그림에 대한 평론을 쓴 바사리(Vassari)는 그에 대한 평을 이렇게 남겼다. “그는 예술적 재능이 아닌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그는 세상을 탐구했고 고대 유물의 비율을 연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타고난 천재성을 좇아 작품보다는 글쓰기에 더 집중했다. 그래서 회화에서는 중요하거나 아름다운 작품을 남기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어떤 이는 그를 딜레탕트에 능한 삶을 살았던 자라로 평했다. 어떤 이는 그가 손을 댄 학문의 분야를 미술, 음악, 물리, 문학, 수학, 법학, 천문학, 건축학, 신학, 철학, 도시공학, 체육, 지도 제작, 점성술, 오르간연주, 암호 제작, 점성술, 극작, 시라고 했다.”

어떻게 한 사람이 이 많은 분야를 아우를 수 있을까? 수박 겉핥기 식이지 않았을까? 스스로는 이 모든 분야에 통달했다고 자화자찬했는데, 항상 가명을 사용했다. 어쨌든 대단한 천재임은 분명하겠다 싶다.

하나 더 소개하고 싶은 것은, 인문주의자로 유명한 교황 니콜라우스 5세가 알베르티에게 자문을 구하곤 했다는 것이다. 현재 바티칸 광장에 높이 서 있는 오벨리스크가 이교도의 상징인데, 그는 이를 과연 바티칸 광장 중앙에 세워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알베르티는 오벨리스크는 이교도의 상징이지만, 베드로가 순교한 이 자리에 세우는 것이 제격이라는 의견을 피력했고, 결국 이는 현재의 자리에 세워질 수 있게 되었다. 생명의 부활이 사망의 세력을 정복하게 됨을 상징하는 의미로.

다양한 분야에 대한 탐구열은 그가 천재라도 괄목할 만한 작품을 남기기는 어렵게 했다 싶다. 알베르티의 천재성으로 한두 가지에 집중하였더라면 어떠했을까? 후대인들은 단테-신곡, 마키아벨리-군주론, 레오나르도 다 빈치-모나리자로 기억하는데 말이다.

로마한인교회 한평우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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