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면서 형성된, 건강하지 않은 관계 패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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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융통성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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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서 가보니 2층 세탁실에서 아래층 화장실로 물이 떨어지고 있었고, 벌써 바닥은 흥건히 젖어 문밖 복도로 물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고무장갑과 양동이를 들고 부엌을 나오면서 혼자 청소를 하러 내려가려고 했다. 일이 터지면 늘 혼자서 해결하는 습관이 있다 보니 이번에도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는데, 큰딸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엄마는 왜 혼자서 일을 다하고 힘들어해? 다른 가족들을 시키면 되지….”

복도를 지나는데 그 말을 했던 큰딸을 만났다. 그래서 큰딸에게 “아래층이 물바다가 되어 버렸어. 다른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서 같이 청소하자!”

큰딸은 나에게 말한다. “엄마가 아이들에게 다 이야기를 해!” 그 말을 듣고 아이들 방을 찾아가 사정을 설명했다. 그리고 내려가서 청소를 시작했는데, 조금 뒤 아이들이 모두 수건과 양동이를 들고 나타났다. 더러운 물을 닦아내고 걸레질을 하는 일을 아이들과 함께 하니 빨리 마무리됐고, 혼자 한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즐거운 경험이 되었다.

이 일을 통해, 문제나 갈등이 생겼을 때 사람은 늘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 나간다는 것을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었다. 때로는 그것이 효과적이지 않음에도, 자신만의 문제 해결 방식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을 뿐더러 다른 생각을 잘 하지 못한다는 것도 생각했다.

<상담 및 심리치료 대인 과정 접근>이라는 책에는 다른 사람과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똑같은 대인관계 패턴은 상담을 하고 있는 상담자와 내담자와의 관계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나타난다고 언급한다. 즉 다른 사람과 관계하는 데 있어 경험하는 문제 패턴이 있는데, 비슷한 주제를 상담자들과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담에서는 그 문제 패턴을 찾아내고 문제 패턴의 대인관계 패턴을 깨뜨리고 상담자와 새롭고 건강한 관계 패턴을 익혀가는 방법이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일상 생활에도 변화를 가져오도록 도울 수 있게 된다.

한번은 어떤 내담자 분을 만난 후 두 주간 사정이 있어 만나지 못했다. 다시 만났을 때 그분은 “선생님이 다른 사람들처럼 나를 싫어하게 된 줄 알았어요”라고 말씀하셨다. 그 분은 누군가 부정적 표정을 짓거나 평소와 다른 일이 일어나면 그것을 자신과 연관지어 해석해 마음고생을 했다. 그리고는 그것으로 인해 관계를 쉽게 끊어버리거나 오해를 해서 갈등을 겪기도 했다.

이렇게 자라면서 형성된 건강하지 않은 관계 패턴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이 관계에서 어떤 어려움을 야기시키는지 잘 발견하는 것이 현재 어려움을 느끼는 상황을 다루는데 도움이 된다. 그런 건강하지 못한 관계 패턴을 이해했다면, 변화를 위한 의도적 시도들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시도가 긍정적이며 유익을 경험하는 기회가 된다면, 그때 사람의 대인관계 패턴은 변화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상담사가 자신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막상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자신이 표정이나 상황에서 해석한 생각들이 잘못된 판단임을 깨달을 수 있고, 다음에는 그런 판단을 하는 데 있어 다른 대체된 생각들도 함께 해 보게 된다. 그러면 자신과 타인을 조금 더 편안하게 대하는 여유가 생겨난다.

필자는 잊어버리고 있던 부정적 관계 패턴을 다시 한 번 탐색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 말다툼을 많이 하셨는데, 소심한 필자에게는 힘든 경험이었던 것이다. 또 학교 생활 중 친구들과의 갈등을 성숙하게 처리하지 못해 상처를 받았던 기억도 함께 떠올랐다. 그러한 경험들이 사람들과의 갈등 상황을 회피하도록 만들었기에, 어쩔 수 없이 내몰리는 어려운 상황에서만 겨우 직면할 용기를 내는, 소위 ‘수동적 또는 회피적 대인 관계 패턴’을 갖게 됐다.

그래서 가능한 혼자서 많은 일을 감당하고 해내는 것이 더 편하게 느껴졌고, 그러다 보니 가정에서도 가족들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 도움을 요청하기보다 혼자서 해결하곤 했던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수동적·회피적 대인 관계 패턴이 필자를 유용하게 지켜줬지만, 이제는 시대와 상황이 변해 그런 대인관계 패턴을 더 이상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렇지만 가끔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그런 반응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어려움이 생겨도 가능한 부탁을 하기보다 스스로 해결하려는 것이 거기에 해당한다. 그럴 때 무의식적으로 내적 반응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조금 불편하더라도 더 나은 방식을 의도적으로 선택하고 시도하는 것이 더 융통성 있고 건강한 대인관계 패턴을 경험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다.

중년 나이로 신체적인 일은 건강하게 자란 아이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혼자서 힘들게 처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상식적이고 바람직하기에, 아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은 필자에게는 배우고 노력해야 하는 중요영역이 됐다.

수동적이며 회피적인 대인관계 패턴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격적인 대인관계 패턴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이런 사람들은 필자와 반대로 타인을 시키거나 통제하는 일을 즐겨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들이나 관계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고 힘들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떤 분은 회사의 CEO로 오래 일하다 보니 시키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말투가 지시적·공격적이었다. 결혼 초에는 그것이 적극적이고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이었기에 가족들에게 어려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지시적·공격적 대인관계 패턴이 온 가족을 힘들게 했고, 가족들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요인이 되었다. 가족들은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가장 바람직한 대인관계 패턴은 융통성 있는 패턴이다. 사람은 어린아이로 태어나 오랜 세월을 거쳐 발달하기 때문에, 늘 같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들은 통제를 더 해야 하지만 조금씩 자율권을 더 주어야 아이들이 행복하게 크는 것처럼, 사람을 대할 때도 경험에 의한 고착된 대인관계 패턴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역할과 환경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하면서 기본적으로는 진실한 대인관계 패턴을 갖는 것이 건강한 방식이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가 아닌 건강한 방식으로 잘 전달하고, 필요하다면 때로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고 때로는 타인에게 “아니오”라고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때로는 자발적으로 희생할 줄도 아는 사람, 예의를 지키는 사람, 그러면서도 내가 믿는 가치와 신념을 포기하지 않으며 관계를 맺어나가는 사람이 훌륭하면서도 융통성 있는 대인관계를 맺어 나갈 수 있다.

그러므로 좋은 대인관계의 장애물 역할을 하는 수동적·공격적·회피적 대인관계 패턴이 내 안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잘 생각하고 관찰하고 인식함으로써, 용기내 바꿔보자. 그래서 고착된 대인관계 패턴에서 벗어나 융통성 있는 대인관계 패턴을 삶에 적용해 보자. 그럴 때 더 좋은 관계들 속에서 행복감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서미진 박사.

▲서미진 박사.

서미진 박사

호주기독교대학 부학장
호주 한인 생명의 전화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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