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만 읽는 설교 306]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본문: 요한복음 11:33
주님의 감정이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신성을 가지신 주님의 인간적 마음이 드러납니다. 사람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겼습니다. 심리적 아픔의 고통에 공감하시는 모습입니다. 인간에게 죽음보다 더 큰 슬픔은 없습니다. 그 슬픔을 보시고 주님은 깊은 슬픔에 공감하십니다. 본문을 배경으로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1. 깊은 연민과 사랑을 느끼신다
마음에 깊은 연민과 사랑을 느끼신다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33절)”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옵니다. 주님께서 사람들의 고통과 어려움에 대해 마음을 표현하십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자비입니다. 깊은 연민과 사랑을 느끼시면서 사랑과 공감을 드러냅니다.
주님은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나사로를 매우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의 슬픔과 고통을 보고 주님은 그들의 감정을 깊이 공감하셨습니다.
사람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 공감하는 것은 주님의 인격적 특성입니다. 주님은 인간의 감정을 잘 이해하시면서, 슬퍼하는 사람들과 함께 슬퍼하십니다. 주님이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는 데서 인간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비통함이 드러납니다.
주님은 인간의 죄로 인해 세상에 들어온 죽음과 고통에 대해 깊이 비통해하십니다. 죄로 인해 고통과 죽음을 겪게 된 현실에 대해 슬퍼하십니다.
주님은 인간의 고통을 보시면서 그 고통을 없애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구원자이십니다. 때문에 주님의 비통함은 단순한 감정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심령에 비통히 여기심이 깊은 연민과 사랑을 느끼신다는 이유입니다.
2. 죄와 고통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신다
인간의 죄와 고통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신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인간의 죄로 인한 고통을 깊이 이해하시면서 비통한 마음을 가지십니다. 이는 주님이 단지 인간의 구원자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인간의 고통과 아픔을 깊이 이해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죄와 고통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는 고통에 대한 공감이 드러납니다. 주님은 인간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 깊은 연민을 느끼십니다. 마리아와 유대인들이 나사로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우는 모습을 보셨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마음 아파하십니다.
주님은 신적 존재로서 거리를 두고 관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의 고통을 직접 경험하시고 공감하시는 모습입니다. 죄로 인해 세상에 들어온 고통과 슬픔에 대해 깊은 이해와 연민을 갖고 계십니다. 죄의 결과로 인한 고통과 죽음에 대한 현실인식이 드러납니다.
나사로의 죽음으로 초래한 슬픔은 죄의 결과로 인한 고통과 죽음의 현실입니다. 주님은 죄 때문에 세상에 들어온 죽음으로 인해 인간이 겪는 슬픔을 깊이 인식하십니다. 주님의 비통함은 인간이 죄로 인해 겪게 된 고통과 죽음의 심각성을 이해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주님이 죄로 인한 죽음의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을 통해 죄와 고통을 극복하시려는 주님의 사명입니다. 심령에 비통히 여기심이 죄와 고통에 대한 이해를 하신다는 이유입니다.
3. 구원의 의지를 가지신다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구원의 의지를 갖게 된다는 말입니다.
“불쌍히 여기사”라는 표현은 주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시려는 강한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주님이 사람들의 죄와 고통을 보시고 구원하시려는 모습입니다. 드러나지는 않지만, 여기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계획을 실천하시려는 주님의 결단이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주님의 구원 의지는 인간의 고통에 대한 공감으로 드러납니다. 마리아와 유대인들이 나사로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하는 것을 보고 비통해 하신 이유입니다. 심령에 비통히 여기심은 인간의 고통과 슬픔을 깊이 공감하시는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단순히 인간을 관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아픔과 고통을 실제로 체험하면서 함께 동참하시는 모습입니다. 인류를 죄와 죽음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려는 강한 의지입니다.
구원의 의지에는 죽음을 극복하고 생명을 주시는 역할이 담겨 있습니다. 나중에 나사로를 다시 살리시면서 단순한 기적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됩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생명을 주시는 구원자로서의 역할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나사로의 부활은 주님께서 죽음 권세를 이기시고 생명을 주신다는 입증입니다. 이는 결국 주님의 부활과 모든 인류의 부활과 영생에 대한 예표입니다. 나사로의 죽음 앞에 비통해 하시고 불쌍히 여기심이 그대로 끝나지 않습니다. 죄와 죽음에서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구원의 의지를 나타내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심령에 비통히 여기심이 구원의 의지를 가지신다는 이유입니다.
4. 정리
사람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습니다. 다만 죽은 후에 부활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의 문제는 중요합니다. 사람이 죽은 후의 세계는 돌이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는 인생 길에 주님을 만나 죽은 후 영원한 세계가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는 깊은 연민과 사랑의 주님을 믿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는 죄와 고통을 깊이 이해하시는 주님을 믿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는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의지를 가지신 주님을 믿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죽은 후에 영원한 세계가 있음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
전 한일장신대 교수
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문의: www.kocpt.com
상담: 02-2202-3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