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균석 목사의 히브리어 원전에 의한 로마서 강해 (44)

강혜진 기자  eileen@chtoday.co.kr   |  

롬 2장 7절 (2)

▲서균석 목사(한국히브리신학원 학장).
▲서균석 목사(한국히브리신학원 학장).

영생을 바르게 번역하면 ‘영원한 생명들’이다. 이 생명들은 본래적으로 인간에게는 없다.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목숨만 존재하고, 하나님의 생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목숨을 생명으로 혼동하고 있는 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목숨이 부활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부활의 정확한 개념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아나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이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로 근본 의도하신 높은 뜻과 계획이다.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영원토록 살아가면서 영광 돌리게 하기 위하심이다.

예수를 믿는다고 무조건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다. 영생 얻는 것을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배가 무엇인가? 이 가치를 모르면 영생의 가치도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는 것이 가장 값진 보배다. 이 영원한 생명들을 하나님께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다. 첫 번째, 하나님께서 태초에 지혜 안에서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셨는데, 그 지혜 안의 기쁨을 가지고 끊임없이 창조해 나가는 자다. 창세기 1장 1절은 성경 66권의 결론이다. 하나님께서 하늘들과 땅이 입을 맞추고 하나로 결합되도록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지혜의 기쁨으로 결론을 내신 것이다. 피조물인 인간도 하나님의 지혜의 기쁨 안에서 마음땅을 기경해 가며 재창조해야 한다.

두 번째, 영광과 존귀의 본체를 추구하는 자들이어야 한다. 영광은 입으로만 찬송을 불러서 돌려 드리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는 이론의 종교가 아니다. 죽고 사는 것을 체험하는 종교다. 그런데 하나님의 지식을 이론으로는 많이 알고 있으나 삶 속에 실천해서 죽고 사는 역사가 없다. 이것이 능력인데 능력의 형식만 붙들고 있지 하나님의 생명이 없다. 신앙이 바리새인화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 당시에만 바리새인들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바리새인들이 얼마든지 있다. 나 자신도 바리새인일 수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영광은 ‘카보드()’인데 영광을 돌리다, 무겁다는 뜻이다.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 안에 매달려 하나님의 지식의 빛을 마음땅에 적용하여, 어두움인 무지의 무게는 줄어들고 지식의 빛의 무게가 늘어나 영혼이 살찌고 무거워지는 것이 영광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도대로 마음땅에 어두움인 무지는 점차로 소멸되고 지식의 빛이 확장되어 승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이다. 영혼이 살쪄야 한다. 영혼이 메말라 있으면 안 된다. 영혼이 메말라 있는 만큼 어두움인 무지는 승한 상태로 머물러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 영광의 본체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평생을 통하여 끊임없이 반복을 해가며 추구해야 성취되는 것이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인내하는 것이다. 고난은 필연적으로 따르는 것인데, 이는 피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극복을 하여 승화시키는 것이다. 신앙의 실패자들은 이 고난을 승화시키지 못하고 비틀거리고 넘어지는 것이다.

세 번째, 인간에게 있으면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라 헛되고 무가치할 수밖에 없는, 마음땅에 본래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혼돈과 공허와 어두움인 무지의 무저갱의 얼굴들을 깨트리고 소멸시키면서 하나님의 얼굴들로 바뀌기까지 고난을 통과하면서 완성하는 자다. 이것을 한글성경에는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라고 번역을 해놓았다. 인간 마음땅에 본래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혼돈과 공허와 어두움인 무지는, 무저갱의 얼굴들로서 깨트려야 할 것들이고 죽여야 할 것들이며 없애야 할 것들이다. 그렇게 때문에 이것들은 헛되다. 아무런 가치가 없다. 하나님의 생명들 외에 인간에게 존재하는 것은 헛되고 헛된 것들이기 때문에, 후회로 일관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게 만든다.

사람들이 영과 육이 분리되어 이 세상을 떠날 때, 참으로 허무하게 살아 왔다고 후회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 허무하지 않은 참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실체가 있는데, 자신은 그 실체대로 살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왜 살지를 못하였는가? 헛되고 헛된 것들이 미혹을 하여, 참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영원한 생명의 실체를 보지 못하게 신령한 눈을 닫아 버렸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은 신령한 눈이 열려야 하나님의 잣대 안에서 길과 진리와 생명을 소유할 수 있다. 육안으로는 다른 영, 다른 예수, 다른 복음만 보일 뿐이다. 헛되고 헛된 것만을 보고 좇아갈 수밖에 없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못하는 것이 인생의 길이다. 이 길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믿음은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의 말씀을 들어야 생긴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긴다는 말이다. 다른 영, 다른 예수, 다른 복음인, 사람의 잣대에 의한 말을 들으면 절대로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말씀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말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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