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렁이와 가물치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고린도전서 15:31-32)”.
사도 바울은 수없이 환난과 핍박을 당했기 때문에 “날마다 죽노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바울은 그때 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부활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20)”.
여기서 ‘내가’란 율법의 행위를 의지하고 그것을 통해 이를 성취하려던 바울 자신의 과거 모습이었습니다. 이제 그때 바울의 모습은 완전히 죽어 없어졌고, 그에게는 그리스도와의 연합된 삶만이 있을 뿐입니다.
고린도전서로 돌아가 32절 속 바울은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고 합니다. 로마 시대에는 중죄인을 실제로 짐승과 결투를 벌이게 하는 형벌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바울은 그런 형벌을 받을 일이 없었습니다. 이 구절은 위험과 환난을 당했던 에베소에서의 체험(사도행전 19:23-41)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바울이 이처럼 무서운 환난과 위험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부활의 소망을 굳게 믿고 간직했기 때문입니다.
요즘 교회들, 그리고 신앙인들과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날마다 죽노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참으로 존경하는 고향 선배님에게 받은 ‘우렁이와 가물치의 차이’라는 글이 너무 감동적이라 일부분만 잠시 소개해 함께 감동을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우렁이는 자기 몸 안에 40-100개의 알을 낳는데, 그 알이 부화하면 새끼들은 제 어미의 살을 파먹으며 성장합니다. 어미 우렁이는 한 점의 살도 남김없이 새끼들에게 주고 빈껍데기로 흐르는 물길을 따라 둥둥 떠내려간다고 합니다.
반대로 가물치는 수천 개의 알을 낳은 후 바로 실명을 하기에, 어미 가물치는 먹이를 찾을 수 없어 배고픔을 참아야 합니다. 이때쯤 알에서 부화돼 나온 수천 마리 새끼들이 어미 가물치가 굶어죽지 않도록 한 마리씩 자진하여 어미 입으로 들어가 어미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며 어미의 생명을 연장시켜 준다고 합니다. 그렇게 새끼들의 희생에 의존하다 어미 가물치가 눈을 다시 뜰 때쯤이면, 남은 새끼 수는 10%도 안 된다고 합니다. 새끼 가물치는 대부분 기꺼이 어미를 위해 희생한다고 합니다.
우렁이와 가물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연 우리도 저렇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봅니다. 새끼들에게 살을 파먹히고 빈껍데기로 물살을 따라 둥둥 떠가며 사라지는 어미의 모습이 안타깝지만, 자연의 법칙을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반면 어미가 실명해 먹이를 찾지 못하자 갓 태어난 새끼들이 차례로 어미 입속에 들어가 어미의 생명을 구한다는 가물치는 참으로 아름다운 효심의 절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생물들을 통해 인간들에게 배움을 주시려는 은혜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가르침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하찮은 미물보다 어리석어 보이게 합니다. 교만과 탐심, 자랑과 권력 쟁취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야말로 우렁이 새끼보다 못한 어리석어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섭리를 따라 이 땅에 오셨지만, 자기 백성들과 점령자들로부터 모진 탄압과 고통의 쓰라린 세월을 사셔야 했습니다. 백성들은 구세주를 기다리는 희망으로 살아왔지만 실제로 구세주가 오셨음에도 믿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외면하며, “십자가에 못 박으라” 소리칩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주님의 절규가 지금도 갈보리 언덕에서 메아리 되어 지금도 울리고 있습니다.
한센인, 눈먼 자, 앉은뱅이, 혈루 증, 귀머거리, 심지어 귀신들린 자와 죽은 자를 살리신 그 주님을, 자신이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것들을 해결하고 나니, 어떻게 모르는 사람처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소리칠 수 있을까요? 어미의 몸을 다 파먹은 새끼들이 자신을 위해 희생하고 빈껍데기로 둥둥 떠내려가는 모습에 즐거운 노래를 부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영원히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쓰라린 채찍을 맞으시며, 심한 욕설과 침 뱉음을 당하시면서, 사형수처럼 십자가 나무 형틀에 손과 발이 못 박히시고 옆구리에 창을 찔리기까지 고통을 감내하신 주님. 그럼에도 오히려 하나님께 “저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니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청하시며 이 땅에서의 사명을 모두 마치신 주님. 약속하신 3일 만에 부활하셔서 절망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제자들과 주님을 믿는 백성들에게 자신을 보이시며 승천하신 주님.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고 인간들이 겪는 무덤 속까지 들어가신 것은, 눈이 어두워 앞을 보지 못하는 어미를 위해 갓 부화된 새끼들이 어미를 구하기 위해 차례로 어미 입속에 들어가 어미의 생명을 살려내는 아름다운 효심 아닐까요?
