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처럼 훨훨 나는 삶을 살았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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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우 칼럼] 르네상스-우첼로

예술을 전공하는 어느 분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분은 이상하게 자동차를 운전하는 데 있어서 특별하다. 스스로 고백하기를, 자신은 운전할 때 부지불식간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고를 항상 머리에 그린다고 한다. 예를 들어 “오른편에서 갑자기 차가 튀어나올 때는 어떻게 대처하고”, “신호를 무시하고 훅 들어오는 차량에 대해서는 어떻게 피하고”… 운전대만 잡으면 복잡한 게임을 할 때처럼 이런 다양한 생각이 떠오른다고 한다. 그래서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기에, 조금만 운전해도 완전히 녹아웃된다고 한다.

르네상스 화가들도 취향이 아주 다양하다. 화가들은 아름다운 모델을 필요로 하나, 라파엘로는 모델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마음속에 그리고 싶어하는 상이 있었기에, 그것을 그리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상에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아름다운 조각상을 약간 참고하여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37세로 단명하였지만 많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다.

▲우첼로의 자화상.

▲우첼로의 자화상.

그런데 우첼로(Paolo Uccello, 1397-1475)는 당시로는 78세까지 장수한 화가임에 비해 작품은 많지 않다. 그는 천재 화가 마사초의 제자로, 기베르티가 운영하는 공방에 들어가 도제로 생활했다. 무려 7년 동안 있었는데, 4년 동안은 허드렛일만 해야 했다. 매일같이 청소하고, 선배들이 사용한 붓들을 빨고, 석고 틀에 달라붙어 있는 찌꺼기들을 털어내고, 안료 덩어리들을 정리해야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불평하고 원망했을 텐데, 화가가 되려는 열망으로 시련을 견뎌냈다. 그런 중에도 솜씨가 있어 연금을 받아 생활할 수 있었다. 그리고 17세가 되던 1414년, 드디어 화가의 조합 길드에 가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3년 더 공방에 있다가 독립할 수 있었다.

우첼로는 동물이나 새를 그리는 일을 좋아했다. 그래서 친구들이 그에게 나비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본인도 그것이 싫지 않았던지 이름을 나비(우첼로)로 정했다. 독특한 이름이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다른 흔한 이름과 구분하기 위해 이름 중간에 다(Da)나 디(Di)를 사용하는 예가 많은데, 그는 그럴 필요가 없어서인지 단순하게 <바울로 나비>라고 칭했다.

그는 대단한 완벽주의자 내지는 꼼꼼한 성품의 화가였던 같다. 그는 어느 순간 건축가요 조각가인 부르넬레스키가 발명하였고 마사초가 처음으로 회화에 도입한 원근법에 깊이 빠지게 되었다. 그는 밤이 새도록 원근법을 연구했다고 한다. 아내가 밤이 깊었으니 자라고 권고하면, “이렇게 좋은 것을 두고 어떻게 잠을 잘 수 있겠느냐”고 할 정도로 원근법 연구에 깊이 빠지게 되었다.

인생은 그런 놀라운 시기가 찾아온다. 전혀 다른 모습으로. 1666-1667년, 흑사병이 영국을 뒤덮었다. 통행이 금지되었고, 모든 대학은 2년 동안 문을 굳게 닫아걸어야 했다. 그래서 23세의 뉴턴은 2년간 고향 울스소프로 돌아가 따분하게 지내야 했다. 그런데 그 시간은 뉴턴에게 있어서 지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시기이었다. 그때 그는 수학(무한수열과 미적분)과 물리학(만유인력의 법칙), 그리고 공학(색이론) 분야에 통찰력을 구축할 수 있었다(노인영, 과학과 미술1).

▲우첼로의 &lsquo;산 로마노의 전투&rsquo;.

▲우첼로의 ‘산 로마노의 전투’.

우첼로도 그런 열정적 시간을 보낸 후, 산 로마노 전투라는 대작을 주문받을 수 있었다. 그는 1435년(38세)에 피렌체의 명문가 바르톨리니 살림베니의 주문을 받아 20년 만에 작품을 완성했다. 그 대작은 피렌체가 인접한 시에나와 루카를 점령한 1432년 6월 1일의 승리를 기념한 그림이다. 원근법과 사실주의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역작이다. 고로 메디치 가문의 로렌조 디 메디치가 이 작품을 탐내, 중앙 패널 부분이 메디치 가문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그래서 런던갤러리나 루브르박물관에 가지 않고도 우피치박물관에서 볼 수 있어 로렌조 디 메디치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그 그림은 세 개의 패널로 되어 있는데, 왼쪽은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에, 가운데는 우피치박물관에, 오른쪽은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됐다. 모두가 세계 최고의 장소에 사이 좋게 소장되었으니, 우첼로는 나비라는 이름처럼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며 관람하겠다 싶다.

그는 위대한 용병으로 카쉬나 전투에서 피렌체를 승리로 이끈 영국인 존 호크우드의 기념비를 제작했다(1436).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에 있는 우첼로의 기마상은 걸작으로 꼽힌다. 보통 화가라면 단순하게 그릴 대상도, 그는 꼼꼼하게 원근법을 따지고 수치로 계산하면서 그렸다. 또한 당시로는 독특하게 강렬하고 대담한 색상을 사용했다. 빨간색, 파란색, 녹색과 같은 강한 색상을 선호한 그의 작품은 400여 년이 지나 고흐나 피카소 같은 화가에게 영감을 주게 되었다. 당대의 평론가 바사리는 그가 지나치게 원근법에 치중하여 주제를 놓쳤다고 했으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그의 작품을 보고 경탄했다. 당대의 안토니오 마네타는 그를 위대한 예술가에 포함시켰다.

그는 나이가 들어 이런 고백을 했다. “나는 이제 늙었고 병들었다. 아내는 아프고, 나는 이제 일하기에 힘들다.” 많은 인생이 이름도 없이 스러져가는데, 르네상스 미술가의 대열에 함께했다는 사실로 위로받을 수 있겠다 싶다. 또한 나비처럼 훨훨 나는 삶을 살았으니, 그 얼마나 복된가!

로마한인교회 한평우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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