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교회가 교회다워야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엡 1:22-23)”.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엡 4:15-16)”.
2025년 을사년 새해를 맞이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금세 경칩이 지나 1년 중 가장 경건해야 할 사순절이 이미 시작됐습니다. 그토록 차디찼던 겨울이 지나갈 즈음, 마지막 추위가 맹위를 떨치기도 했습니다.
이제 곧 닥칠 따스한 봄날을 기대하며, 유치원생들은 처음으로 학교에 입학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한 학년씩 진급하며, 땀 흘려 수고한 고3 학생들은 대학교 신입생이 되어 봄과 함께 새롭게 시작합니다. 싱그러운 봄 소식을 전하는 산새들의 들뜬 노랫소리는 파아란 하늘을 수놓으며, 대지 위 푸르른 새싹들은 기지개를 켜듯 힘차게 솟아오릅니다.
에베소서 1장 23절에서 “교회는 그의 몸이니”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을 완성하시는 분의 계획이 그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진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신앙고백서 제7장 교회 중 첫째와 여섯째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는 교회가 시대와 지역과 종족과 인간의 계급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몸임을 믿는다. 그리스도인들은 한곳에 모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송과 기도를 드리며, 세우심을 받은 자들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몸에 접붙임을 받기 위하여 세례를 받고, 주님의 구속적 사역인 십자가의 사건을 기억하고, 영적으로 그 사건에 동참하기 위하여 성 만찬 식에 참여한다. 이러한 예식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성도의 교제를 증진한다.”
“여섯째, 지상에서의 교회는 성장과 갱신과 악에 대한 투쟁을 계속한다. 현 역사 안에서 교회가 완성되어 휴식의 단계에 들어갈 수 없다. 교회는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실현되기 위하여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
에베소서 4장 16절에 나오는 “연결되고 결합되어 가는 것과 성장해 가는 것”은 교회에 주어진 두 가지 목표입니다. 교회의 하나 됨과 성장은 오직 사랑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기독교를 언제 처음 접했는지 정확하게 알 순 없지만, 문헌 기록에 근거하면 임진왜란 당시인 1593년 스페인 신부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가 내한했고, 이것이 천주교와의 첫 접촉으로 보입니다.
개신교와의 접촉은 1830년대에야 시작됐습니다. 첫 개신교 선교사는 1832년(순조 32년) 황해도에 상륙한 독일 루터교 목사 칼 귀츨라프였다고 합니다. 이후 1866년 9월 4일 영국인 토마스 목사가 평양 대동강으로 배를 타고 들어왔지만 이튿날 순교해 한국 첫 개신교 순교자가 됐습니다.
당시 미국, 영국, 캐나다, 스페인 등 많은 선교사들이 파송돼 복음전도와 함께 교육, 의료봉사 등을 함께하면서, 오늘날 대한민국이 선교 대국이 되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설립 100년 이상의 교회들도 꽤 있습니다. 부산·경남 지역에서는 부산진교회가 1892년 세워진 것을 시작으로 1906년 양산읍교회까지 약 41곳이 세워졌습니다. 이 교회 41곳은 많은 수고를 하면서 때로는 일제에 맞섰고, 6.25 전쟁에선 공산당의 침입에 순교하면서까지 교회를 지켜내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그 숱한 세월 교회를 지켜오면서 기독교 역사에 남을 인재들도 많이 길러냈습니다. 나라를 위해 아낌없이 헌신한 순교자들도 있었고, 일제시대와 6.25에서 처절한 고문을 이겨내면서 나라를 지키려 독립만세를 부르며 교회와 성도들을 지켜낸 믿음의 식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지금 이 땅에 교회가 우뚝 서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긴 세월 동안 교회를 지켜오면서 맡은 사명을 잘 감당했던 믿음의 선진들이 이뤄놓은 믿음과 예수님의 정신을 고스란히 후손들에게 이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바라보면 가슴이 아프고 슬픈 것이 현실입니다.
고통과 질고를 감내하며 지켜낸 교회를 일부 목회자들이 다 망쳐놓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념, 그리고 성도들 입맛에 맞는 설교를 통해 오히려 교회 부흥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교회다운 교회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의 교회를 망치고 있으니 한탄스럽습니다.
은퇴 목회자들이 20-30년 했던 자신의 목회를 자랑하며 원로목사로서 뿌듯한 감정에 취해 있는 것을 보노라면 참 어이가 없습니다. 교회가 더 부흥할 수도 있었지만 그들의 지나친 이기심과 나태함으로 여기에 그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걸까요?