우리는 이처럼 작은 생물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듣고 생각하며 배울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무한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세상 사는 동안 슬픈 일도, 억울한 일도 겪을 수 있습니다. ‘내가 왜 어미 입속으로 들어가 죽어야 하냐’고 너도나도 불평하며 떼를 쓴다면, 마지막 남은 10%의 고기마저 죽고 말 것입니다. 그들은 남을 10% 새끼들을 위해 순교하는 것입니다. 그 남은 새끼들을 통해, 가물치 가문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입니다.
우렁이들은 어미의 몸을 파먹고 생존합니다. 새끼들을 위해 몸을 내어준 후 빈껍데기만 남은 어미는 유유히 물길을 따라 사라집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도 세상 죄를 모두 홀로 짊어지셨습니다. 특히 나 같은 죄인을 위해 갖은 질고와 고통, 피와 눈물을 다 쏟고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주님의 그 크신 사랑을 잊고 노래를 부르는 우렁이 새끼들과 다를 바 없지 않습니까?
지금 대한민국은 국가의 안위가 걸린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자칫 중국이나 북한 공산당에 나라를 빼앗길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종교인들 때문에, 나라가 크나큰 파국으로 치닫고 있음을 왜 모르시는지요?
공산주의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만약 나라를 찬탈당한다면, 과연 교회가 남아 있을까요? 신앙인들은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하거나 정치범 수용소, 아니면 탄광 같은 곳에서 목숨을 다할 때까지 노예로 살게 될 것이 뻔합니다. 그럼에도 교회 지도자들은 여전히 함구하며 성도들 입에 맞는 설교로 눈치나 보며 세월을 낚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이승만 건국 대통령께서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셨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반공을 국시로 나라를 경제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박 대통령 임기 중 무조건 반대만 하던 야당 지도자들은 그저 대통령 한번 하겠다는 마음으로 권력에만 눈이 어두워 국민 정서와 전혀 관계없는 좌파들만 생산했으니, 비통한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과거 국민들이 피땀 흘려 이룩한 경제대국이 마구잡이식 퍼주기로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나라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오롯이 자신들의 이념과 함께하는 사람들에게만 기회를 주다가 나라가 곤경에 처해, 이제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공무원과 고위직 인사들은 어미의 몸을 파먹고 자라난 우렁이 새끼들처럼 배은망덕한 사람들이 되지 말고, 국민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각 기관들마다 맡은 사명을 기쁘고 즐겁게 감당하는 일꾼들 되어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국가가 없으면 교회도 없습니다. 나라 사랑에는 여야가 없고 남녀노소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나라를 위해 하나님께 매일 기도하며 부르짖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교회 지도자들께 부탁드립니다. 정치를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모두 기도로 무장해야 합니다.
다행히도 일부 신앙인들이 ‘세이브코리아’라는 이름으로 매주 토요일 기도회를 열며 나라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 역시 어미 우렁이와 새끼 가물치의 희생을 거울 삼아, 너나 할 것 없이 나라를 위해 외치고 싸워야 합니다.
성도들은 평일엔 일하고 주말엔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데, 교회 지도자라는 작자들은 나라는 나몰라라하고 외제 차를 타는 VIP가 되어 좋은 음식과 귀한 대접을 받아가며 영화를 누려서야 되겠습니까?
지금이라도 하나님을 위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피 땀 눈물로, “날마다 죽노라” 겸손하게 외쳤던 사도 바울처럼 살아간다면 온 성도들에게 큰 울림이 될 것입니다. 모레 3월 5일부터 시작되는 올해 사순절은 오롯이 주 안에서 순교하는 마음으로 신앙을 지켜 나가시길 기도합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