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장 26절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맥(잣대)에 의한 번역: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인 이것(하나님의 진리를 기만해서 바꾸는 것)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부끄러움을 넷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목표로 갈망하는 것들로 주셨느니라 왜냐하면 그들의 넷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목표를 위해 빌린 것들인 여자들 그녀들이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범주를 적용한 길을 적용해서 섬긴 본체와 그녀들의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범주를 적용한 길을 적용한 대로가 아닌 것 안에서 그들이 바꾸었기 때문이니라’
한글성경에서 ‘이를’,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는 완전히 왜곡된 번역이므로 삭제해야 한다. 하나님의 잣대의 맥을 잡지 못하고 있으면 이렇게 완전히 왜곡된 엉뚱한 소리가 나오게 된다. 누누이 말하지만 성경은 사전을 찾아서 옮겨 쓴다고 번역되는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왜 남녀의 성문제가 나오고 있는가? 성경에는 온갖 불미스러운 일들의 내용이 나오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롯이 두 딸들과, 다말이 시아버지와 잠자리를 같이 했다느니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을 하고 있다. 성경의 본질을 모르고 떠드는, 미련한 자들의 소리다.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의 의도하신 계획을 뜻을 담아 문자로 기록한 경전이다. 헛소리를 하여 경전의 존엄을 훼손시키면,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임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지금 로마서 1장 26절에 인간이 육적인 부끄러운 욕심에 불이 타서 짐승처럼 살아가도록 하나님이 내버려 두셨다는 말이다. 그래서 인간의 정욕이 불붙는 대로, 하나님의 창조질서와는 관계없이 제 좋을 대로 방종하며 살고 있다고 번역을 해 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직무유기를 하셨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저희 여인들’로 한글성경에 번역된 ‘네쉐헴()’은, 그들의 넷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목표를 위해 빌린 것들인 여자들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여자들은 육적인 성개념으로 남성의 대칭 개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의 맥을 잡고 있지 않은 분은 이 말조차도 이해가 안 될 것이다. 창세기 1장 27절에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고 한 말씀을 풀지 못하면 이해가 안 된다. 여기에서 아담이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아담은 남자라는 말인가 여자라는 말인가(저서 ‘천지창조’ 참조)? 육적인 성개념으로는 풀 수 없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 없이 그냥 읽고 지나쳤을 것이다. 창세기 2장 18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였다.
이 구절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자가 혼자 사는 것이 여러 가지로 불편하고 아름답게 보이지 않으니까, 남자에게 밥도 해주고 빨래도 깨끗하게 빨아주고 서로 이야기도 하며 돕고 살아가는 것이 보기에 참 좋을 것이라고 여호와 하나님이 생각을 하시고 여자를 만들었다고 보고 지나쳤을 것이다. 전부 영의 말씀을 육적인 생각으로 읽고 지나쳐 버리고 있다. 이해가 되는 것은 읽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읽는 것조차 생략하고 지나쳐 버린다. 성경을 천 독을 하고 만 독을 한들 무슨 유익이 있는가? 하나님의 지식의 빛인 말씀을 올바르게 배워서, 마음땅에 자리잡고 있는 어두움인 무지를 잘라내고 생명으로 부활하여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뀌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이 근본적으로 의도하신 높은 뜻과 계획이시다. 이 의도에서 벗어나, 역사가 어떠하고 족보가 어떠하고 하면서 사람의 지식의 논리를 세워 성경을 해석하고자 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창세기 2장 18절은 번역이 왜곡된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육적인 부부를 만드셔서 서로 돕고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 여자를 만드셨구나”라고 지금까지 생각하면서 읽어 내려왔던 것이다. 아담이 첫째 시기에서 셋째 시기인 하나님의 지식의 빛, 법을 가지고 있는 존재다. 그런데 문제는 넷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가 인간의 마음땅인데 이 마음땅에는 본래적으로 혼돈과 공허와 어두움인 무지가 무저갱의 얼굴들로 자리잡고 있다.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근본 의도하신 높은 뜻과 계획은, 인간의 마음땅에 짐승의 속성을 가지고 자리잡고 있는 이 무저갱의 얼굴들을 깨트리고 불태워 소멸시키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불합리한 육의 속성을 그대로 놓아두고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해 나가실 수가 없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두움인 무지를 지식의 빛으로 계몽하고 깨트리고 잘라내어, 생명으로 부활시켜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뀌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넷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인 인간의 마음땅에 본래적으로 뿌리를 박고 있던 무저갱의 얼굴들이 쉽게 깨트려지고 뿌리가 빠지는 것이 아니다. 빠지기는커녕 육의 속성에 짐승의 속성으로 안주하려는 것이 인간의 마음 바탕이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계획이시지만, 인간은 이 계획에 불순종하는 것이다. 더욱 어려운 것은 마음땅에 어두움인 무지를 잘라나가는 데는 고난과 아픔이 필연적으로 따르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법칙이다. 육적으로 볼 때에도 일평생 정이 들어 왔던 육의 속성을 잘라낸다는 것은 위대한 믿음의 결단을 하지 않으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아담도 이 길을 걷지 않은 것이다.
서균석 목사는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하늘교회(통합) 담임목사 은퇴
한국히브리신학원 학장
문의: 010-3728-0245
홈페이지: http://www.koreahebre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