교인들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면서, 목회자들 본인이 하나님처럼 구는 광경도 종종 목격합니다. 교인들은 목회자의 말이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는데, 이것 역시 교회 부흥에 큰 걸림돌입니다.
이웃 교회 부흥회가 있으면 참석해 은혜 받고 오라는 말도 이젠 다 사라졌습니다. 한 사람의 교인이라도 뺏길까 싶어 이웃 교회들은 기웃거리지도 못하게 하는 오늘날 교회들이 어떻게 전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비신앙인들보다 못한 속 좁은 마음으로 과연 내 집을 채울 수 있겠습니까?
100년 넘은 교회들 중 부흥하고 있는 교회가 얼마나 있을까요? 그들은 초라한 모습으로 지난 세월을 그리워하고, 함께했던 목회자와 교인들을 떠올리며, 신세를 한탄하고 있는 듯 합니다.
교회라면 은혜가 충만해야 할 텐데 어딘가 모르게 어두운 그늘이 되어버린 채 감동과 은혜가 사라진 곳이 되어 버려, 그곳을 탐방하는 신앙인들을 찾아볼 수 없으니 실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교단들이 합심해서 양화진에 묻힌 선교사들의 발자취를 함께 찾고, 100년 넘는 교회들을 비롯해 애양원 같은 성지 탐방 계획을 세워 성도들의 신앙이 더 발전할 계기를 만드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오래된 교회일수록 역사를 자랑하지만, 지도자들이 변화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옛날 대원군의 쇄국 정책으로 나라가 뒤처진 것처럼, 교회 부흥을 가로막는 오래된 교단 헌법과 법률을 수정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주 안에서 이웃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애족 정신을 실천하며 세상으로 흘려보내 한시바삐 문화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오래된 법과 문화를 계속 고수하다 성도들이 떠나가거나 분쟁과 파벌 싸움 등으로 분열하는 현상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니 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사도행전 9:31)”.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지방 포함 모든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의 공동체입니다. 이는 곧 지역의 울타리나 편견, 종족적 우월감 등을 일소하는 보편 교회를 가리킵니다.
신앙인들과 비신앙인들의 교제라는 구체적인 방법을 통해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 교회의 교회다움일 것입니다. 신앙인들은 비신앙인들에게까지 교회의 참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비신앙인들이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긍정적으로 바뀌면, 복음은 절로 춤을 출 것입니다.
그런 좋은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는 건강한 신앙인들이 돼야 합니다. 둘째, 내 생각과 판단만 고집하지 말고 소통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해야 합니다. 셋째, 정직한 신앙인이 돼야 합니다. 거짓말을 잘하는 교인들이 모인 교회는 늘 말이 많고 분쟁의 싹이 돋아나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 약속을 철저히 지켜야 합니다. 한 번 정한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우선순위로 지켜내야 할 것입니다.
신앙인이라면, 비신앙인들과 달리 먼저 자기 자신부터 주님 말씀에 순종해, 비신앙인들 보기에 거룩하게 보여야 합니다. “저 친구는 정말 크리스천이야” 하는 평가를 늘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실함으로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그것이 실천될 때 굳게 닫혔던 마음 문이 서서히 열려 한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목회자들은 은퇴가 가까워지면 ‘원로목사’가 되기 위해 교인들에게 가식을 떨곤 합니다. 원로목사가 되면, 많은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퇴직금과 연금은 물론, 형편에 따라 매달 사례금을 받기도 합니다.
미자립교회나 시골교회 목사님들은 퇴직금은커녕 은퇴 전에도 사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해 생활고를 겪는 분들이 많습니다. 총회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뭘 하는 것일까요? 사역이 끝나면 최소한 먹고 살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은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요? 한평생 주를 위해, 그리고 성도와 교회를 위해 헌신했던 수고에 예우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악의 세력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음에도 일체 관여하지 않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적그리스도가 활개치고 있는데도 ‘나 몰라라’ 방관하는 교회들은 깨어나야 합니다. 교회다운 교회가 되려면 무사안일하게 “나만 잘 믿으면 된다”는 어리석은 사고에서 벗어나, 이제 한데 뭉쳐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적그리스도들을 물리치는 데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나라가 공산화되고 나면, 그리스도인들은 다 죽을 것입니다. 나라를 다 잃고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순절이 시작됐습니다. 신앙인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교회다운 교회를 만들기 위해, 사랑의 정신으로 똘똘 뭉치고 한 마음으로 연합해 신앙을 지켜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강하고 담대하게 믿음으로 도전하는 그리스도인들 되시길 바랍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